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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화 46년 연극인생…"내 돈 들여 죽을만큼 열심히" 무대에 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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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46년에 그간 출연했던 연극을 정리하는 무대를 준비 중인 배우 윤석화. [연합뉴스]

데뷔 46년에 그간 출연했던 연극을 정리하는 무대를 준비 중인 배우 윤석화. [연합뉴스]

“저는 관객들을 계속 사랑하고 있지만 그들은 저에 대한 사랑을 져버렸을 수도 있어요. 사랑이 주고받는 거라 하지만 사실은 자기가 좋아서 하는 거 아닌가 해요.”

46년 연극 인생 돌아보는 '자화상' 시리즈 시작 #80년대 산울림 소극장에서 했던 세 편 연극 재연

배우 윤석화(65)는 19일 서울 서교동의 산울림 소극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1975년 연극 ‘꿀맛’으로 데뷔하고 46년. 무대 인생을 돌아보는 ‘자화상’ 시리즈 첫 공연 ‘자화상Ⅰ’의 개막 하루 전이었다.

윤석화는 ‘자화상’ 시리즈를 모두 세 번 공연할 계획이다. 20일 개막하는 첫 공연은 산울림 소극장에서 1980~90년대 했던 연극 발췌다. 산울림 공연이 끝난 후 시기ㆍ장소가 정해지지 않은 두 번째, 세 번째 공연은 각각 서울 예술의전당, 지금은 사라진 극장에서 공연했던 연극을 되살린다.

'자화상' 첫번째 시리즈에서 공연하는 '하나를 위한 이중주' 중 한 장면. [사진 산울림 소극장]

'자화상' 첫번째 시리즈에서 공연하는 '하나를 위한 이중주' 중 한 장면. [사진 산울림 소극장]

산울림 소극장은 1985년 개관한 70여석의 극장이다. 윤석화는 “고향과 같은 곳에 돌아왔다”고 했다. ‘자화상Ⅰ’에서는 산울림 소극장에서 했던 공연 중 세 편을 연출하고 구성해 혼자 출연한다. ‘하나를 위한 이중주’(1988년 공연), ‘목소리’(1989년), ‘딸에게 보내는 편지’(1992년)다.

19일 열린 시연회에서 윤석화는 자신이 30대에 맡았던 대표적 역할을 60대에 재연하며 극 속 인물에 몰입하는 연기를 보여줬다. 다발성 경화증으로 근육이 굳어가는 바람에 최정상 바이올리니스트의 영광을 잊어야 하는 고통(‘하나를 위한 이중주’), 이별을 통보한 연인과 연결된 전화를 놓지 못하고 끝없이 독백하는 절망(‘목소리’), 12세 딸에게 인생을 충고하지만 스스로의 삶을 먼저 해결해야 하는 모순(‘딸에게 보내는 편지’)까지 다양하게 변신하는 90분이었다.

데뷔 46년만에 이같은 아카이빙, 즉 기록 작업에 몰두한 데 대해 윤석화는 “그동안 나를 너무나도 열심히 지지해줬던 관객의 사랑을 기억하며 힘을 내고 다시 꿈을 꿨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산울림 소극장을 이끌던 예술감독 임영웅이 1989년 프로그램북에 “우리 연극계에서는 드물게 관객의 사랑을 받는 여배우”라고 썼듯, 윤석화는 광고 출연, 공연 제작 등으로 대중 인지도가 높다. 하지만 그는 “두려움이 참 많았고 나 자신과 많이 싸웠다”며 “하지만 공연이 없고, 관객에게 내어놓을 것도 없을 때는 삶의 이유도 없었다”고 했다.

“말도 안되는 목소리의 이 여자, 어떻게 보면 지겹고 끔찍하지 않을까? 그래도 좋은 걸 어떡하겠나. 상대의 목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노력하는 거다. 45년 넘는 연극 인생도 다를 바 없었다.” 여성스러우면서도 금속성인 독특한 목소리로 50년 가까이 무대에 서는 동안 관객의 사랑은 옅어졌을 수 있지만, 무대와 관객에 대한 본인의 사랑은 그대로라는 설명이다.

그는 “연극은 답이 없는 질문을 해주는 일”이라고 했다. 연인과 헤어지지 못하고 전화통을 붙드는 ‘목소리’ 속 주인공을 예로 들며 “'사랑이란 뭘까' 같은, 좋은 질문을 하는 일이 연극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무대에서도 화려하고 영광스러운 시간만큼이나 어둡고 힘들었던 경험을 고백한다. 공연은 이런 독백으로 시작한다. “나는 배우입니다. 50년 가까이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를 받았습니다. 무대 위의 불빛과 갈채가 화려할수록 그 뒤안길의 그림자는 길고 낯설고 외로웠습니다.”

윤석화는 지난해 예정됐던 런던 공연을 코로나19로 한 차례 연기하고, 결국 포기하게 된 데 대해 “그런 경험 끝에 바람에 누워버린 풀처럼 완전히 겸손하고 자유로워졌다”고 했다. “팬데믹 2년은 꿈이 다 무너지고 다시 낮아져야 하는 때였다. 더이상 젊지도 않고, 외롭고 쓸쓸한 배우였다. 그래서 연극의 고향과도 같은 산울림 무대로 돌아왔다.” 이번 공연은 윤석화와 산울림 소극장의 공동 기획이다. 윤석화는 “내 돈 들여 죽을 것처럼 열심히”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거의 유일하게 남은 소극장인 산울림은 팬데믹 기간 공연을 하지 못하거나, 해도 손해가 되면서 경영 위기에 놓였다.

윤석화는 “어떻게든 산울림을 돕고 싶었고, 대한민국 최고의 스태프들을 모아 나를 비롯한 모두가 무료 봉사에 가깝게 산울림에 헌정 공연을 올리고 있다”고 했다. 무대 미술, 조명, 기술, 음악 담당 모두가 개런티를 거의 받지 않고 참여한다는 뜻이다. 윤석화는 “연극을 사랑하는 어제의 용사들이 뭉쳤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그를 응원하는 배우들이 공연마다 나타나 관객에게 프로그램북을 나눠주고, 공연 시작 안내 멘트를 할 예정이다. 관객을 맞이할 일일 하우스 매니저는 송일국, 유준상, 박정자, 손숙, 최정원, 박건형, 박상원, 유인촌, 김성녀, 배해선, 남경주, 양준모다. 윤석화는 “다들 산울림 소극장에 애정이 있는 배우다. 작은 것을 지키기 위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몸부림”이라고 표현했다. 공연은 20일부터 다음 달 21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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