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밥뉴스

구독전용

[오밥뉴스]“평범해도, 모자라도 우리 모두는 주인공” 『나도 예민할 거야』

중앙일보

입력 2021.10.20 06:00

오밥뉴스

오밥뉴스’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코로나 시대, 아이들의 문해력 저하가 사회 이슈로 등장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문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책 읽기와 책 읽어주기만큼 중요한 게 없다고 입을 모읍니다. 그렇다면 어떤 책을 읽어주고, 권해야 할까요? 그 고민을 해결해드리고자 헬로! 페어런츠(hello! Parents)'가 그림책·동화책 리뷰를 시작합니다. 헬로!페어런츠가 준비한 두 번째 책은 유은실 작가의 『나도 예민할 거야』입니다. 헬로!페어런츠(www.joongang.co.kr/parenting)에서 다양한 부모 뉴스를 구독하고 기사 알림을 받아보세요.

· 한 줄 평 : 평범한 아이의 평범하고 ‘우당탕탕한’ 일상

· 함께 읽어보면 좋을 유은실의 다른 책  
『멀쩡한 이유정』  4학년이 되도록 2학년 동생을 따라 학교에 가는 길치지만, 유정이는 멀쩡하다!
『박완서』 위인전이 아니다. 책을 좋아하던 아이의 성장 서사다.
『나의 독산동』 공장이 있는 동네가 나쁘다고? 아닌데? 교과서도, 선생님도 틀릴 수 있다!

· 추천 연령 : 그림책에서 동화책으로 넘어가는 수준의 읽기 시작한 시기부터 동화책 읽기에 맛을 알아가는 8~10세
(※그림책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추천 연령은 서사의 구조나 주제 등을 고려하여 제안하는 참고 사항일 뿐 권장 사항이 아닙니다.)

여자아이가 변기통 위에 앉아 있다. 똥을 누는 중인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우스꽝스러운 표정의 이 아이는 8살 정이. 뭐든지 맛있어서 하루에 네 끼를 먹고 똥은 두 번 누는, (엄마 입장에서 보면) 순하고 고마운 아이다.

8살 정이는 뭐든 맛있고, 어디서든 머리만 닿으면 3초만에 잠이 드는 순한 아이다.

8살 정이는 뭐든 맛있고, 어디서든 머리만 닿으면 3초만에 잠이 드는 순한 아이다.

하지만 정이는 불만이 많다. 입도 짧고, 잠도 잘 못 자는 오빠만 특별대우를 받아서다. 엄마는 보약도 오빠만 사주더니 이제 침대도 오빠만 사주려고 한다. “나도 예민할 거야!” 하고 결심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그 좋아하는 우유는 어떻게 어떻게 참아봤지만, 잠은 끝내 참지 못하고 숫자 5까지 세기도 전에 잠들어버렸다.

이게 다 아빠 때문(?)이다. 오빠는 엄마를 닮아 똑똑하고 날씬한데, 정이는 아빠를 닮았다. 회사가 망해 시골로 가 농부가 된 아빠, 시골 동네에선 온 동네가 다 안다. 정이가 아빠 딸인 걸 말이다. 그래서 정이는 시골이 좋다. 길을 잃어버려도 괜찮으니까.

『나도 예민할 거야』는 여느 8살 아이의 일상을 옮겨온 듯 친근하다. 유은실 작가 특유의 능청스러운 문체와 리듬감 있는 문장은 아이의 일상을 더 아이답게 만든다. 8살 아이의 일상은 대체로 ‘까르르’ 하다. 토라지고 삐쳤다가도 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깔깔대는 게 그 또래 아이다. 삶은 때때로 불만스럽고 짜증 나기도 하지만 대체로 즐겁고 좋다. “엄마 닮았으면 좀 좋아” 소리를 듣고 속상해 집을 뛰쳐나왔다 길을 잃어버려도 아빠 딸이어서(동네 사람이 다 알아봐서) 집에 돌아올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란 말인가!

똑똑하지도, 날씬하지도 않은, 도무지 주인공 같지 않은 정이를 유은실 작가는 이야기의 중심에 세웠다.

똑똑하지도, 날씬하지도 않은, 도무지 주인공 같지 않은 정이를 유은실 작가는 이야기의 중심에 세웠다.

어른들은 자기를 객관화하는 능력으로 나를 남과 비교하고, 할 수 없는 것 때문에 좌절하고, 안 해도 되는 걱정을 한다. 8살 정이를 보고 있자면, ‘나는 왜 그렇게 힘들게 살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지금 좋으면, 그게 행복 아닌가.

유은실 작가가 날씬하지도 똑똑하지도 않은(그래서 좀처럼 주인공 같지 않은) 정이를 이야기의 중심에 세운 건 우연이 아니다. ‘변두리’에 대한 그의 애정은 남다르다. 아빠를 여의고 엄마와 단둘이 사는 비읍이(『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4학년이 되도록 학교 가는 길을 못 찾아 2학년 동생을 따라 다니는 유정이(『멀쩡한 이유정』), 9년 전엔 엄마가 7년 전엔 아빠가 떠나고 병을 줍는 할아버지와 사는 생활보호대상 가정의 기철이(『새우가 없는 마을』), 선생님이 살기 나쁘다지만 공장이 있는 동네가 너무 좋은 은이(『나의 독산동』). 하지만 어느 이야기 하나 어둡거나 무겁지 않다. 아이 특유의 유머와 장난기가 배어 있다.

'변두리'에 대한 작가의 애정은 『유관순』, 『제인 구달』, 『박완서』에서도 잘 묻어난다. 비룡소의 위인전 새싹인물전 중 그가 쓴 동화는 모두 여성이다. 여자아이는 글도 안 가르치던 시대 서울로 유학까지 간 당찬 어린이 유관순, 비서학교를 나온 젊은 여자라는 무시에도 아프리카까지 날아가 침팬지를 연구한 동물학자 제인 구달, 아이가 다섯 명이라 깎아야 할 손톱 발톱이 100개나 됐지만 글쓰기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박완서까지, 이들의 이야기는 위인전을 넘어 한 아이의 성장 서사다.

유은실 작가가 쓴 『유관순』, 『제인 구달』, 『박완서』는 위인전이라기 보다 한 사람의 성장 서사다.

유은실 작가가 쓴 『유관순』, 『제인 구달』, 『박완서』는 위인전이라기 보다 한 사람의 성장 서사다.

 『스토리텔링 애니멀』을 쓴 조너선 갓셜에 따르면, 이야기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본성이다. 이야기를 통해 인간은 생존 전략을 시뮬레이션하고, 위로와 희망을 얻는다. 20년차 어린이책 편집자인 출판사 책읽는곰의 우지영 편집장은 “초등학교 4학년을 넘어가면 더는 책을 읽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좋은 책이 나오지 않는 이유다(팔리지 않으니까). 유은실 작가의 책을 읽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 삶을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무기를 빼앗고 있는 것 아닐까?

헬로 페어런츠를 배달합니다. 김주원 기자

헬로 페어런츠를 배달합니다. 김주원 기자

오만가지 고민을 안고 있는 대한민국 부모들을 위해 중앙일보가 준비했습니다. 부모가 먼저 읽고 밥상 머리에서 나눌 수 있는 뉴스부터 경제교육, 부모상담, 주말 체험까지 중앙일보 헬로!페어런츠(www.joongang.co.kr/parenting)에서 만나보세요. 풍성한 부모뉴스를 배달해 드립니다.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