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8대 강매…1000만원 요금폭탄" 장애인 등친 폰팔이

중앙일보

입력 2021.10.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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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통신3사 로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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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 3급인 A씨의 가족은 지난 6월 수십만원에 이르는 휴대전화 요금 청구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A씨의 명의로 2017년부터 지난 2월까지 8차례에 걸쳐 휴대전화 8대, 태블릿 PC 2대를 샀고, 고가 요금제가 개통돼 있어서다.

80대인 A씨의 어머니는 “일해서 갚아보자”고 했지만 매달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요금과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피해 금액은 1000만원에 달했다. 확인 결과 이 중 6건의 계약은 A씨가 아닌 판매직원의 대리 서명으로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A씨의 누나는 “당사자는 가입 내용에 대한 인지가 전혀 없었다”며 “동생은 9세 정도의 정신연령을 가졌는데 대리점들은 인지가 부족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고 매출을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다”고 분노했다.

통신사 대리점에서 호객행위·현금 지급 유인 등의 방식으로 장애인을 꾀어 휴대전화를 개통시키는 수법이 끊이지 않고 있다. 19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상희 부의장이 보건복지부와 한국장애인소비자연합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7월까지 장애인 휴대전화 개통 피해 70건이 접수됐다. 이 가운데 47건(67%)이 지적장애인과 정신장애인에게 발생했다. 대부분의 경우 장애인의 대리인이 이통사에 개통·청약 철회를 요구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 부의장은 “장애인 휴대전화 개통 피해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고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피해 사례가 더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반면 소비자 보호를 담당하는 기관의 문턱은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장애인 이동통신 관련 피해 접수 건수는 36건에 불과했다. 실제 피해를 본 장애인 중 다수가 구제 신청을 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피해구제 신청 사유로는 계약 해제·해지(15건), 무능력자 계약(8건), 부당행위(7건) 순으로 집계됐다. 장애인협회 관계자는 “방송통신위원회나 소비자원 등 피해 접수 창구가 있지만, 장애인과 가족이 피해를 곧장 접수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에는 단순히 휴대전화를 여러 대 개통하는 문제뿐 아니라 판매자의 속임수나 대출·소액결제 같은 금융 범죄가 늘고 있어 피해 금액은 더욱 커지고 있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스마트폰 보급 초기에는 단순한 명의도용 사건이 많았던 것에 비해 최근에는 장애인의 휴대전화에서 예금이나 보험 등의 돈을 빼가는 수법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장애인 기본권을 제한하지 않는 선에서 가입 가능한 회선 수의 상한선을 정하고, 유통점에서 선제적으로 장애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정보가 제공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양승국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팀장은 “정부의 지침이 생기면 이통사 다회선 가입 제한 시스템과 연동해 전 통신사를 대상으로 하는 장애인 개통정책을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부의장은 “장애 특성을 악용하는 일부 대리점의 행위에 대한 강력한 처벌방안 마련도 필요하다”며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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