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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집회 참가자들 줄줄이 무죄…과잉기소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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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광화문 집회 철퇴 1년, 법의 심판은

지난해 8월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보수단체들이 주최한 ‘문재인 정권 규탄’ 집회가 열렸다. 서울시는 집회를 불허했으나 법원이 이곳과 을지로입구역 등 두 곳의 집회를 허용하면서 인파가 몰렸다. [연합뉴스]

지난해 8월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보수단체들이 주최한 ‘문재인 정권 규탄’ 집회가 열렸다. 서울시는 집회를 불허했으나 법원이 이곳과 을지로입구역 등 두 곳의 집회를 허용하면서 인파가 몰렸다. [연합뉴스]

지난해 8월 15일 보수 단체들이 주최한 서울 광화문 일대 도심 집회에 참가한 뒤 코로나 역학 조사 과정에서 거짓 진술을 하거나 자료 제출에 불응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사람들이 최근 줄줄이 무죄 판결을 받아 과잉 조사, 과잉 기소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 광주에서 광화문 8·15 집회에 참가한 뒤 17일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A씨는 “8월 15일날 무엇을 했느냐”는 방역 당국의 질문을 받고 “가족들과 전남 영광 해안 도로를 방문했다”고 진술한 혐의로 기소됐으나 광주지방법원은 “조사자가 법령에서 정한 역학조사반원이 아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최근 1심에서 5명 잇따라 무죄 선고
조사 공무원들 ‘무자격자’ 드러나
감염원 특정 못한 점도 무죄에 영향
당국 “확진자들 있어 부득이했다”

역시 목포에서 광화문 집회에 참석했으나 시청 공무원으로부터 4차례 “집회에 갔느냐”는 질문을 받자 “간 적 없다”고 답한 혐의로 기소된 B씨도 목포지방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해당 공무원이 법령상 역학조사반원이 아니었고, 질문의 내용도 법령상 역학조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역시 목포에서 광화문 집회에 갔던 C씨와 D씨도 목포시청과 보건소 공무원에게 “집회에 간 적 없다”고 진술하거나, 함께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 제출에 불응한 혐의로 각각 기소됐으나 같은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또 충북 제천에서 사람들을 모아 광화문 집회에 갔다가 제천시 당국으로부터 “함께 간 참석자 명단을 달라”는 요구에 불응한 혐의로 기소된 E씨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밖에 대구에서 신도들과 광화문 집회에 갔던 62세 목사 F씨는 참가자 명단을 제출하라는 요구에 거짓 진술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7월 25일 대구지법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다만 대면 예배를 열지 말라는 대구시 통보를 무시하고 예배를 진행한 혐의에 대해선 벌금 300만원 형을 받았다.)

이렇게 무죄 선고가 잇따르자 부산·창원 등지에선 같은 혐의로 수사받아온 사람 20여 명이 기소 중지된 상태다. 또 역학조사 방해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은 피의자에 대해 검찰이 “혐의를 인정받기 어렵다”며 재수사를 지시한 끝에 경찰이 불송치 결정을 내린 사례도 있다고 제천·목포지원에서 무죄 판결을 끌어낸 이순호 변호사가 전했다.

문 대통령 "몇 명이 깽판을 쳐 노력 물거품”

지난해 정부는 8·15 집회 참가자에게 초강경 대응을 했다. 통신사의 협조를 얻어 당일 광화문 기지국에서 2시간 이상 휴대전화 신호가 잡힌 5만여 명의 명단을 전국 지자체에 뿌렸다. 집회 참가자는 물론 다른 용무로 광화문 일대에 머문 사람도 다 포함됐다. 지자체들은 이들에게 검진을 받도록 하고, 역학조사를 실시해 ‘허위 진술’했다고 판단되거나 명단 제출에 착오가 발견되면 가차 없이 기소했다. 과잉 조사·기소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당시 강경 일변도였던 청와대의 입장이 영향을 끼쳤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8·15 집회 하루 전 “정부는 상황이 엄중한 만큼 종교의 자유를 존중하면서 교회의 방역을 강화하는 조처를 하라”는 메시지를 냈다. 집회 다음 날인 16일에는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고 방해하는 일체의 위법 행동은 국민 안전 보호와 법치 확립 차원에서 엄단할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몇 명이 깽판을 쳐 많은 사람의 노력을 물거품이 되게 하다니…”라며 푸념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감염원 모른다”가 무죄 요인 된 듯

감염병예방법상 역학조사는 감염병 환자 등을 대상으로 신원과 감염 경로 등을 조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8·15 집회의 경우 참가자 전체가 ‘감염병 환자 등’이 아닌 한 이렇게 싸잡아 검진을 명령하고 역학조사를 하는 건 지나칠뿐더러 법적 근거가 없다는 비판이 법조·의료계에서 나온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방역도 중요하지만, 방역의 편의성을 위해 불특정 다수의 명단을 무작위로 제출케 하는 건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법원도 정부가 역학조사의 근거인 감염원(환자 등)을 특정하지 못한 채 ‘그날(8·15) 거기(광화문)’ 있었다는 이유로 자격 없는 공무원들을 동원해 시행한 조사는 역학조사로 볼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해 무죄 판결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광주지법에서 무죄판결을 끌어낸 유승수 변호사의 말이다.

“법정에 나온 보건소나 지자체 공무원들에게 ‘역학조사의 근거인 감염원이 있었느냐’고 물으면 하나같이 ‘모른다’고 답하더라. ‘감염원을 추적하기는 했나’고 물어도 묵묵부답이더라. ‘그럼 감염원을 특정하지 못한 건데 어떻게 역학조사를 했냐’고 물으면 공무원들은 ‘우린 그저 지자체장의 지시에 따라 중앙(질병관리청)에서 준 기지국 명단을 받아 조사한 것’이라고 답변하더라. 이로 인해 판사들은 ‘아, 이 공무원들이 역학조사를 할 근거가 없는데도 조사를 강행했구나. 피고는 무죄다’고 깨달음을 얻게 된 듯하다. 그러니 5건 연속해서 무죄가 난 것이다.”

게다가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지난 9월 10일 “야외에서 감염된 사례가 있느냐. 있다면 몇 건인가”라는 시민단체 ‘학생·학부모 인권연대’의 질의에 대해 “야외인 경우 접촉자의 범위, 체류 기간, 노출 상황 및 시기를 특정하기 어렵다”며 “따라서 야외에서 감염돼 확정돼 보고된 사례는 없는 것으로 확인된다”고 공문을 통해 밝혔다.

“정부에 반감 표한 사람”이 왜 나와?

방역 당국이 코로나와 관련 없는 ‘정치적 성향’을 문제 삼은 정황도 있다고 유승수 변호사는 전했다. 그는 “창원에서 역학조사 방해 혐의로 재판받는 피의자에 대해 방역 당국은 ‘집회 참석자가 왜 검사를 받아야 하냐’고 말하는 등 ‘정부에 대한 반감을 표출한 사람’이란 기록을 남겼다”고 전했다.

또 피고인의 범죄를 부각하려는 목적에서 공무원들이 확인서를 쓰도록 강요한 정황도 있었다고 이순호 변호사는 전했다. 그는 “‘집회에 간 적 없다’고 진술한 목사에게 공무원들이 그 진술 내용을 적은 확인서를 워드프로세서로 만들어와 서명을 요구했다. 피고인이 거짓 진술했다는 주장을 정당화하려는 꼼수였다”며 “그러나 법적 효력 없는 종잇장에 불과해 증거가 되지 못했다”고 했다.

논란에 대해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지난해 8·15 집회엔 코로나 확진자인 전광훈 목사와 교회 신도들이 참석했기에 부득이 통신사의 협조를 얻어 조사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다만 전화 신호가 잡힌 사람들에게 검진을 받으라고 한 것은 (강제성 없는) ‘권고’ 취지였는데 일선 지자체에서 ‘명령’으로 집행되면서 논란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역학조사관 1명이 국민 11만 명 챙기는 현실

정부가 역학조사 인력 부족으로 자격 없는 공무원들을 조사에 동원한 것도 무죄가 줄줄이 선고된 요인으로 꼽힌다. 이순호 변호사는 “법령에 따르면 역학조사반원은 2년간 관련 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지자체에서 그런 교육을 이수한 이는 거의 없다 보니 무자격자를 조사에 투입한 게 참사의 원인”이라고 했다. 그는 “역학조사는 대면조사가 원칙인 데다 조사반원은 먼저 신분을 밝히고, 피조사자의 권리를 설명해줘야 하는데 실제로는 전화로 ‘공무원’이라고 하면서 위압적으로 조사한 사례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이런 조사 방식도 피고인들이 무죄를 선고받는 요인이 됐다는 것이다.

국내 역학조사관은 7월 기준 457명에 불과하다. 1명당 국민 11만여 명을 담당하는 셈이다. 이마저 최근 시·군·구에 무조건 1명 이상 역학조사관을 두도록 법이 개정된 결과 지난해 100명 수준에서 조금 는 것이다. 게다가 미래가 불확실한 임기제 공무원인 데다 월급이 의사의 3분의 1 선이다. 급여와 승진 체계를 개선해줘야만 인력 부족이 해결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정부는 2000억∼3000억원을 투입해 방역인력 대우를 개선하고 숫자를 늘려 역학조사를 강화하는 것이 올바른 전략임에도 자영업자들에게 20조∼30조원의 피해가 발생하는 거리 두기로 방역을 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가 보건소 등 방역 인력을 늘릴 생각이 없었고,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은 두 부처를 설득할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