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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포족’ 잔인한 10월이 간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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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장정훈
장정훈 기자 중앙일보 팀장
장정훈 산업1팀장

장정훈 산업1팀장

청년 4명 중 1명은 실업자, 10명 중 6명은 ‘취포족’, 100명 중 3명은 은둔형 외톨이…. 이달 들어 나온 각종 통계에 비친 우리 청년들의 모습이다. 대기업 채용 시즌이 시작되던 10월은 청년들에게 한때 꿈의 계절이었지만 언젠가부터는 가장 잔인한 달이 됐다. 이달 초 한국경제연구원은 대학생이나 졸업생 65%가 구직을 아예 단념하고 취업을 포기한 취포족이란 조사 결과를 내놨다. 이들이 구직을 포기한 이유는 취업 문턱을 넘기에 자신들의 스펙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청년들은 컴퓨터프로그래밍·데이터 분석·전자상거래관리사 등 각종 자격증으로 무장한 세대다. 그들의 스펙이 낮은 게 아니라 그들이 선망하는 일자리가 부족해 더 높은 스펙 경쟁자에게 밀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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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이 이달 중순 내놓은 9월 고용 동향 통계는 뜨악하다. 취업자 수가 지난해 9월보다 67만명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마침 워싱턴 출장 중이던 홍남기 부총리는 “코로나19 4차 확산에도 불구하고 서비스업 중심으로 민간 일자리가 크게 회복되고 있다”고 반색했다. 하지만 홍 부총리가 언급한 민간 일자리 31만6000여개를 들여다보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대부분이 식품·섬유·건설 분야의 기능·기계 조작직이거나, 제조·운송·청소·경비·가사 관련 단순 노무직이었다. 또 민간을 제외한 28만개는 재정을 투입한 공공행정·보건복지 일자리다. 그렇다 보니 67만명의 취업자 중 절반(48%)이 60세 이상이고, 좋은 일자리를 찾는 30대 취업자는 되레 1만2000명이 줄었다.

취업 문턱에서 좌절한 청년들은 자신감과 자존감을 잃고 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은 20·30대 중 편의점 정도만 왔다 갔다 할 뿐 집 밖에 나가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가 3.4%(약 37만명)라고 했다. 한해 전 2.4%보다 늘었다. 은둔형 외톨이 청년이 느는 이유는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수업 증가나 바깥 활동의 어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취업준비 기간 장기화가 결정적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조사 결과도 있다. 포천 글로벌 500대 기업에 든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SK하이닉스, 기아, 삼성물산 등 7개 기업의 고용이 2015년 27만6948명에서 지난해 30만491명으로 8.5% 증가했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의 경우 코로나19 확산에도 이들 기업에서는 일자리가 2% 늘었다. 청년들이 가고 싶은 일자리를 만드는 건 결국 기업이라는 얘기다. 그런데도 우리는 중소·중견기업이 대기업만 되면 공정거래법·금융지주회사법·상법 등의 규제로 겹겹이 에워싼다. 다시 10월이 되면 대학가에 구직 공고가 넘치게 하는 길은 너무도 자명하다. 기업을 키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