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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역지사지(歷知思志)

서초패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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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유성운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서초패왕 항우의 비극적 최후는 각종 문화 콘텐트의 소재가 됐다. 영화 ‘패왕별희’도 항우의 최후를 다룬 경극이 주요 모티브다. 역사에 기록된 항우의 최후는 비참했다. 오강에서 자살했을 때 그의 시체를 얻기 위해 장수들이 달려들었다. 『사기』는 여마동 등 다섯 명의 장수가 포상을 받았다고 전한다. 모두 진(秦)나라 출신이다. 얄궂은 사연이 있다.

진시황이 죽자 진나라에 의해 망한 6국에서 복국 운동이 진행됐다. 이때 초 회왕(懐王)의 명령에 따라 유방은 진나라의 수도 함양으로 진격했고, 항우는 조나라의 수도 한단을 구하러 갔다. 한단을 포위한 진나라 군사 20만명 상당수가 수도방위군으로 최정예였다. 정작 수도는 비어있던 셈이다. 그 바람에 유방은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진나라 수도 함양을 점령했다.

역지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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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악전고투했던 항우는 항복한 진나라 군사 20만명을 생매장했다. 과거에 진나라 역시 조나라 군사 40만명을 생매장한 적이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진나라 사람들은 피눈물을 흘렸다. 진나라가 멸망하자 잠시 항우가 패권을 잡았지만, 유방과 항우의 대결로 이어졌다. 초한대전이다. 이때 진나라 출신들은 대거 유방 편에서 싸웠다. 양측 모두 진나라의 원수였지만, 항우에게 복수를 해야 한다는 게 옛 진나라의 정서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수사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국민의힘 당원 조사나 대구·경북의 여론조사에서 수위를 달린다고 한다. 친박계 인사 상당수도 윤석열 캠프에 합류했다. 어쩌면 옛 진나라 사람들의 심정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