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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에나도 물어 죽이는 당나귀···앞니·어금니 빈틈의 비밀“ [동키호택과 걷는 산티아고길 80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동키호택과 걷는 산티아고길 80일-7화]

발목에 털이 북실북실. 중세기사들이 타고 다니던 말이랑 닮았네.

발목에 털이 북실북실. 중세기사들이 타고 다니던 말이랑 닮았네.

다들 당나귀가 궁금한가보다 .
“무얼 먹나요? 사료를 지고 가야 하나요?”
“똥 싸면 어떻게 하죠? 똥주머니를 가지고 다녀야 할 것 같아요.”
이런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한국에서 당나귀 농장에 갔을 때 주인도 사료를 먹이고 있는 실정이라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
“사료를 가지고 다니려면 꽤 힘들 텐데요. 아무 풀이나 먹이면 탈나거든요.”

호택이는 임금님 식사하고 우리는 하인 식사.

호택이는 임금님 식사하고 우리는 하인 식사.

삼겹살처럼 생겨서 사다가 구웠는데 이런, 염장을 해서 엄청 짜다.

삼겹살처럼 생겨서 사다가 구웠는데 이런, 염장을 해서 엄청 짜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준 호택이 간식.

지나가던 사람들이 준 호택이 간식.

수레에 빵을 가득 싣고 가던 노인이 호택이를 보더니 4개를 건네줬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수레에 빵을 가득 싣고 가던 노인이 호택이를 보더니 4개를 건네줬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자기 경험 일반화다. 강아지를 키우며 겪은 일을 당나귀에게 적용을 할 수는 없다. 모르는 사람들끼리 밤낮 이야기해봐야 답은 나오지 않는다. 아무튼 당나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아리츠의 당나귀농장에 갔다. 농장에서 5일간 교육을 받았으며 제일 먼저 한 질문은 당나귀 먹이였다.
“먹이는 어떻게 마련하나요?”

파하(paja). 당나귀가 무척 좋아하는 건초다.

파하(paja). 당나귀가 무척 좋아하는 건초다.

이 질문을 받자 아리츠 부부는 크게 웃었다.
“헤이 택씨. 온 천지가 당나귀 밥이에요. 당신 먹을 거나 걱정하라고.”
먹이는 길가에 얼마든지 있다지만 풀도 풀 나름이다. 혹시라도 독초를 먹으면 어쩌나.
“아리츠, 그럼 어떤 풀을 먹여요? 풀 종류가 엄청 많은데.”
식물에 대해 잘 모르고, 또 여기는 스페인 아닌가.

“택씨. 당나귀에게 풀을 먹인다고요? 먹이는 게 아니고 자기가 먹는 겁니다. 풀어 놓으면 자기가 알아서 뜯어먹어요.”
간섭하지 말라는 말이다. 당나귀는 풀을 만나면 먼저 냄새를 맡는다. 먹을지 말지 코로 탐색한 다음 결정을 하면 입술로 풀잎을 모아 앞니로 뜯는다. 당나귀 앞니와 목의 힘은 동물 중에 최고란다. 동키호택이 뜯지 못할 풀은 지구상에 없는 셈이다. 인터넷에서 아프리카 당나귀가 하이에나를 물어 죽이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생명에 위협을 느낀 당나귀가 하이에나의 목을 물고 목이 부러질 때까지 흔들어 죽였다.

당나귀는 입안으로 들어온 풀을 최종 점검한다. 앞니와 어금니의 중간에 엄지손가락 두 개 정도가 들어갈 만한 공간이 있다. 여기를 통해 먹고 싶지 않거나 어쩌다 들어 온 이물질을 내보낸다. 먹기로 결정한 풀은 어금니로 잘게 씹어 삼킨다. 그러니 먹어서 안 될 풀이 배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없다.

“택씨, 당나귀의 행복은 바로 먹는 겁니다. 끊임없이 먹으려고 해요. 그렇다고 아무 때나 먹이면 안 돼요. 특히 짐을 지고 있는 상태에서 먹이면 안 됩니다.”
일할 때와 쉴 때를 엄격히 구분해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짐을 지고 가다 보면 맛있는 풀에 정신이 팔리기 마련이다. 이것을 허용하면 나중에 심각한 일이 일어난다고 했다.
“쉴 때는 일단 짐을 내려 주어야 합니다. 등에서 짐을 내리며 쉬고 먹을 시간이라고 알려주는 거죠. 이걸 헷갈리면 굉장히 힘들어질 거예요.”

호택이가 제 맘대로 빨리 걸으면 앞으로 가 진로를 방해해서 속도를 조절한다.

호택이가 제 맘대로 빨리 걸으면 앞으로 가 진로를 방해해서 속도를 조절한다.

길에서 무언가를 먹으려고 하면 목줄을 짧게 잡고 아래로 당긴다. 반드시 단호해야 한다. 이때 당나귀에게 지면 목줄을 아무리 당겨봐야 꿈쩍도 하지 않는다. 주도권을 뺏기면 당나귀가 먹고 싶을 때 먹고 쉬고 싶을 때 쉬어야한다. 당나귀를 나무에 매달아 짊어지고 가는 동화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쉴 때면 마구 먹어대는 호택이. 싸기도 엄청 싼다.

쉴 때면 마구 먹어대는 호택이. 싸기도 엄청 싼다.

당나귀는 쉬는 시간에 무조건 먹는다. 이때 긴 목줄로 바꿔주면 실컷 돌아다니며 배를 채운다. 많이 먹는 만큼 많이 싼다. 쌀 때는 기관단총 쏘는 소리가 난다. ‘따다다다닥’ 길가는 개가 놀랄 정도로 소리가 크다. 그래도 시골길에서는 별 문제가 없다. 문제는 도시였다.

순례길에서 제일 먼저 만난 도시가 팜플로나다. 이 도시를 지나가다 불상사가 생겼다.
도로 횡단보도에서 꼬리를 치켜들더니 인정사정없이 따다다다닥….
제주도 오방떡이 길가에 투하되었다.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동훈아. 빨리.”
아마도 독일군의 기습에도 이렇게까지 당황하지는 않았을 거다. 동훈이가 쓰레받기와 솔을 꺼내 똥을 치우기 시작했다.
“쓰레받기 뒤집혔어. 똑바로.”

나는 혹시나 하여 목줄을 단단히 잡고 있었다. 사람들이 한둘씩 발걸음을 멈췄다. 진땀이 났다. 하지만 당황한 건 우리뿐이었다. 주민들은 싱글벙글대며 괜찮다고 했다. 어떤 이는 재미있는지 사진을 찍기까지 했다. 우리가 똥을 어디다 버릴지 몰라 두리번거리자 쓰레기통에 버리라고 알려주기까지 했다.

팜플로나 시내에서 시원하게 볼 일 보신 호택이.

팜플로나 시내에서 시원하게 볼 일 보신 호택이.

어쨌든 좋다. 건강하게만 걸어다오.

어쨌든 좋다. 건강하게만 걸어다오.

여행을 준비하며 듣는 이야기가 있었다.
“준비는 철저히 한 거야?”
완벽한 준비란 없다. 여행은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가방을 꾸려 집을 나서는 용기다. 당나귀가 똥을 얼마나 싸는지 걱정할 일은 여행을 떠난 후에 해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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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가 풍경도 감상하고.

걷다가 풍경도 감상하고.

에구 힘들어. 좀 쉬었다 가자.

에구 힘들어. 좀 쉬었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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