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현장실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이경희 기자 중앙일보 P디렉터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고교 현장실습은 1963년 처음 도입됐다. 학교 기자재 부족이 이유였다. 시대 흐름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긴 했으나 현장실습은 기업에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수단이었다. 김영삼 정부 때는 모두가 기피하는 3D 업종의 인력난을 해소하는 용도로 썼다. 2015년엔 노조가 파업하자 실습생을 대체인력으로 투입한 사례도 있었다. 2017년 제주 생수공장 현장실습생 사망 사고 이후 문재인 정부는 ‘조기 취업연계형 현장실습’을 폐지하고 ‘학습 중심 현장실습’으로 바꿨다. 그러나 참여 기업이 급감하고 취업률이 뚝 떨어지자 ‘선도기업’ 선정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다시 방향을 틀었다.

 지난 10일 전남 여수의 한 요트 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홍정운군이 숨졌다.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를 제거하려 잠수 작업을 하다 변을 당했다. 홍군은 잠수 자격증이 없었고, 수영도 못했다. 탑승객 관광 보조와 안전수칙 안내 등이 현장실습계획서에 적힌 원래 업무였다. 현행법에선 만 18세 미만의 잠수 업무를 금지한다. 그러나 홍군의 학교에선 ‘잠수기술'을 포함한 실무 기술 습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며 현장실습 보내기 ‘적절’한 업체라고 평가했다.

전남 여수시 웅천동. 고 홍정운 군을 기리는 추모 리본이 바람에 날린다. 제공 연합뉴스〉

전남 여수시 웅천동. 고 홍정운 군을 기리는 추모 리본이 바람에 날린다. 제공 연합뉴스〉

 국가권익위원회는 올해 6월 직업계고 현장실습생 권익 보호 강화방안을 교육부와 고용노동부에 권고했다. 당시 권익위 조사에 따르면 ‘기업용 특성화고 현장실습 운영 매뉴얼’(고용노동부)은 2012년 발간 후 개정된 바 없다. 기업 대상 최신 자료는 교육부가 만든 ‘2021년 직업계고 현장실습·고졸취업 참여기업 지원 정책 가이드’다. 세액공제와 각종 지원금 등의 혜택만 모아뒀는데, 5인 미만 기업도 해당한다는 부분을 짙은 글씨로 강조했다. 5인 미만 기업은 주 52시간, 갑질 금지 등 근로기준법 대부분의 항목에서 적용 예외다.

 권익위 조사에 따르면 학생 과반수는 무슨 일을 하는지 자세히 모르고 일하러 갔다. 각 학교 현장실습운영위원회에 참가하는 학생은 전국에 딱 9명뿐이다. 직업계고 포털 사이트 내 기업 관련 정보를 학생과 학부모는 열람할 수 없다. 곽상도 의원이나 조국 전 장관의 자녀가 직업계고에 다녔어도 이랬을까. 우리 사회가 현장실습생을 값싼 부품으로 여기는 한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목소리를 내면서 안전하게 배울 수 있도록 눈과 입을 열어줘야 한다.

참고 자료

'노동착취'…특성화고, 현장파견실습 중단해야(뉴스타파, 2017년 3월 31일자)
여수 특성화고 현장실습학생 사고, 학교와 교육청의 기업 점검 부실 탓(강민정 국회의원, 국정감사 보도자료)
여수 특성화고 홍성운 군 사망 사고, 현장실습기업 선정부터 문제(서동용 국회의원, 국정감사 보도자료)
직업계 고등학교 현장실습생 권익보호 강화방안(국민권익위원회, 의안번호 제 2021-357호)
기업용 특성화고 현장실습 운영 매뉴얼(고용노동부, 2012)
2021년 직업계고 현장실습·고졸취업 참여기업 지원 정책 가이드(교육부 중앙취업센터,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