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꺾인 걸프전 영웅

중앙일보

입력 2021.10.19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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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국무장관 재직 시절인 2001년 9월 9·11 테러 관련 브리핑을 하는 콜린 파월. [AP=연합뉴스]

국무장관 재직 시절인 2001년 9월 9·11 테러 관련 브리핑을 하는 콜린 파월. [AP=연합뉴스]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초로 합참의장과 국무장관을 지낸 콜린 파월이 코로나19 감염 합병증으로 18일(현지시간) 별세했다. 84세.

파월 전 장관의 가족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콜린 파월 장군이 오늘 아침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훌륭하고 사랑스러운 남편, 아버지, 할아버지, 위대한 미국인을 잃었다”고 전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트위터에 "로라(부시 전 대통령 부인)와 나는 파월의 죽음에 깊은 슬픔에 빠져 있다. 그는 베트남전 시절 군 생활을 시작으로 위대한 공무원이었다”고 추모했다.

파월은 미국 뉴욕 브롱크스에서 자메이카 출신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C 학점 학생’이었지만 뉴욕시립대 ROTC 장교로 임관하며 인생이 달라졌다. 그는 입대 이유에 대해 “군대의 구조와 규율이 마음에 들었다”며 “유니폼을 입으니 뭔가 남다른 느낌이 들었다. 다른 분야에선 별로 특출난 게 없었다”고 말했다.

베트남전(戰)에 참전해 병사 두 명을 구하는 공을 세우기도 했다. 1989~93년 합참의장으로 근무하면서 91년 걸프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국민적 영웅이 됐다. 높은 인기로 1996년 대선 후보 물망에 오르기도 했지만 경선 참여를 거부했다. 파월은 “나 자신에게 정직하지 않으면 국민에게도 정직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2004년 8월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함께한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로이터=연합뉴스]

2004년 8월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함께한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로이터=연합뉴스]

파월은 부시 대통령 시절인 2001년 국무장관에 올랐다. 그는 국무장관 지명에 대해 “나는 이것이 이 나라에서 무엇이 가능한지 세계에 보여준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파월은 온건하고 명예를 존중하며 당파에 연연하지 않는 인물로, 부시 행정부의 대표적 비둘기파로 분류됐다. 그는 미국이 불가피하게 해외 분쟁에 개입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명확한 정치적 목표를 세운 뒤 압도적 군사력을 동원해 최단기간에 문제를 해결한다는 ‘파월 독트린’으로 유명하다.

파월은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그는 1973~1974년에 동두천 주한 미군부대에서 대대장으로 근무했다. 그는 “일주일간 밤낮을 바꿔 훈련했는데, 부대원 700여명이 한밤중 30㎞ 행군을 끝냈던 순간은 내 평생 가장 소중한 기억 중 하나”라고 말한 적도 있다. 자서전에서 “한국군은 지칠 줄 모르고, 군기(軍氣)가 엄했으며, 머리도 좋았다”며 한국군의 우수함을 칭찬하기도 했다.

2002년 10월 제2차 북핵 위기가 시작됐을 당시 파월은 “북한 핵 포기에 대가는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끈질긴 대화 노력으로 북한을 6자 회담에 끌어내는 데 기여했다. 2004년 8월 “북한은 (이란보다) 더 다루기 어려운 나라이며 협상 게임에서는 가장 단단하고 또 단단한 호두들 중의 하나”라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가족으로는 1962년 결혼한 아내 알마 비비안과 세 명의 자녀가 있다. 저서로는 『나의 미국여행』 『콜린 파월의 실전 리더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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