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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될 수도 있는데, 남욱 귀국 미스터리…기획입국설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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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성남시 대장동 개발 특혜·로비 의혹의 핵심 인물인 남욱(48) 변호사가 18일 자진 귀국해 검찰에 체포되자 법조계에서는 "시기적으로나 검찰 수사 상황을 고려할 때 미스터리"라는 반응이 나온다. 남 변호사가 체포와 구속을 무릅쓰고 귀국할 수밖에 없었던 숨겨진 이유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꼬리 자르기'를 위한 기획 입국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18일 오전 5시께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남 변호사는 사전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검찰에 즉각 체포됐다. 검찰 직원과 함께 입국 게이트에 모습을 드러낸 남 변호사는 '미국 도피 의혹이 있었는데 왜 들어왔나' '그분이 누구냐'는 등 취재진의 질의에 "죄송하다"는 한마디만 하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미국에 체류 중이던 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의 핵심 인물 남욱 변호사가 1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하자마자 대검 관계자들에 의해 체포, 압송되고 있다. 2021.10.18 장진영 기자

미국에 체류 중이던 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의 핵심 인물 남욱 변호사가 1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하자마자 대검 관계자들에 의해 체포, 압송되고 있다. 2021.10.18 장진영 기자

남 변호사는 귀국과 동시에 대장동 개발 의혹 사건 전담 수사팀(팀장 김태훈 4차장검사)이 있는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송돼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앞서 유동규(52·구속)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에 대한 2013년 위례신도시관련 3억원의 뇌물공여 및 대장동관련 700억원 뇌물공여약속 등의 혐의를 적용해 남 변호사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 검찰은 남 변호사가 대장동 개발 사업 초반부터 깊숙이 개입한 인물인 만큼 체포시한인 48시간 이내에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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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가족 보호 목적?…8월엔 자택·외제차 처분

법조계에선 남 변호사가 스스로 입국한 데 대해 시기적으로 대장동 의혹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공분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데다 구속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대체로 "이례적"이라고 평가한다. 특히 남 변호사는 대장동 의혹이 시작된 지난 8월 서초구 자택과 고급 외제차를 급하게 처분하고 출국해 '도피설'이 제기됐다.

남 변호사는 미국에 남은 '가족 보호'를 위해 나서게 됐다고 했다. 그는 지난 12일 의혹이 제기된 이후 JTBC와 처음으로 인터뷰하며 "온 가족이 미국으로 도피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이건 제 일이고 가족들은 상관없으니까 가족들은 보호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출입국 업무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화천대유에서 1000억 넘는 배당금을 받은 남 변호사 본인만 도피하면 미국에서 가족들의 생활에는 큰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외교부가 남 변호사 여권을 무효화하고 경찰이 인터폴에 수사 공조를 요청한 데 압박감을 느꼈을 가능성도 있지만 가족들의 미국 생활에 지장이 없고 강제송환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리기 때문에 귀국은 최대한 미룰 수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고(故) 장자연 씨 관련 증언자로 나서 후원금을 유용한 의혹을 받는 윤지오씨도 여권이 무효화되고 인터폴에 수배됐지만 2년 째 캐나다 영주권자 신분을 이용해 귀국하지 않고 있다. 옵티머스 사태 초반 핵심 인물로 거론됐던 옵티머스자산운용 창업자 이혁진 전 대표에 대해서도 법무부가 지난해 9월 범죄인 인도 청구를 했으나 1년 넘게 별다른 소식이 없는 상황이다.

② 국내 재산 보호? 독박 방지?

검찰이 보는 남욱 주요 혐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검찰이 보는 남욱 주요 혐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국내에 남겨놓은 재산을 지키고 사태 책임이 본인에게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해 입국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남 변호사는 올해 4월 부동산 개발 업체 '엔에스제이피엠'을 통해 서울 강남구 역삼동 건물과 대지를 300억원에 매입하는 등 국내에 상당한 재산이 남겨져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남 변호사는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와 유동규 전 본부장이 받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의 공범으로 지목되고 있다"며 "배임 손해액에 대해서는 부패재산몰수특례법을 적용해 범죄수익 환수가 이뤄질 수 있어 이를 고려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조계의 또 다른 인사는 "주주 간 내부 분열이 일어난 상태에서는 도피해 있는 공범에게 책임을 모두 미뤄놓는 경우가 일반적이어서 이를 막으려 입국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③ '그분' 명령에 따른 꼬리 자르기?

대장동 개발 사업 핵심 인물 관계도 그래픽 이미지.

대장동 개발 사업 핵심 인물 관계도 그래픽 이미지.

일각에서는 기획 입국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장동 의혹의 윗선 '그분'의 의사가 전달돼 남 변호사 선에서 꼬리를 자르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언제 다시 나갈 수 있을지 모르는데 자발적 입국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더욱이 대장동 의혹 핵심 인물인 김만배씨에 대한 검찰 수사가 부실해 구속영장도 기각된 상황에서 대선 정국 이후 입국하는 게 더 유리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결국은 이 사태의 핵심을 쥐고 있는 '키맨'이 들어오라고 명령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공교롭게도 남 변호사는 귀국 과정에서 진행한 JTBC와의 인터뷰에서 김만배씨가 언급한 ‘그분’과 관련해 “내 기억에, 내가 알고 있는 한은 이 지사와는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 지사가 2010년 6월 성남시장 선거운동 현장에서 ‘대장동 민간개발을 돕겠다’고 강조하더니 시장이 된 후에 ‘공영개발 하겠다’고 입장을 바꾸는 바람에 우리가 힘들어졌다. 내 입장에선 (이 지사가) 합법적인 권한을 이용해서 사업권을 빼앗아간 사람”이라며 이 지사에게 유리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과거 대형 스캔들의 핵심 인물이 돌연 입국한 사례는 많지 않다. 먼저 국정농단 의혹을 받은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가 2016년 10월 30일 전격 귀국한 사례가 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와 최씨의 독일 인터뷰, 검찰의 특별수사본부 구성 등이 진행된 이후 최씨가 입국하자 청와대와 검찰, 최씨간 '사전조율설'이 등장했다. 당시 검찰이 최씨에 대해 입국 즉시 체포하지 않고 하루 뒤 소환 조사한 것도 그 근거가 됐다.

2007년 대선을 한 달 앞두고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BBK의 실소유자라고 주장한 김경준씨도 범죄인 인도청구에 수년간 소송으로 버티다가 그해 11월 입국했다. 당시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이 김씨가 이 전 대통령을 공격할 목적으로 민주당에 의해 기획 입국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공개해 대선 정국을 흔들었다. 다음 해 6월 검찰은 김씨 입국에 민주당이 불법적으로 개입했다고 볼 수 없고, 이에 대한 기획 입국 폭로 역시 불법이 아니라는 수사 결과를 내놓았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기획입국설이 수사를 통해 그 실체가 밝혀진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면서도 "대장동 의혹의 경우 '그분'이 드러나는 경우가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공통적으로 인식하고 있을 가능성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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