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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살이던 딸 7살 됐는데...이란 인질 된 엄마, 몸값 6510억?

중앙일보

입력

지난 9월 23일 이란에 억류 중인 구호활동가 나자닌 자가리-랫클리프의 구금 2000일을 맞아 런던에서 석방을 촉구하는 캠페인 중인 딸(왼쪽)과 남편. AP=연합뉴스

지난 9월 23일 이란에 억류 중인 구호활동가 나자닌 자가리-랫클리프의 구금 2000일을 맞아 런던에서 석방을 촉구하는 캠페인 중인 딸(왼쪽)과 남편. AP=연합뉴스

 이란에서 5년형을 다 채우고 또다시 1년형을 선고받은 구호활동가의 항소가 기각됐다. 남편과 딸이 기다리는 영국으로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나자닌 자가리-랫클리프(43)는 또 한 번 좌절하게 됐다. 나자닌의 석방 운동을 벌이는 ‘프리나자닌’은 16일(현지시간) 트위터에 “나자닌의 변호사는 사법부로부터 항소 기각 사실을 통보받았다”며 “청문회도 없었고 구금 일정도 밝히지 않았다”고 밝혔다.

영국에서 자선단체 톰슨로이터재단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로 일하던 나자닌은 지난 2016년 4월 휴가를 맞아 딸을 데리고 이란 친정을 방문한 뒤 귀국하던 길에 테헤란 공항에서 체포됐다. 이후 ‘체제 전복 모의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지난 3월 형이 만료됐지만, 한 달 만인 지난 4월 ‘체제 선동 혐의’로 1년형을 선고받았다. 12년 전 영국 주재 이란 대사관에서 열린 시위에 참여했다는 게 그 이유다. 그사이 2살이던 딸은 이제 7살이 됐다.

12년 전 시위 참여했다고 ‘체제 선동’

지난 3월 7일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나자닌. 한 달 만에 또다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AP=연합뉴스

지난 3월 7일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나자닌. 한 달 만에 또다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AP=연합뉴스

이란·영국 이중국적자인 나자닌은 수감 당시 독방에서 하루에 8~9시간씩 눈을 가린 채 심문을 받았다고 한다. 영국에 있는 남편과 동시 단식 투쟁까지 불사했고, 2019년 테헤란의 한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과 불안 때문에 나자닌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와 우울증, 강박 스트레스 장애 등 진단을 받았다. 코로나19로 지난해 3월 가석방돼 가택연금 상태였던 나자닌은 언제 또다시 수감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나자닌의 남편 리처드 랫클리프는 이날 BBC에 “아내는 (사법당국의) 소환 통보만 기다리고 있다”며 “언제 또 감옥에 들어갈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딸에게 전화를 걸어 사랑한다고 말한다”고 밝혔다. 리처드는 아내가 체포된 후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고, 딸 가브리엘라는 이란 외갓집에서 지내다가 학교 진학을 위해 2019년 영국으로 돌아갔다.

2018년 8월 26일 3일간 임시 석방됐던 나자닌이 딸을 안고 있다. AFP=연합뉴스

2018년 8월 26일 3일간 임시 석방됐던 나자닌이 딸을 안고 있다. AFP=연합뉴스

나자닌은 테헤란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뒤 영어교사를 하다가 2003년 이란에서 발생한 지진 현장에서 구호단체 번역가로 활동한 것을 계기로 국제적십자사, 세계보건기구 등 국제기구에서 경험을 쌓았다. 2007년 영국 메트로폴리탄 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 석사 과정을 공부하려고 영국으로 이주한 뒤 지금의 남편을 만나 2009년 결혼해 영국에 정착했다. 2011년부터는 톰슨로이터재단에서 일하면서 2014년 6월 딸을 출산했다.

석방 대가는 탱크 구입자금 6510억원? 

2017년 1월 영국 주재 이란 대사관 앞에서 아내의 석방을 촉구하는 남편 리처드 랫클리프. AP=연합뉴스

2017년 1월 영국 주재 이란 대사관 앞에서 아내의 석방을 촉구하는 남편 리처드 랫클리프. AP=연합뉴스

나자닌 사건은 인질외교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외교가에선 이란 정부가 나자닌을 붙잡은 건 영국 정부로부터 4억 파운드(약 6510억원)를 받아내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란의 팔레비 국왕 정권이 영국에서 탱크 구매 비용으로 영국 은행에 예치해둔 금액이다. 1979년 왕정 체제가 붕괴되면서 거래는 일부 취소됐다. 2016년 서방국의 이란 경제 제재 해제 약속에도 영국 정부가 예치금 반환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그해 나자닌을 체포했다는 것이다. 유엔은 2016년부터 수차례 나자닌의 석방을 공식 촉구했고, 영국 외무부(FCO)는 2019년 이 문제를 영사 사건에서 양국 정부 간 문제로 격상시켰다.

BBC는 “나자닌은 지정학적 게임이 펼쳐지는 체스판 위의 말이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졌다”며 “이란은 나자닌의 자유와 (이란 정부가 인정하지 않는) 이중국적을 얻기 위해선 대가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나자닌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뤄진 거래에서 영국이 지고 있는 부채를 갚으라는 것”이라면서다. 나자닌의 남편 리처드는 “(영국이) 빚을 갚지 않으면 아내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게 될까 봐 무섭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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