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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 이혁 결선행, 빛나는 집중력으로 관객 마음 훔쳤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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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원재연의 쇼팽콩쿠르 라이브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진행 중인 제18회 쇼팽 국제 콩쿠르 3라운드(준결선)가 16일(현지시간) 마무리됐다. 피아니스트 원재연이 바르샤바 현지에서 연주 현장의 생생한 풍경, 두 번째 이야기를 전한다.

한국 참가자 중 유일하게 쇼팽 국제 콩쿠르 결선에 진출한 21세 피아니스트 이혁. 테크닉과 음악성 모두로 주목받았다. [EPA=연합뉴스]

한국 참가자 중 유일하게 쇼팽 국제 콩쿠르 결선에 진출한 21세 피아니스트 이혁. 테크닉과 음악성 모두로 주목받았다. [EPA=연합뉴스]

오전 9시 반 폴란드 바르샤바 내셔널 필하모닉 홀 앞. 오전 10시부터 열리는 쇼팽 콩쿠르 준결선 티켓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로 북적인다. 대기 줄이 100m 이상이다. 쇼팽 협회가 초대한 각국의 음악 축제 관계자들, 기자들, 각지에서 온 예약 완료 관객들이 홀 안으로 들어가는 사이 예매를 못 한 사람들은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추가 표를 기다린다. 이런 모습이 매일 반복된다.

이날 저녁 주최 측은 결선 진출자 12명을 발표했다. 한국의 이혁(21)이 포함됐다. 필자는 한국의 김수연(27)과 이혁을 포함한 참가자들의 연주를 감상했다. 무엇보다 대회에 대한 바르샤바 시민들의 관심이 어마어마하다는 점을 먼저 알리고 싶다.

쇼팽 협회 미디어 총괄 대변인 알렉산더 라스코프스키는 필자와 인터뷰에서 “쇼팽은 폴란드의 유일한 자랑이며, 음악을 모르는 사람들도 쇼팽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또 “특히 이 콩쿠르는 자국의 어떠한 이벤트보다 시민의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덧붙여서, 한국에서 유튜브로 콩쿠르를 즐기는 많은 사람에게 진지한 감사를 보낸다고 꼭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기존의 스케줄로는 지난해 10월 열렸어야 할 콩쿠르다. “준비를 더 했다. 쇼팽 협회가 무엇보다 걱정한 점은 참가자 모두의 스케줄이었다. 또 그들의 마음이 쇼팽 음악에서 멀어질까 걱정하며 콩쿠르에 대한 정보를 모든 참가자에게 계속 전달했다”고 했다.

바르샤바 내셔널 필하모닉 홀을 가득 채운 쇼팽 국제 콩쿠르 청중. [EPA=연합뉴스]

바르샤바 내셔널 필하모닉 홀을 가득 채운 쇼팽 국제 콩쿠르 청중. [EPA=연합뉴스]

쇼팽 콩쿠르 조직위가 하는 일은 대단하다. 그중에서도 참가자 한명 한명을 나이·국적 불문하고 한 사람의 예술가로 대우해주며, 몸과 마음을 보살핀다는 점이 감동적이다. 사실 콩쿠르에 참가하다 보면 참가자들을 비즈니스로만 대하는 곳이 많았다. 하지만 쇼팽 콩쿠르는 참가자들의 마음을 특별히 보살피는 점이 최대의 장점 중 하나다. 참가자 각자의 연주 영상과 사진을 남기고, 인터뷰를 진행한다. 식사와 숙박은 수준 높은 호텔에서 해결하게 하며 3주 동안 좋은 컨디션을 유지 할 수 있게 한다.

또 콩쿠르가 열리는 내셔널 필하모닉 홀은 세계 최고의 관객들로 가득 찬다. 참가자들의 연주 순간을 기다리고, 연주가 끝나면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을 보내준다.

이번 준결선은 지난 대회보다 참가자 수준이 굉장히 높았다. 쇼팽 협회, 언론, 관객들도 아주 흥분했다.

결선 진출 12명 중 한국의 이혁은 어린 나이답지 않은 훌륭한 기술을 보여줬다. 건반을 다루는 기술뿐 아니라 관객의 마음을 훔치는, 깊고 빛나는 집중력이 큰 무기였다. 반짝이는 재능으로 큰 박수를 받으며 결선 무대에 진출했다.

캐나다의 브루스 샤오 유 리우(24)는 준결선 연주곡 중 ‘돈 조반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에서 시작 음부터 마지막 음 이후 손을 뗄 때까지 청중의 귀를 집중시켰다. 고급스럽지만 무겁지 않은 논 레가토(연결하지 않고 연주하는) 주법과 환상적 페달로 관객들을 홀렸다. 리우는 만석의 내셔널 필하모닉 홀이 떠나가라 기립박수를 받고 결선에 진출했다.

스페인 출신의 마틴 가르시아(24)는 쇼팽의 리듬을 좋은 의미로 과장하여, 만약 쇼팽이 폴란드대신 스페인 출신이라면 했을 법한 멋지고 자연스러운 플라멩고 웨이브를 창조해 결선에 올랐다. 일본의 아이미 고바야시(26)는 쇼팽의 어두운 면을 조명하며 전주곡을 연주했는데 필자가 들어본 많은 전주곡 중 제일 어둡고 무거웠다. 또 그 해석을 관객들에게 설득하는 작업이 놀랍게도 성공적이었다. 결선 진출자 중 가장 강한 인상을 관객에게 남겼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쉬움도 있었다. 김수연의 연주는 폴란드 사람들도 놀라워하는 서정미로 높은 수준을 보였다. 쇼팽 그 자체의 자연스러운 소리로 기립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현지 평론가, 바르샤바 음악원 교수들의 극찬에도 결선엔 진출하지 못했다. 러시아 니콜라이 코자이노프(29)의 완벽한 틀과 구조적 움직임에 따라온, 슬라브 음악을 떠올리게 하는 쇼팽은 관객과 현지 언론의 큰 사랑과 관심을 받았지만 이 성공적인 연주 역시 결선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이번 대회 폴란드 국적 피아니스트 중 가장 주목받은 참가자가 있는데, 6년 전 대회 결선에 올랐던 시몬 네링(27)이다. 아름다운 피아니시모를 연주 내내 창조했지만 컨디션 난조와 폴란드 국적이 주는 중압감 때문인지 자기 연주를 못 하고 페이스를 잃으며 결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제18회 쇼팽 콩쿠르는 18~20일 결선 여정을 펼친다. 12명은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쇼팽의 협주곡 1· 2번 중 한 곡을 연주한다. 이혁의 훌륭한 연주를 기대한다. 한국 시간으로 21일 오전에 수상 결과가 발표될 것이다. 한국 유일한 진출자인 이혁의 수상 가능성도 흥미롭지만, 어리고 재능 넘치는 각각 참가자들의 예술성을 한국에서도 새로 발견하고 즐기는 사흘이 되기를 멀리 바르샤바에서 희망한다.

◆피아니스트 원재연

원재연

원재연

당 타이손이 “최고의 프로페셔널리즘을 타고난 천부적 피아니스트”라 극찬했다. 부조니 국제 콩쿠르 준우승 및 청중상, 칼로버트 크라이텐 프라이즈 수상. 스페인 페롤 피아노 콩쿠르, 동아 음악 콩쿠르 등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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