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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만든 ‘고양이를 부탁해’…지금 20대에 위로가 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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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고양이를 부탁해’ 2001년 포스터. 이요원·배두나·옥지영의 모습이 담겼다. [사진 엣나인필름]

‘고양이를 부탁해’ 2001년 포스터. 이요원·배두나·옥지영의 모습이 담겼다. [사진 엣나인필름]

“2001년 태어난 스무살 관객이 영화를 보고 위안을 얻었다는 메시지를 남겨줘서 놀라기도 했습니다.”

갓 스물 청춘들의 이야기 ‘고양이를 부탁해’(2001)를 다시 꺼내 든 정재은(52·사진) 감독이 e메일로 밝힌 소감이다. 13일 개봉 20주년을 맞아 재개봉한 이 영화는 메가박스·CGV 등 예매 관객 평점이 10점 만점에 9점을 웃돈다. “따스한 포옹과 자판기 커피 같은 영화”라며 향수를 곱씹는 재관람객도 있지만, “20년 전에 이런 영화가 있었구나” “요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공감하는 MZ세대도 적지 않다. “20년 전에 만들어 현재의 20대들에게 영감을 주는 영화” “청춘의 고전”이란 평도 있다.

정재은 감독.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정재은 감독.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고양이를 부탁해’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1기 졸업생이던 정 감독이 각본·연출을 맡은 데뷔작이다. 인천의 다섯 친구가 상고 졸업 후 사회에서 겪는 쓰라린 성장통과 우정을 그렸다. 증권사에 다니는 혜주(이요원), 찜질방집 딸인 몽상가 태희(배두나), 판자촌에 사는 지영(옥지영), 차이나타운의 화교 쌍둥이 비류(이은주)와 온조(이은실)까지 20대 여성들의 고단한 삶을 포착했다. 채용 면접관이 지영에게 “낮술은 좀 하나?”라고 히죽대며 묻거나, 증권사 팀장이 혜주에게 “평생 잔심부름이나 하는 저부가가치 인간으로 살 순 없잖아”하는 대사들은 요즘 봐도 와 닿는다. 주연배우들의 생기 넘치는 연기도 호평받았다.

이번 재개봉은 지난 8월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디지털 리마스터링한 버전을 처음 공개해 관객의 호응을 얻으며 성사됐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선 아시아 여성 감독 역대 최고 영화 10편에 선정돼 상영됐다. 정 감독은 “다가올 밀레니엄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던 세상에 대한 상념이 있었다. 밀레니엄의 축포가 나의 것은 결코 아닌 것 같다는 그런 상념이었다”고 연출 당시를 돌이켰다.

20년 전 개봉날은 어땠나.
“이요원 배우가 영화를 보고 많이 울어 속상했던 기억이 있다. 혜주는 현실이란 층위를 가장 단단하게 지탱해주는 캐릭터여서 공을 많이 들였다. 개인 설정 부분이 많이 편집됐다. 애정만큼 상실감도 컸을 것이다. 저 역시 세상의 벽을 크게 느낀 하루였다. 상영관들이 다 텅텅 비었었다.”
서울 관객 3만명에 그친 당시 관객들이 다시 보기 운동도 벌였는데.
“당시 광고나 패션잡지를 보면 소녀들과 젊은 여성이 소비의 주체로 부각되고 있었다. 조금 신비화해 있기도 했다. 그래서 가난하고 외롭게 등장한 영화 속 젊은이 모습은 보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 그들은 문화의 주체가 돼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  

그는 “20년 전만 해도 ‘고양이를 부탁해’라는 청유형 제목, 스무살 여성 주인공들을 모두 낯설어했다”며 “강압적인 사회에서, 조금은 청유형 사회로 발전한 것 같다”고 짚었다. “그렇지만 젊은이들은 더 외롭고 불안한 사회가 된 것 같다”는 정 감독은 “코로나19로 모두 어려운 시기에 20년 전 서로를 향해 열린 마음으로 다가간 다섯 주인공이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영화를 디지털로 전환하며 화질은 아주 좋아졌다. 정 감독은 “특히 밤 장면의 디테일이 좋아졌다. 배우들의 디테일한 연기도 새롭게 보게 됐다”며 “배우에 대한 나의 시선이 바뀌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표정, 대사 하기 전 호흡, 눈동자 움직임 같은 것들을 보면서 스무살 배우들이 보여주는 예민한 연기를 즐길 수 있었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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