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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첫날 주연배우 울고 상영관 텅비었는데…'청춘 고전'된 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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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양이를 부탁해'가 개봉 20주년을 맞는 13일 재개봉했다. 사진은 2001년 개봉 당시 포스터 이미지. 왼쪽부터 주연배우 이요원, 배두나, 옥지영이 포즈를 취했다. [사진 엣나인필름]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가 개봉 20주년을 맞는 13일 재개봉했다. 사진은 2001년 개봉 당시 포스터 이미지. 왼쪽부터 주연배우 이요원, 배두나, 옥지영이 포즈를 취했다. [사진 엣나인필름]

“2001년 태어난 스무살 관객이 영화를 보고 위안을 얻었다는 메시지를 남겨줘서 놀라기도 했습니다.”
갓 스물 청춘들의 이야기 ‘고양이를 부탁해’(2001)를 다시 꺼내 든 정재은(52) 감독이 e메일로 밝힌 소감이다. 13일 개봉 20주년을 맞아 재개봉한 이 영화는 메가박스‧CGV 등 예매 관객 평점이 10점 만점에 9점을 웃돈다. “따스한 포옹과 자판기 커피 같은 영화”라며 향수를 곱씹는 재관람객도 있지만, 이번에 처음 보고 “20년 전에 이런 영화가 있었구나” “요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공감하는 MZ세대도 적지 않다. “20년 전에 만들어 현재의 20대들에게 영감을 주는 영화”“청춘의 고전”이란 관객 평도 나왔다.

'고양이를 부탁해' 20년만에 재개봉 정재은 감독 #인천 여상 출신 20대 친구들의 삶과 우정 그려 #당시 조기종영 위기에 관객들 '다시보기' 운동 #"젊은이들은 더 외롭고 불안한 사회 된 거 같아" # #

‘신인’ 배두나·이요원 연기 호평…다시 보기 운동도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주인공들 저마다의 주거불안은 가장 중요한 사건이자 풍경으로 등장한다. 정재은 감독은 “집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한 것은 맞다”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청년들이 독립된 주거 공간을 가지는 건 쉽지 않았다”고 했다. 사진은 태희(배두나)가 지영(옥지영)이 사는 판자촌을 찾아가는 장면이다. [사진 엣나인필름]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주인공들 저마다의 주거불안은 가장 중요한 사건이자 풍경으로 등장한다. 정재은 감독은 “집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한 것은 맞다”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청년들이 독립된 주거 공간을 가지는 건 쉽지 않았다”고 했다. 사진은 태희(배두나)가 지영(옥지영)이 사는 판자촌을 찾아가는 장면이다. [사진 엣나인필름]

‘고양이를 부탁해’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1기 졸업생이던 정 감독이 각본‧연출을 맡은 데뷔작이다. 인천의 다섯 친구가 상고 졸업 후 사회에서 겪는 쓰라린 성장통과 우정을 그렸다. 증권사에 다니는 혜주(이요원), 찜질방집 딸인 몽상가 태희(배두나), 판자촌에 사는 지영(옥지영), 차이나타운의 화교 쌍둥이 비류(이은주)와 온조(이은실)까지 당대 현실 속에 살아 숨 쉬는 20대 여성들의 고단한 삶을 섬세하게 포착했다. 채용 면접관이 지영에게 “낮술은 좀 하나?”라고 히죽대며 묻거나, 증권사 팀장이 고졸 혜주에게 “평생 잔심부름이나 하는 저부가가치 인간으로 살 순 없잖아”하는 대사들은 요즘 봐도 와 닿는다. 신예였던 주연배우들의 생기 넘치는 연기도 호평받았다. 조폭 코미디 등에 밀려 2주만에 조기 종영할 위기에 처하자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다시 보기 운동을 벌인 것도 유명하다. 그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선 넷팩상(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을 받았다.

이번 재개봉은 지난 8월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디지털 리마스터링한 버전을 처음 공개해 관객의 호응을 얻으며 성사됐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선 아시아 여성 감독 역대 최고 영화 10편에 선정돼 상영됐다. e메일 인터뷰에서 정 감독은 “다가올 밀레니엄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던 세상에 대한 상념이 있었다. 밀레니엄의 축포가 나의 것은 결코 아닌 것 같다는 그런 상념이었다”고 연출 당시를 돌이켰다.

20년 전 개봉날을 어떻게 기억하나.  
“개봉날 이요원 배우가 영화를 보고 많이 울어 속상했던 기억이 있다. 이 배우는 당시 드라마와 영화 촬영을 병행하며 바쁜 스무살을 보냈다. 그가 맡은 혜주는 현실이란 층위를 가장 단단하게 지탱해주는 캐릭터였기에 현실감 있고 설득력 있게 창조하기 위해 인터뷰와 증권사 헌팅에 공을 많이 들였다. 1차 편집본이 3시간 20여분이 나왔고 전체적으로 인물 각각의 개인적인 설정 부분이 많이 편집됐다. 애정이 컸던 만큼 상실감도 컸을 것이다. 저 역시 세상의 벽을 크게 느낀 하루였다. 상영관들이 다 텅텅 비었었다.”
당시 서울 관객 3만명에 그쳤지만, 다시 보기 운동이 벌어졌다. 이번 재개봉도 반기는 관객이 많다.  
“20년 전 광고나 패션잡지를 보면 소녀들과 젊은 여성들이 소비의 주체로 부각된 때였다. 조금 신비화돼있기도 했다. 그래서 가난하고 외롭게 등장한 영화 속 젊은이들의 모습은 보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 그들은 문화의 주체가 되어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 지금의 관객이 이 오래된 영화를 어떻게 볼지 상상이 안 된다.”
정재은 감독.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정재은 감독.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20년 지난 지금…"젊은이 더 외롭고 불안한 사회"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낙엽만 굴러도 깔깔대던 친구들은 각자 다른 길을 걸으며 점점 멀어진다. 지영이 데려온 아기 고양이 '티티'는 연약하지만 꼭 지켜주고 싶어지는 존재. 친구들을 잇는 새로운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정재은 감독은 "고양이는 혼자 키우기 어렵다"면서 "(영화를 만들던) 그때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는데 키울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그후에는 더이상 고양이를 키우지 못하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고양이를 보면 그 아름다움에 눈을 못 떼겠다. 언젠가는 꼭 고양이랑 행복하게 살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마술피리]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낙엽만 굴러도 깔깔대던 친구들은 각자 다른 길을 걸으며 점점 멀어진다. 지영이 데려온 아기 고양이 '티티'는 연약하지만 꼭 지켜주고 싶어지는 존재. 친구들을 잇는 새로운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정재은 감독은 "고양이는 혼자 키우기 어렵다"면서 "(영화를 만들던) 그때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는데 키울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그후에는 더이상 고양이를 키우지 못하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고양이를 보면 그 아름다움에 눈을 못 떼겠다. 언젠가는 꼭 고양이랑 행복하게 살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마술피리]

그는 “재개봉을 하면서 사회적 변화도 많이 느낀다”고 했다. “20년 전만 해도 ‘고양이를 부탁해’라는 청유형 제목, 스무살 여성 주인공들을 모두 낯설어했습니다. 강압적인 사회에서, 조금은 청유형 사회로 발전한 것 같아요.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영화도 많아지고 있고요.” 그렇지만 “젊은이들은 더 외롭고 불안한 사회가 된 것 같다”고 짚었다. “코로나19로 모두들 어려운 시기에 20년 전 서로를 향해 열린 마음으로 다가갔던 다섯 주인공들이 위로로 다가갔으면 좋겠다”면서다.
“내가 혼자 있고 싶을 때 갈 곳은 극장뿐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관객들이 있으리라 생각해요. 그냥 어두운 곳에서 누군가 길을 걷는 풍경을 조용히 보고 싶을 때도 있고 친구들이 모여서 수다 떠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만 있어도 좋을 때도 있어요. 그렇게 이 영화를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필름으로 촬영한 영화를 디지털로 전환하며 화질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정 감독은 “무엇보다 밤 장면의 디테일이 좋아졌다”면서 “배우들의 디테일한 연기도 새롭게 보게 됐다. 그건 배우들을 보는 나의 시선이 바뀌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표정이나 대사 하기 전 호흡, 눈동자 움직임 같은 것들을 보면서 스무살 배우들이 보여주는 예민한 연기를 저조차 즐길 수 있었다”고 했다.

팟캐스트 '배우 언니' 배두나편(https://www.joongang.co.kr/jpod/episode/662).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SIWFF)가 상영한 배두나 특별전, 개봉 20주년 주연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사진)를 중심으로 연기 데뷔 후 22년간 봉준호, 박찬욱, 고레에다 히로카즈, 워쇼스키 등 명감독들의 영감이 돼온 '성실한 모험가' 배우 배두나를 집중 탐구했다. [사진 배우 언니, SIWFF]

팟캐스트 '배우 언니' 배두나편(https://www.joongang.co.kr/jpod/episode/662).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SIWFF)가 상영한 배두나 특별전, 개봉 20주년 주연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사진)를 중심으로 연기 데뷔 후 22년간 봉준호, 박찬욱, 고레에다 히로카즈, 워쇼스키 등 명감독들의 영감이 돼온 '성실한 모험가' 배우 배두나를 집중 탐구했다. [사진 배우 언니, SIW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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