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이번 대선 도전을 ‘마지막 소명’이라고 부른다.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반드시 승리하겠다”며 더는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당내 대선 후보 경선까지 모두 합쳐 4수째인 그에겐 ‘또 상정’이라는 비판도 달리지만, 결국 정의당 당원들은 심 후보가 내민 마지막 손을 잡았다.
100% 당원 투표로 진행된 12일 경선 결선 투표에서 “당원들은 아슬아슬한 표차로 본선 경쟁력을 선택”(여영국 대표)했다. ‘세대교체’를 내건 이정미 전 대표를 264표(2.24% 포인트) 차로 꺾었다. 이런 결과에 심 후보는 “대선 후보는 심상정이 돼야 한다는 당원들의 절박한 마음이었다고 생각한다”며 “당의 정치적 전망을 열어내는 역할을 당원들이 저에게 부여한 것”이라는 의미를 덧댔다.
민주당과 차별화 나선 沈…민주당 이탈층 흡수할까
후보 선출 후 13일 첫 공식 일정으로 정의당의 상징이었던 고(故) 노회찬 전 의원 묘소부터 찾은 건, 정의당 본색을 되찾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심 후보는 8월 29일 출마 선언 때부터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큰 차이가 없다”며 차별화를 내세웠다. 후보 선출 감사 연설에선 “민주당은 가짜 진보로 넘쳐난다”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단일화 여부엔 “관심 없다”고 수차례 공언했고, 오히려 “이번 대선은 심상정으로 단일화해야 승리할 수 있다”(13일 라디오)며 역(逆) 단일화를 제안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재명 후보에겐 “누가 부동산 투기공화국 해체 적임자인지 무제한 양자토론을 제안한다”(12일 감사 연설)며 대립각을 세웠다. 연일 대장동 특검을 주장하는 그는 13일 라디오에선 이 후보의 대장동 사업 배임 의혹을 제기하며, “민주당 내에서 (이 후보의 배임) 우려를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13일 라디오)며 민주당 내 틈새를 노렸다.
실제 민주당 내부에선 이낙연 전 대표 측의 ‘경선 불복’ 논란 이후 후유증이 가시지 않고 있다. 오마이뉴스ㆍ리얼미터의 ‘이재명ㆍ윤석열ㆍ심상정ㆍ안철수 4자 가상 대결’ 조사(11~12일)에서 ‘민주당 경선에서 이낙연 전 대표를 지지한 사람’(604명) 중 고작 14.2%만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이 전 대표 지지층이 이 후보 대신 선택한 쪽은 국민의힘 윤석열 전 검찰총장(40.3%)이 많았다. 심 후보는 4.9% 지지율만 흡수했지만, 내심 “아무리 이재명이 싫어도, 민주당원들이 윤석열을 찍겠느냐. 결국 민주당 이탈표는 심 후보 쪽으로 옮겨올 것”(심상정 캠프 관계자)이란 기대가 있다. 이와 관련 심 후보는 윤석열 전 총장의 고발 사주 의혹을 연일 제기하며 ‘윤석열 리스크’를 부각하고 있다.
여기에 이번 대선이 ‘비호감 대선’으로 흐르는 점이, 심 후보에겐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재명(민주당), 윤석열ㆍ홍준표(이상 국민의힘) 등 양당 대선 주자들의 비호감도가 50% 이상으로 그 어느 때보다 높아서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조국 사태를 거치며 정의당과 심상정에 대한 호감도가 떨어지긴 했으나, ‘심블리’라는 별명이 있는 심 후보는 다른 주자들에 비해 부패 이미지는 가장 적다”며 “양당 후보에 실망한 민심이 심 후보에게 쏠릴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사표 방지 심리, 당내 분란…넘어야 할 고비 산적
다만 심 후보가 넘어야 할 현실적 고비도 적지 않다. 재집권과 정권 교체라는 거대 여야 지지층의 열망이 대선판을 집어삼킬 수 있다. 양당도 “본선은 2~3% 박빙의 승부”(7월 14일, 이재명 후보), “지금 대선 하면 박빙이거나 5% 포인트 차이 패배”(지난달 17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라며 위기감을 고조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양측의 사표 방지 심리가 커지면서 제3후보의 확장력에 한계가 생길 수 있다.
정의당 내부의 분란 요소도 있다. 2019년 조국 사태에서 보인 지도부의 애매한 태도가 계기였는데, 당시 당 대표가 심 후보였다. 민주당과 연대해 통과시킨 연동형 비례제는 민주당의 위성정당 창당으로 ‘뒤통수’를 맞았고, 지난 총선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표(6석)를 받았다. 이에 총선 직후 심 후보는 “모든 책임은 제가 감당하겠다”며 대표직 임기를 2년에서 1년으로 단축해 조기 사퇴했다.
지난해 8월엔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조문을 거부한 같은 당 류호정ㆍ장혜영 의원과 관련해선 “대표로서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류 의원은 경선에서 이정미 전 대표를 지지했고, 심 후보를 겨냥한 ‘제껴라, 믿는다’란 슬로건을 만들었다. 정의당 관계자는 “전체 구도는 제3당에 불리한 팽팽한 양당 구도이고, 내부엔 심 후보에게 실망한 당원들이 적지 않다”며 “그럼에도 이런 위기를 극복할 적임자가 심상정이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당내 여론”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