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석 오란다꼬?" 빵식이 아재, 공황장애 약 삼키고 달려갔다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2021.10.16 05:00

업데이트 2021.10.21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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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 레저팀장의 픽

‘유 퀴즈 온 더 블럭’ 촬영을 마치고 진행자 유재석, 조세호와 기념사진을 찍은 경남 남해 ‘행복 베이커리’ 대표 김쌍식씨. 사진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촬영을 마치고 진행자 유재석, 조세호와 기념사진을 찍은 경남 남해 ‘행복 베이커리’ 대표 김쌍식씨. 사진 tvN

“하이고, 마. 심장이 벌렁벌렁거려서 죽는 줄 알았어에. 서울까지 가는 데 화장실을 몇 번이나 간 줄 아십니꺼? 여섯 번이라예, 여섯 번. 서울은 차가 우째 그리 밀리는지. 40분이나 지각했어예. 촬영이예? 몰라예. 하나도 기억이 안 나예. 뭐라뭐라 한 것 같은데, 벌써 끝났다 하대예. 근데 유재석은 참말로 멋있더예.”

경남 남해에서 서울까지 자동차로 4시간 남짓 거리. 새벽 5시에 출발했다는 그는 오전 11시 40분이 돼서야 강남의 한 카페에 들어섰다. 조명 들어오고 몇 마디 주고받다 1시간이 훌쩍 지났고, 그 길로 내려왔다. 이렇게 우왕좌왕하는 사이, 남해 ‘행복 베이커리’ 김쌍식(47) 대표의 우여곡절 상경기(上京記)는 끝이 났다.

20일 방영되는 tvN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는, 유재석을 만나고 싶어 13년 만의 서울 나들이를 감행한 남해의 빵집 아저씨가 출연한다. 유재석을 만나고 돌아온 뒤 그는 “소원을 이뤄 행복하다”고 말했다. 주위와 행복을 나눠 행복하고 소원 같은 사람을 만나 더 행복한, 행복 빵집 아저씨의 사연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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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식이 아재

매일 아침 남해 ‘행복 베이커리’ 앞에 놓이는 빵. 등굣길 아이들이 하나씩 집어 간다. 손민호 기자

매일 아침 남해 ‘행복 베이커리’ 앞에 놓이는 빵. 등굣길 아이들이 하나씩 집어 간다. 손민호 기자

김쌍식씨는 빵 굽는 남자다. 2019년 10월부터 남해초등학교 골목 어귀에서 작은 빵집을 하고 있다. 남해에서 김씨는 ‘빵식이 아재’로 통한다. 2020년 6월부터 등굣길 아이들에게 날마다 공짜 빵 70∼100개를 내놓고 있어서다. 전날 팔고 남은 빵이 아니다. 새벽마다 아이들에게 줄 빵을 새로 굽는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 사무쳤을까. 빵집 앞에 내놓은 선반엔 ‘아침밥 굶지 말고! 하나씩 먹고 학교 가자. 배고프면 공부도 놀이도 힘들지요’라고 적혀 있다. 어렸을 적 그는 늘 배가 고팠다. 밥 못 먹고 학교 가는 날이 밥 먹고 가는 날보다 많았다. 김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제빵을 배웠다. 아마도 그때였을 게다. 빵 가게를 열면 학교 가는 아이들에게 빵을 나눠주겠다고 작정했던 게.

그는 지금 월세에 산다. 11평(약 36㎡) 남짓한 가게도, 가게 4층의 살림집도 월세다. 그런데도 부지런히 빵을 구워 나눠준다. 그가 빵 봉사에 나서는 단체는 12곳. 여기저기 나눠주는 빵이 1년에 2000만 원어치가 넘는다. 그의 몸무게는 54㎏이고, 결혼하지 않았다.

중앙일보는 6월 30일 그의 선행을 보도했다. 화제는 됐지만, 요즘 말로 ‘돈쭐’을 당하진 않았다. 마침 남해에 장맛비가 쏟아졌고, 코로나 확산세가 이어졌다. 남해를 찾는 발길이 뚝 끊겼다. 외지에서 주문이 들어오긴 했다. 하나 그는 모두 거절했다. 혹여 빵이 상할까 싶어서였다.

의인이 된다는 것 

LG의인상을 수상한 김쌍식씨. 손민호 기자

LG의인상을 수상한 김쌍식씨. 손민호 기자

뜻밖의 희소식이 전해진 건 7월 하순이다. LG재단이 수여하는 LG의인상 수상자로 김씨가 선정됐다. 축하 인사가 쏟아졌고 동네에 플래카드가 걸렸다. 손님도 부쩍 늘었다. 자녀를 동반한 부모가 기념사진을 부탁하면서 아이들에게 “훌륭한 분”이라고 말할 땐, 그도 어깨가 으쓱해졌다.

첫 보도 이후, 방송국에서 출연 요청이 쇄도했다. 10건은 확실히 넘고, 20건은 안 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는 라디오 프로그램 전화 인터뷰 한 건과 남해까지 찾아온 방송 프로그램 한 건만 빼고 출연을 거절했다. 그는 낯선 곳을 잘 가지 못 한다. 오래전부터 앓던 공황장애 때문이다. 가슴이 주체할 수 없이 뛰어, 처음엔 심장에 이상이 있는 줄 알았단다. 13년 전 마지막으로 서울에 올라갔던 이유가 심장 전문의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심장에 문제가 없다는 건 그때 알았지만, 공황장애가 있다는 걸 안 건 그로부터 몇 년 뒤다. 요즘도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며 약을 타 먹는다.

“난 달라진 게 없거든예? 근데 동네 사람들은 아니라예. ‘출세했더니 달라졌네’ 해싸며 자꾸 딴죽을 겁니더. 이것저것 달라기도 하고, 옛날엔 안 그랬는데 변했다 하기도 하고... 진짜 내가 변했을까예? 속상해예. 신문에 괜히 나왔나 봐예.”

두 달쯤 전 늦은 저녁 그가 신세 한탄을 늘어놨다. 통화를 끝내고, 그가 무척 외롭구나 생각했다. 오죽했으면 멀리 있는 기자에게 하소연했을까. 물론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행복 여행

남해초등학교 골목 어귀에 있는 김쌍식씨의 '행복 베이커리'. 김씨는 11평 남짓한 가게와 이 건물 4층의 살림집 모두 월세로 살고 있다. 손민호 기자

남해초등학교 골목 어귀에 있는 김쌍식씨의 '행복 베이커리'. 김씨는 11평 남짓한 가게와 이 건물 4층의 살림집 모두 월세로 살고 있다. 손민호 기자

그가 거절한 방송 프로그램 중엔 ‘유 퀴즈 온 더 블럭’도 있었다. 김씨는 그게 제일 아쉬웠다. 유재석을 정말 좋아해서였다. 담당 작가가 코로나 사태 이후 지방 촬영을 못 하고 있다고 했다. 인연이 안 되나 보다 했었는데, 9월 다시 작가로부터 전화가 왔다. “유재석씨가 사장님 상 받은 기사를 읽으셨대요. 꼭 보고 싶어 하십니다.”

‘뭐라꼬? 그 유재석이 나를 보고 싶어한다꼬?’ 그날 이후, 김씨는 잠을 제대로 못 이뤘다. 며칠을 고민하다 13년 만의 상경을 작정했다. 남해에 사는 지인이 기꺼이 동행해주겠다고 했다. 병원을 찾아가 “약을 두 개 먹어도 되느냐” 묻기도 했다.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하나만 먹고 출발했지만, 긴장감은 떨칠 수 없었다. 서울 가는 길, 여섯 번이나 휴게소에 들렀다.

“유재석이요? 연예인은 연예인이데예. 저처럼 말랐는데, ‘슈트빨’이 쥑이데예. 얼굴도 주먹만 하고예.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사진 찍자’ 얘기도 못 했다 아닙니꺼. 방송국에서 사진 안 찍어줬으면 사진 한장 없을 뻔 했심더. 그래도 사고 없이 마친 게 어딥니꺼.”

핸드폰 너머 그의 목소리는 한껏 들떠 있었다. 세상 모두가 불행을 말하는 시절, 행복한 남자의 행복한 여행을 전할 수 있어 행복하다. 아침마다 아이들이 행복한 표정으로 빵을 받아갈 때 그는 제일 행복하다고 했다. 행복은 의외로 가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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