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청년귀농의 진화
경기도 포천에서 딸기 농장을 운영하는 안해성(38) ‘포천딸기힐링팜’ 대표의 하루는 이른 새벽부터 시작한다. 안 대표는 새벽 5시에 일어나자마자 스마트폰 앱으로 농장의 온도와 습도, 일사량을 확인한다. 이어 적절한 양의 햇빛이 들어오도록 센서를 조정해 보온 커튼을 걷는다. 광합성을 위해 해가 뜬 방향으로 상하 이동이 가능한 화분(행잉베드) 높이도 조절한다. 안 대표는 “출근 시간은 7시 30분이지만 기상 직후부터 원격으로 농장을 미리 점검한다”고 말했다.
안 대표가 운영하는 딸기 농장은 작물에 흡수될 비료 배합부터 온실 환경, 화분 높이 등을 원격으로 제어할 수 있는 스마트팜이다. 스마트팜은 비닐하우스·유리온실·축사 등에 정보통신기술(ICT)를 접목해 원격·자동으로 작물과 가축의 생육환경을 적정하게 유지·관리하는 농장이다. 작물의 생장정보의 대한 데이터를 쌓고, 이를 바탕으로 최적의 생장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손가락 터치 하나로 딸기 묘묙 4만여 주가 심어져 있는 농장을 관리하는 말 그대로 ‘똑똑한’ 농법인 셈이다.
시설원예 온실 면적 5년 새 6.5배 늘어
해외에서는 일찍이 스마트팜 기술이 활성화됐다. 네덜란드 기업 프리바(Priva)는 1960년대부터 농업용 온실에 필요한 난방 시스템을 보급했다. 1977년에는 온실에서 원예 작물을 관리할 수 있는 컴퓨터 기반 시스템을 개발해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온실 환경제어 시스템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은 대규모 농지를 관리하기 위한 농기계 기술, 원격 기술에 강점을 보인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완벽히 관리된 온도, 습도로 채소를 재배하는 식물공장형 스마트팜이 적지 않다.
국내에서도 최근 노동력과 비료 등 자원을 절감하면서도 생산성과 품질을 높일 수 있는 스마트팜이 주목받고 있다. 전국에서 ICT가 도입된 시설원예 온실면적은 2015년 769만㎡에서 2019년 5017만㎡로 크게 늘었다. 5년 만에 6.5배 증가한 수치다. 지난 9월에 수집된 스마트팜 데이터가 시설원예와 노지작물 부문에서 각각 1억1237만건, 2481만건에 달할 정도로 많다.
ICT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팜 특성상 관련 기술에 익숙한 20~30대 청년의 관심도 많다. 정부가 만 18세~39세 청년을 대상으로 모집하는 ‘스마트팜 청년창업 장기 교육’의 올해 지원자는 625명으로. 지난해(431명)보다 늘었다. 교육생 평균 연령은 30.4세로 지난해보다 1.2세 낮아졌다. 교육을 담당하는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관계자는 “매년 경쟁률이 높아지는 점을 고려해보면 스마트팜에 대한 청년들의 관심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 대표가 지난해 본격적으로 농장 운영에 뛰어든 것도 일찍이 스마트팜의 가능성을 눈여겨봤기 때문이다. 과거 건설회사에서 인공지능 빅데이터 관련 자동화 시스템 업무를 맡은 그는 이미 다른 영역에서 활성화된 빅데이터 산업이 농업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스마트팜 창업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는 작물 재배 방법, 하우스 설비, 기계 작동 원리 등 스마트팜 관련 지식을 배우기 위해 영농 교육만 1300시간 이상 들었고, 농장에서 수개월간 실습 교육도 받았다. 안 대표는 “스마트팜은 작물 재배, 하우스 설비, 마케팅 등 모든 분야를 골고루 알아야 하는 사업이다”며 “단순히 농사가 아닌 ‘창업’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도시에서 할 일이 없어 시골에서 농사짓는 시대는 지났다”고 덧붙였다.
경기도 이천에 자리한 ‘HS플라워’는 2013년 정부가 추진하는 스마트팜 보급 사업에 선정돼 국내 농가 최초로 ICT를 적용한 농장이다. 가업을 이어 화훼 농사를 짓기로 결심한 홍해수(36) 대표는 대학에서 전자상거래학과 화훼학을 공부하며 스마트팜으로의 변신을 꾀했다. 홍 대표는 자동화 시스템을 통해 150여종의 제라늄과 카네이션을 주로 생산한다. 농장에는 유리 온실의 환경을 조절하는 스마트팜 자동화 시설을 비롯해 냉난방 시설로 생육환경을 조절하는 식물 공장, 테이블 위에서 식물을 재배하는 벤치 재배 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대학 스마트팜 관련 학과도 신설 바람
스마트팜 자동화 시설을 통해 유리온실에 설치된 전기시설을 한 번에 조정할 수 있어 스마트폰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온실 상황을 살필 수 있다. 홍 대표는 “매년 축적되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균일하고 개선된 작물을 재배할 수 있다는 게 스마트팜의 최대 장점”이라며 “식물 공장의 경우 LED 빛을 이용한 인공태양으로 식물을 기르기 때문에 외부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고 안정적으로 출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키운 꽃은 중간 유통 과정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에게 직접 배송한다. 중간 유통 과정이 없으니 물류비용이 절감되고, 소비자는 신선한 꽃을 빠르게 받아볼 수 있다는 게 홍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스마트팜 설비업체가 영세한 편이라 장비가 고장 나면 대처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지만 스마트팜 기술은 분명 편리한 농법”이라고 덧붙였다.
청년들의 스마트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대학에서도 스마트팜 관련 학과가 신설되고 있다. 전북대는 2021학년도부터 스마트팜학과를 신설했다. 경희대는 2022학년도부터 스마트팜과학과를 신설해 신입생을 모집한다.
전문가들은 스마트팜을 꿈꾸기에 앞서 농촌에 사는 것부터 고민해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채상헌 연암대학교 스마트원예계열 교수는 “작물을 기르는 것보다도 농촌에서 사는 걸 힘들어하는 청년들이 많다”며 “스스로 농업에 확신이 없으면 농촌에서의 삶도 버티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스마트팜 기술이 뛰어나더라도 모든 걸 기계가 해주진 않기 때문에 식물의 생리, 토양 비료 등 기본적인 원리를 이해하고 농사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