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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데 가끔 안 엉뚱하단 얘기 들어, 기본은 4차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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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8호 19면

8년 전 소설로 역주행한 작가 윤고은 

죽은 책도 살린다. 이번엔 영국의 추리작가협회다. 1980년생 작가 윤고은의 2013년 장편소설 『밤의 여행자들』(민음사) 얘기다. 지난 7월 협회의 대거상(The Daggers) 번역 부문 수상 이후 시장에서 대접이 달라졌다. 수상 이전 8년간 팔렸던 것보다 수상 이후 3개월간 더 팔렸다.

영국의 추리작가협회는 뭘 본 걸까. 협회 홈페이지에 이런 평을 올려놓았다.

“A wildly entertaining eco-thriller from South Korea that lays bare, with mordant humour, the perils of overdeveloped capitalism.”

신랄한 유머로 자본주의의 병폐를 까발린, 미친 듯이 재미있는 친환경 스릴러. 이런 뜻이다. 재미와 비판. 자본주의 각종 병폐 세태를 유쾌하게 꼬집어온 윤고은의 세계를 적절히 드러내는 평이 아닐 수 없다.

공포·재난 영화, 화면 뚫고 나오는 상상

소설가 윤고은. 현실과 유머를 적절히 버무린 작품들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 임안나]

소설가 윤고은. 현실과 유머를 적절히 버무린 작품들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 임안나]

윤고은은 최근 ‘윤고은표 소설’을 한 권 더 출시했다. 결혼 세태를 건드린 『도서관 런웨이』(현대문학)다. 7일 윤고은을 만났다. 그는 어떻게 웃으면서 불편한 얘기를 할 수 있을까.

 도서관 런웨이(2021)

도서관 런웨이(2021)

『밤의 여행자들』 판매가 크게 늘었다. 이럴 때 보통 역주행이라고 한다.
“세월이 흘러도 읽히는 책을 쓰고 싶지 유행 지나 보이는 책을 쓰고 싶지는 않다. 그런 점에서 무척 반갑다. 2013년 소설책을 출간했을 때 정말 재난 여행 상품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곤 했는데 요즘도 같은 질문을 받는다.”
대거상이 어떤 점을 높이 샀다고 보나.
“신선한 방식의 비틀기, 새로운 추리소설, 이런 얘기들이 많이 나왔던 것 같다. 내 소설에는 자본주의 세태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깔려 있다는 얘기를 전부터 들어왔다. 『밤의 여행자들』에서도 폴이라는 정체불명의 존재에 의해 사람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주어진 만큼만 알고 있을 뿐이다. 더 알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요만큼만 알아도 요만큼의 안정적인 삶을 확보할 수 있어서다. 그런 부분이 사람들에게 잘 읽히는 것 같다. 소설에서 공정 여행 얘기가 나오는데, 공교롭게 비행기를 덜 타 탄소 배출이 줄어드는 코로나 상황과 맞물리며 여행 가는 행위가 과연 어때야 하느냐는 측면에서도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밤의 여행자들(2013)

밤의 여행자들(2013)

『밤의 여행자들』 말고도 어떤 계약이나 거래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 최근작 『도서관 런웨이』 에는 결혼안심보험이 등장한다. 결혼생활에서 불필요한 지출이나 피해가 발생했다는 점을 입증하면 보험금을 지급하는 상품이다. 그만큼 결혼 제도가 위태로워졌다는 비판으로 읽히는데.
“특별히 인식했던 건 아닌데, 그렇긴 하다. 어쨌거나 내 소설에 등장하는 계약들은 모두 본인들이 서명하고 허락한 거다. 본인 사망 시에만 환불되는 『밤의 여행자들』의 말도 안 되는 관광상품이 그렇고, 『도서관 런웨이』의 결혼안심보험이 그렇다. 결혼안심보험 계약자들은 보험 적용이 안 되는 지출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또 다른 지출의 영수증을 챙겨야 하는 상황에 몰린다. 이런 점에서 계약이나 거래는 우리 삶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굉장히 좋은 장치인 것 같다. 어찌 보면 삶이라고 하는 게 기본적으로 불공정 계약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좋게 말하면 선물이겠지만, 나쁘게 말하면 내가 계약해서 태어난 건 아니지 않나.”

한 세계 완성 뒤 한참을 앓는 대작 쓰고파

The Disaster Tourist(재난 여행자·『밤의 여행자들 』영어판·2020) 리지 뷸러 번역/서펀츠 테일 출판사

The Disaster Tourist(재난 여행자·『밤의 여행자들 』영어판·2020) 리지 뷸러 번역/서펀츠 테일 출판사

날 때부터 평등하지 않다는 얘기인가.
“살면서 바꿀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누구든 이 시기에 이렇게 태어나기로 신이나 어떤 존재와 약속한 바 없다. 우리에게 선택권이 없는 거다. 태어나서 세부적인 어떤 계약들을 맺는다는 것 자체가 거대한 계약과정인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소설 속 인물들은 처음에는 선택권이 있었지만 차츰 선택권이 없어지다가 나중에는 도망가고 싶어도 도망갈 수 없는 상황에 빠진다. 명문화된 서류 형태의 계약은 그런 상황을 보여주는 매혹적인 장치라고 생각한다.”
『밤의 여행자들』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도 연상시킨다. 악어 70부터 악어 450까지 숫자로만 명명된 재난 여행지 무이의 현지인들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수백, 수천 달러를 받기로 하고 지역축제에 참가한다.
“다른 선택지가 없어지면 누구나 ‘오징어 게임’ 참가자들처럼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사람들에게 있는것 같다. 소설 쓰면서 공포영화나 재난영화의 스토리가 화면 밖으로 우루루 넘어와 경계가 무화되는 상상을 하곤 했는데, 그런 장면이 가장 무서운 지점인 것 같다.”
인터넷 서점 댓글 가운데 ‘배꼽 잡으며 읽은’, ‘유쾌한 웃음’, 이런 것들이 보인다. 심각한 얘기를 웃기게 한다는 건데.
“내 소설 줄거리를 소개하다 보면 스스로 좀 웃겨지는 경향이 있다. 맨 앞에 재미있는 설정, 뭔가 말도 안 되는 상상적 요소를 끌고 와서 그런 것 같다.”
독자에 대한 배려인가.
“그렇다기보다 내가 재미있고 신선하다고 느끼는 코드가 있어야 소설을 잘 쓸 수 있어서다. 심각하고 진중하게 접근할 수 있는 소재를 황당하게 접근한달까.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약간 봉이 김선달 같은 방식이 재미있고 그런 얘기로 독자들을 설득할 자신도 있다.”
어떻게 하는 건가.
“너무 말이 안 되면 안 되고 약간만 붕 떠 있는 정도, 그 감이 중요한 것 같다.”
엉뚱하다는 얘기를 듣는 편인가.
“엉뚱한데 가끔 안 엉뚱하다는 얘기를 듣는다. 늘, 기본 4차원이었다.”
책 소개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윤고은의 EBS 북카페’를 2년 넘게 진행하는데.
“방송국까지 하루 4시간 출퇴근한다. 지하철 타고 가다가도 소설에 도움 되는 영감이 떠오르면 즉시 받아적는다.”
꿈이 있다면.
“대작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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