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는 연애 같은 것, 그 오묘한 매력 다시 깨우고 싶어”

중앙선데이

입력 2021.10.16 00:02

업데이트 2021.10.1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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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8호 18면

[유주현의 비욘드 스테이지] ‘슈퍼밴드2’ 우승팀 크랙실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크랙실버의 윌리 K, 빈스 윤, 오은철, 대니 리. 박종근 기자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크랙실버의 윌리 K, 빈스 윤, 오은철, 대니 리. 박종근 기자

2021년은 ‘아재’들의 잠자던 록 스피릿이 깨어난 해다. 연초 ‘싱어게인’의 정홍일에 이어 지난주 막 내린 JTBC ‘슈퍼밴드2’의 크랙실버가 1980년대 감성 물씬한 강렬한 퍼포먼스로 4050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글램록밴드 크랙샷-빈스 윤(34), 윌리 K(33), 대니 리(31), 싸이언(25)-과 클래식 피아니스트 오은철(27)이 뭉쳐 웅장한 무대로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다.

서로 초면이었던 다른 결승팀들과 달리 8년 무명시절을 함께 보낸 크랙샷이 중심이 됐기에 탄탄한 팀워크가 유독 빛났다. 정홍일이 밴드를 벗어나 보컬로 승부에 나섰다면, 이들은 밴드 그대로 기타·베이스·드럼에 건반까지 스포트라이트를 고루 나눠 받았다는 점이 특별하다. 대중음악도 보컬만 있는 게 아니라 손발로 악기도 연주해야 완성된다는 ‘완전체’의 의미를 보여준 것이다.

더 값진 건 대중매체에서 사라졌던 밴드 음악을 안방에 되돌려놨다는 사실이다. 이들에 대해 “객관적 평가를 못 하겠다”고 고백한 심사위원 이상순이 “밴드는 시간”이라고 했듯,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오직 좋아한다는 이유로 ‘80년대 음악’을 오래도록 함께해온 이런 사람들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안도감을 누구나 느꼈을 터다. 건즈앤로지즈의 뱀춤부터 오지 오스본의 ‘Mr. Crowley’까지, 전설의 밴드들을 깨알같이 오마주한 것도 4050의 팬심에 불을 붙였다. “전략이었죠. 우리 스타일로는 아예 새로운 걸 만들기보다 향수를 자극하는 게 강점이 될 수 있으니까요.”(윌리) “전설적인 밴드들의 시그니처를 방송에서도 보고 싶은 바람이 있었는데 기회가 없었어요. 저 같은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뱀춤부터 시작한 건데, 뱀춤을 모르는 어린 친구들은 ‘주유소 풍선댄스’라며 좋아하더군요.(웃음)”(빈스)

화제의 1라운드가 위기의 순간

뱀춤을 춘 1라운드 ‘난 괜찮아’부터 급이 다른 퍼포먼스로 화제를 모았지만, 막상 이들에겐 사생결단의 순간이었다. 쟁쟁한 경쟁자들 면모에 기죽어 ‘바로 탈락할지 모르니 어떻게든 기억에라도 남기자’며 발버둥 치는 와중에 드러머 대니에게 ‘사건’이 발생했다. “상대팀이 너무 잘해서 위축돼 있었는데, 연주 시작 20초가 지난 순간부터 제 인이어가 접촉 불량으로 박자 신호가 자꾸 끊기는 거예요. 저만 아는 상황이니 방송을 멈출 수 없고, 제가 삐끗하면 무대가 망할 판이니, 역적이 되지 않으려면 정말 심각하게 집중해야 했죠. 간신히 끝냈는데 윤종신 심사위원이 ‘기대 안 했는데 이렇게 잘할 줄 몰랐다’고 해서 대반전이었어요.”(대니) “박자에 다양한 변화를 줬던 무대라 더 멘붕이었을텐데, 그 와중에 한 번도 안 틀렸어요. 대니가 ‘인간 메트로놈’이거든요. 사실 저도 자신이 없었는데, 그 무대가 잘 풀리면서 열심히 하면 되겠다 기대하기 시작했죠.”(윌리)

‘밴드는 연애와 같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크랙샷은 윌리와 빈스의 스파크 튀는 만남으로 시작됐다. 인디씬에서 나름 소문난 기타리스트였던 윌리가 수많은 러브콜을 뿌리치고 미완의 보컬이었던 빈스와 팀을 꾸린 것이다. “그때는 형 실력이 취미 수준이었거든요. 저런 애 데리고 하려고 나를 거절했느냐며 원성이 자자했죠.(웃음) 근데 제 기준에선 음악성은 몰라도 존재감과 무대 장악력만큼은 1인자였어요. 형을 응원하고 달래면서 끌고 온 건데, 이번에 형이 엄청 성장한 걸 느껴요. 이 정도면 다 크지 않았나 싶고(웃음), 뮤지션으로서도 리스펙트하게 됐죠.”(윌리) “처음 사운드 만지는 걸 봤을 때부터 어떻게든 얘를 갖고야 말겠다 싶었죠.(웃음) 둘이 제대로 해보자며 ‘크랙샷’ 이름을 정하고, 지금은 탈퇴한 베이시스트와 대니까지 뭉치는 데 8개월이 걸렸죠.”(빈스)

원년 멤버였던 베이시스트가 생업 문제로 3년 전 탈퇴하고, 개인 사정으로 이번 인터뷰에는 참석 못 한 싸이언이 합류했다. 사실 마니악한 장르인 메탈 뮤지션으로 산다는 것은 생계를 해결할 ‘부캐’가 필수적인 고된 일이다. 빈스가 일식집 셰프로, 대니가 동대문 의류 수출업체에서 지난달까지 일했던 이유다. 윌리는 기타 조립·수리업을 한다. “메탈이 돈 벌기 좋은 장르는 아니지만 가장 솔직하게 나의 모든 걸 풀어놓을 수 있는 음악이거든요. 내 욕망과 열정을 속 시원하게 터트릴 때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메탈을 해요.”(빈스) “밴드를 하자고 모였는데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메탈이었어요. 각자의 취향이 조금씩 묻어나 우리 색깔을 만든 건데, 이제 은철이 더해졌으니 다섯 명의 취향이 뭉쳐져 또 새로운 결이 나오겠죠.”(윌리)

밴드 공연도 플랫폼이 절실

크랙실버는 은철의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에 힘입어 웅장한 감동이 있는 ‘심포닉 메탈 밴드’가 됐다. 16살 때 국립경찰교향악단이 곡을 위촉했을 만큼 천재 작곡가인 은철은 클래식뿐 아니라 영화와 드라마 음악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슈퍼밴드에서는 프로듀서 예심 ‘추가합격’의 굴욕 후 우승을 거머쥐는 ‘대역전극’의 주인공이 됐다.

클래식 아티스트와 메탈 밴드는 극과 극일 것 같았지만, 은철은 위화감이 전혀 없었다. 유튜브 촬영을 위해 즉흥 연주를 할 때도 늘 한솥밥 먹던 식구처럼 합이 척척 맞았다. 멤버들도 “밴드란 음악을 넘어 인간 대 인간인데, 우리 방식에 스스로 젖어들어 시너지를 내줘서 고맙다”(윌리)고 했다. “어려서 중국에 살았는데, 국제학교 친구들이 록밴드를 좋아하더군요. 저도 밴드에서 기타를 치며 로커의 꿈을 키웠죠. 로커가 되겠다니 부모님이 위험할 것 같다며(웃음) 클래식부터 시키셨는데, 늘 갈증이 있었어요. 슈퍼밴드에서도 형들과 팀이 되고 나서야 하고 싶던 음악을 하게 됐죠. 클래식에 익숙한 입장에서 몸의 감각으로 반응하는 합주를 하는 형들 방식이 낯설었지만, 폭발적이더군요. 형들 통해 밴드의 혼을 배우게 됐어요.”(은철)

매 라운드 팀을 새로 짜는 규칙 때문에 베이스 싸이언과는 한동안 찢어졌지만, 어차피 다시 뭉쳐야만 했다. 8년간 꾸려온 밴드가 와해될 위기에서 마지막 운명을 걸고 나온 ‘원팀’이기 때문이다. “제가 좀 쉬고 싶었어요. 몇 년간 일하랴 공연하랴 쉬는 날이 전혀 없었거든요. 진이 빠져서 일도 공연도 무작정 그만두려던 찰나에 방송을 하게 된 거죠. 경연을 하면서 단순해지더군요. 일단 살아남아야 되니까.”(대니) “대니가 인생 고민을 하다 보니 지금껏 함께 해온 우리로서는 엄청난 위기였죠. 방송 직전의 그 위기가 전화위복이 됐달까. 라운드가 진행되면서 점점 돌아오는 대니 모습에, 빈스 형과 둘이서 한시름 놨죠.”(윌리)

사실 이번 시즌엔 천재적인 출연자들이 많았다. 전국구 실용음악 고수들이 죄다 집결한 양상이었지만, 누구 하나 튀지 않고 팀으로 빛난 크랙실버에게 가장 큰 박수가 쏟아졌다. 좋은 밴드란 대체 뭘까. “이미 유명하고 뛰어난 친구들도 많았는데, 라운드를 거듭하며 느낀 건 혼자서 다 잘하는 것과 밴드 활동은 다르다는 거였죠. 우리가 수월한 면도 있구나 싶었어요.”(윌리) “잘하는 친구들 다 모으면 진짜 최고의 밴드가 되겠다 싶었는데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클래식 앙상블도 있지만, 개성 강하고 실력 좋은 사람들이 서로 희생하고 다듬어져 하나의 원을 만들 때 조화롭게 굴러간다는 걸 깨달았죠. 각자 좀 모자라게 보이더라도 그 자체가 양보를 해서 그런 걸 겁니다.”(은철) “심사위원들도 처음부터 양보가 중요하다고 반복하셨거든요. 경험에서 해주신 말이겠죠.”(대니) “한 사람만 보이고 나머지는 기억 못 하게 되면 밴드라고 할 수 없거든요. 한 명이라도 빠지면 안 될 것 같은 게 밴드의 오묘한 맛이죠. 사실 그게 제일 어려워요.”(빈스)

중앙SUNDAY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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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오묘한 맛’의 진수를 느끼기엔 한국에 밴드문화가 너무 없다. 한때 인디밴드의 메카였던 홍대도 댄스클럽에 점령당한 지 오래다. 밴드가 공연할 장소도, 밴드 공연에 대한 안내도 부실하다. 한마디로 “플랫폼이 없는 게 문제”(대니)란다. “저희처럼 조금이라도 주목받게 된 밴드의 숙제라 생각해요. 밴드 입지가 좋아지려면 사람들이 들어줘야 하는데, 수요가 있어야 방송도 할 테고, 라이브 장비도 확충할 테죠. 그럼 더 많은 기회가 생기고 밴드 생태계도 살아나지 않을까요. 그러려면 우리가 좀 더 매력적으로 다가가야겠죠.”(빈스)

11월 5일 갈라 콘서트를 시작으로 1년 6개월 계약 기간의 목표도 밴드의 매력을 알리는 것이다. 파이널 무대에서 부른 자작곡 ‘타임 투 라이즈’에도 메탈록 부활에 대한 결의가 담겨 있다. “우리 실력이 압도적인 게 아니라 가장 많은 기대를 받아 우승한 거라 생각해요. 앞으로 밴드로서 어떤 음악을 만들까에 대한 기대겠죠. 거기에 보답하다 보면 1년 6개월 후에는 밴드에 대한 시선도 좀 바뀌어있지 않을까요. 빈스 형도 우리 발자국으로 밴드문화가 일어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곡을 썼죠. 우리가 음악 시장 판도를 바꿀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시도해 보겠습니다.”(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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