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킹’의 이빨이 드러났다. 13일 월트디즈니 컴퍼니는 다음달 국내에 출시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디즈니플러스 미디어 설명회와 아시아태평양(APAC) 콘텐트 쇼케이스를 온라인으로 개최했다. 넷플릭스 천하인 한국 시장에 ‘디즈니+’의 강점과 전략을 구체적으로 내보인 첫 자리다.
왜 중요해?
● 디즈니+ 출시가 국내 OTT 시장의 분기점이 될까. 넷플릭스 상륙 후 5년만에 추가되는 글로벌 OTT다. 그새 한국은 넷플릭스 천하(월 이용자 1000만명)가 됐다. 넷플릭스와 힘겹게 싸움 중인 웨이브·티빙·시즌 등 한국 OTT로선 디즈니+의 가세로 산 넘어 산.
● 콘텐트 업계 전반에 디즈니+ 효과가 번질 수 있다.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산업 최정상에 있는 디즈니는 영화·애니메이션·TV프로그램·게임·도서·굿즈·테마파크까지 없는 게 없다. 지적재산권(IP)의 최강자. 이런 디즈니가 글로벌 확장성 큰 한국 IP를 쓸어담겠다고 달려 든다면? ‘한국의 마블’이 되겠다던 카카오엔터테인먼트 같은 콘텐트 기업들은 진짜 마블을 쥔 디즈니와 안마당서 경쟁해야할 판이다.
디즈니+, 나랑 무슨 상관?
● '코로나 집콕' 이후 커지고 있는 콘텐트 갈증을 해소할 선택지가 하나 더 생긴다. 디즈니+는 가입자에게 산하 6개 브랜드(디즈니·픽사·마블·스타워즈·내셔널지오그래픽·스타)의 1만 6000개 이상 콘텐트를 제공한다. 겨울왕국이나 어벤져스만 해도 국내 팬덤이 상당하다. 토이스토리·보스베이비 등 가족이 함께 볼만한 콘텐트가 타 OTT보다 많은 것도 강점.
● 구독료는 월 9900원(연 9만 9000원), 4K 해상도까지 지원한다. 동급 화질의 넷플릭스 프리미엄(1만 4500원)보다 5000원 가량 저렴해 가격경쟁력을 높였다. 프로필은 7개까지, 동시접속 기기는 4대까지 가능하다. 다운로드 가능 기기 수도 10개로 넷플릭스(요금제별 1~4대)보다 많다.
‘넷플 성지’ 한국, 디즈니+가 노리는 것
● 한국 찍고 아·태 : ‘넷플릭스 타도’를 외치던 글로벌 OTT 대부분이 실패했다, 디즈니+만 빼고. 디즈니+는 2019년 12월 북미 출시후 16개월 만에 가입자 1억명을 돌파했다. 현재는 1억 1600만명. 디즈니+가 넷플릭스(2억 900만명)를 따라잡기 위해 공들이는 지역이 바로 아시아·태평양이다. 이번에 한국·홍콩·대만 출시로 아태 지역 내 디즈니+ 서비스 국가는 11개국으로 늘어난다. 루크 강 월트디즈니 컴퍼니 아태총괄 사장은 “아태에서 세계적 수준의 크리에이터가 등장하고 있으며, 로컬과 글로벌 수준을 동시에 충족시킬 콘텐트가 나오고 있다”며 “디즈니+가 아태 OTT 생태계의 중심 축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결국은 IP : OTT는 거들 뿐, 핵심은 창작자 네트워크와 IP 발굴이다. 디즈니는 이날 아태지역 크리에이터와 디즈니의 전문가를 이어주는 ‘크리에이티브 익스피리언스’ 프로그램(2022년 시행)을 발표했다. 뛰어난 창작자를 우군으로 삼고, ‘오징어 게임’, ‘기생충’ 같은 글로벌 IP를 한국서 발굴하겠다는 취지다. 제시카 캠-엔글 아태 콘텐트 및 개발 총괄은 “우리의 전략은 아태 지역 최고 스토리텔러와의 협력”이라며 “앞으로 2년간 아태에서 50개 이상의 오리지널 콘텐트를 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디즈니+ 한국서 통할까
● 소비자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과 콘텐트 팬덤은 유리한 조건이다. 창작자 시장에선 그동안 넷플릭스가 재미를 본 '로컬 오리지널' 시장을 파고 들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당장 내년에 인기 웹툰 ‘무빙’(강풀 원작), 로맨틱 멜로 '설강화'(스카이캐슬 제작진), 미스테리 스릴러 '그리드'(비밀의 숲 이수연 작가) 등 한국 오리지널 7개를 내놓을 예정. 산하 브랜드 중 스타가 이런 오리지널 콘텐트의 무대다.
● 가만 있을 넷플릭스가 아니다. 한국 콘텐트 시장에 올해만 5억 달러(6000억원)를 투자했다.’D.P’에 이어 ‘오징어 게임’이 대박났고, 디즈니+가 들어올 하반기를 겨냥해 대작 지옥, 고요의 바다 등 드라마(16개)와 영화(7개)를 아껴뒀다.
● 커지는 '멀티 구독' 시장도 디즈니엔 기회다. 웨이브·티빙·시즌·쿠팡플레이 등 한국 OTT는 대부분 통신 요금제나 커머스 멤버십 부가혜택 성격이 강하다. 사실상 넷플릭스와 왓챠만 독립 상품으로 구독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닐슨코리아 클릭에 따르면 2019년 11월 기준 국내에선 평균 1.3개의 OTT를 구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OTT 시장 경쟁이 활발한 미국은 평균 4.7개다. 국내 OTT업계 관계자는 “디즈니가 통신사(KT, LGU+)와 손잡은 만큼 더 저렴한 요금제가 나올 것”이라며 “소비자가 다른 OTT를 유지하면서 디즈니를 추가 구독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넘어야할 숙제
● 디즈니도 국내 망사용료 논란을 피하긴 어렵다. 넷플릭스는 SKT와의 소송에서 1심에선 패소하고, 항소 진행 중. 4K 스트리밍을 기본 지원하는 디즈니+는 데이터 사용량이 더 많아 망 사용료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제이 트리니다드 아태 DTC사업총괄은 이날 망사용료 질문에 “콘텐트 제작사와 통신사, 콘텐트 전송 사업자들과 협력할 것”이라며 원론적으로 답했다.
● 작품의 판권 계약이나 수익 분배 등 상생안도 한국에선 민감한 주제다. 이달초 국회 국정 감사에선 ‘오징어 게임’흥행으로 가장 큰 수익을 얻게 된 넷플릭스가 제작자들과 수익 분배를 공정하게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나온 바 있다. 글로벌 OTT가 국내 제휴사와 사용자 데이터를 공유하지 않는 관행도 향후 문제될 수 있다.
국내 OTT는 어떻게
● 새판짜기 : 국내 OTT는 새판짜기에 분주하다. KT는 미디어사업 핵심으로 키우겠다 선언한 ‘시즌’에서 디즈니플러스 콘텐트를 시청할 수 있게 제휴. 웨이브는 작년과 올해 NBC유니버셜, HBO와 제휴한데 이어 아마존과 손잡은 11번가의 ‘우주’ 멤버십에 들어갔다. CJ의 티빙도 네이버멤버십 연동에 이어 3000억원 대 투자 유치로 본격적인 경쟁을 위한 실탄 준비중.
● 국내 대신 해외 : 웨이브와 티빙은 내년을 본격적 동남아 진출 시기로 선언했다. 넷플릭스 아시아 사용자가 보는 콘텐트 중 한국 콘텐트가 30%에 달해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왓챠도 지난달 일본서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하며 글로벌 전략을 강화했다.
● K-OTT 연합군? : 정부는 넷플릭스·디즈니 같은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고 해외 진출을 위해서는 ‘연합’이 필요하단 의견.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은 5일 국감에서 “국내 연합 OTT로 해외 진출을 해야 한다는 게 일관된 판단”이라고 했다. 그러나 업체들은 “취지엔 공감하지만 각자 성장하는 단계라 연합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OTT 주무 부처도 정하지 못한 정부에 기대할 게 없다는 회의론이 있다. 지난해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방통위는 OTT 주도권을 두고 눈치 싸움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