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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사무장 병원' 잡아내도…건보공단 소송가면 80% 패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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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전담 조직까지 마련해 사무장 병원을 뿌리 뽑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최근 5년간 사무장병원으로 적발된 의료기관과의 요양급여비 환수 처분 취소 소송에서 10건 중 8건꼴로 패소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1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실이 건보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2016~2020년 사무장 병원 행정소송 현황 자료에 따르면 이 기간 이뤄진 168건의 재판 중 건보공단이 승소한 건수는 31건에 그쳤다. 항소 취소나 각하 판결 등으로 건보공단이 사실상 패소한 건수는 137건(패소율 82%)으로 확인됐다. 부당금액 규모로는 5541억원이다.

사무장 병원은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의료인 명의를 빌려 운영하는 불법 병원이다. 건강보험 재정 누수의 원인일 뿐 아니라 국민 건강까지 위협할 수 있어 공단은 전담 조직을 꾸려가며 근절 의지를 보여왔다. 의원실에 따르면 공단의 사무장 병원 관련 전담 인력은 2015년 4명에서 현재 126명까지 늘었다.

그런데 공단이 행정조사를 거쳐 사무장 병원으로 적발하고 경찰 수사 결과에 따라 요양급여비를 환수하기로 결정한 뒤 병원 측이 부당하다며 제기한 행정 소송에서 공단이 10건 중 8건꼴로 계속 패소하고 있다는 얘기다. 공단이 급여비를 환수했다가 소송에서 져 병원에 다시 돌려준 돈만 5년간 270억원에 달한다.

서울 마포구 국민건강보험공단 마포지사. 뉴스1

서울 마포구 국민건강보험공단 마포지사. 뉴스1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건보공단 관계자는 “형사 소송 과정에서 증거 불충분 등의 이유로 불기소 처분 또는 무죄 판결이 내려지는 경우가 있는데 행정 소송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2017년 7월 사무장 병원으로 적발된 A 병원은 환수 금액만 408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환수 처분 취소 소송 1심에서 A 병원이 승소했다. 건보공단은 2심을 진행하지 않고 항소를 포기했는데 대법원에서 A 병원은 사무장 병원이 아니라며 무죄 판결했기 때문이다. 검찰이 불기소 처분해 환수 처분이 취소되고 결국 소송취하로 이어진 사례들도 있다

앞선 관계자는 “최근 사무장 병원 급여비를 전액 환수하는 게 부당하다는 등의 공단에 불리한 판결이 나오는 추세라 어려움이 있다”고도 설명했다.

그러나 “건보공단이 제대로 된 조사 없이 무리하게 사무장 병원을 적발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게 이 의원의 지적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사무장병원 행정소송 현황. 자료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사무장병원 행정소송 현황. 자료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실

적발에 급급하다 보니 공단이 사무장 병원인지를 제대로 판단하지 않고 부당 조사해 결국 수사기관에서 아닌 것으로 판단되거나 법원 무죄 판결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이경권 의료전문 변호사(법무법인 LK파트너스)는 “사무장 병원 적발 기준 및 행정조사 체크리스트를 보면 기준이 불명확하고 의료 현장과 다소 동떨어진 측면이 있다. 애매한 게 있어 공단과 얘기하다 보면 관례대로 처리할 테니 소송으로 해결하라는 입장”이라며 “환수해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강하다 보니, 수사 기관에서 의심하면 그 시점부터 일단 환수하고 보는 것인데 죄형 법정주의에도 위반된다”라고 말했다.

다만 건보공단 관계자는 “수사 단계에서 충분히 의심된다고 확인했고 이를 근거로 처분하는 것”이라며 “증거 불충분으로 대부분 불기소 처분이 나기 때문에 사무장 병원이 무조건 아니라고 볼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또 “공단에선 자금흐름을 볼 수 있는 수사권이 없고, 경찰에선 전문성 등 인력 문제가 있거나 수사 의지와 관련됐을 수도 있다”고도 해명했다.

사무장 병원 이미지. 연합뉴스

사무장 병원 이미지. 연합뉴스

이종성 의원은 근본적으로 사무장 병원 근절을 위해 리니언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진신고할 경우 징수금을 감면해 내부 고발을 유도하고 단속 실효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이 의원은 “사무장 병원들은 적발되지 않는 방법, 법원 승소 방안까지 염두에 두는 등 운영 방식이 교묘해지고 있다”라며 “건보공단이 요구하는 특별사법경찰권 도입보다는 자진신고 감면 등의 제도를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적발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도 강조한다. 이경권 변호사는 “사무장 병원의 핵심은 자금”이라며 “국세청 등 조세당국과 적극 협조해야 하고, 회계·세무 등의 전문가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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