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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상연의 시시각각

‘마지막 대선’ 약속 쏟아졌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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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최상연
최상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국민의힘은 13일 KBS 제주방송국에서 대선 경선 후보자 합동토론회를 개최했다. 왼쪽부터 윤석열·홍준표·유승민·원희룡 후보. 윤 후보는 이날 국민의힘 제주도당에서 개최한 캠프 제주선대위 임명식에서 “정신머리부터 바꾸지 않으면 우리 당은 없어지는 것이 맞다”고 자신에 대한 공격에 불쾌감을 보였고 나머지 세 사람의 후보는 14일 윤 후보를 향해 일제히 맹공을 퍼부었다.   [사진공동취재단]

국민의힘은 13일 KBS 제주방송국에서 대선 경선 후보자 합동토론회를 개최했다. 왼쪽부터 윤석열·홍준표·유승민·원희룡 후보. 윤 후보는 이날 국민의힘 제주도당에서 개최한 캠프 제주선대위 임명식에서 “정신머리부터 바꾸지 않으면 우리 당은 없어지는 것이 맞다”고 자신에 대한 공격에 불쾌감을 보였고 나머지 세 사람의 후보는 14일 윤 후보를 향해 일제히 맹공을 퍼부었다. [사진공동취재단]

봄과 가을은 실종된 모양이다. 덮거나 춥거나 둘 중 하나다. ‘5월의 눈’이 전국을 뒤덮다 곧 푹푹 찌더니 벌써 한파주의보가 대기 중이다. 나랏일이 닮았다. 냉탕 아니면 열탕이다. 에너지 정책이든, 국가 백년대계든 청와대 한마디면 한순간에 뒤집히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꼭대기에 있다. 여름과 겨울처럼 순서도 없다. 그냥 럭비공이다. 일자리 정부라면서 청년 실업 대란이고, 서민 정부라더니 최악의 빈부 격차를 만들었다. 나라 정치도 같다. 무조건 우리 편과 그냥 안되는 적폐만 있다. 한쪽은 아랫목, 다른 쪽은 시베리아다. 민생보다 당리당략, 우리끼리를 앞세운 패권이다.

주인이 패배자 되는 전쟁 또 시작 #제왕적 대통령 악순환 탈출 위해 #권력분산·협치가 선거 쟁점돼야

 국민은 대체로 춥다. ‘3040 고용이 OECD 바닥권’이란 뉴스를 보면서 우리의 ‘대통령 무책임제’를 떠올렸다. 경제학엔 ‘고통 지수’란 게 있다. 실업률에 물가상승률을 더한다. 역대급으로 치솟았는데 주된 지지층이 주요 피해자다. 정권 수립 기여도만 보면 2030 세대 역할은 민주노총 못지않다. 최순실 모녀의 ‘엄마 찬스’에 가장 앞장서 촛불을 들었다. 대선에선 문재인 대통령에게 90%의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그리고 빙하 속에 갇혔다. 여당 대표는 국회에서 ‘공정과 정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다’며 ‘청년 재난 시대’라고 사과했지만 말뿐이다. 달라진 것도,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정권의 무능과 폭주를 견제해 달라는 게 여론조사 결과다. 그런데 역술 논란에 거짓 해명, 욕설을 곁들인 감정싸움이더니 패거리 정치로 ‘짜증 지수’를 키워가는 야당 경선이다. 훨훨 타는 ‘고통 지수’ 호재가 산더미란 걸 안다. 하지만 어떻게 든 야당 후보만 되면 정권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 앞서니 이전투구다. 이런 식이면 설사 이겨도 의미가 좀 그렇다. 우파 자멸로 집권한 지금 정권이 선거에 이기기 전 자기 혁신의 과정을 거치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기이한 코미디를 바로잡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더 강한 적폐 청산과 독주로 달리기 십상이다.

주인이 패배자 되는 전쟁 또 시작

제왕적 대통령 악순환 탈출 위해  

권력분산·협치가  선거 쟁점돼야

 한 표만 많이 받으면 ‘뭐든 내 맘대로’, 한 표라도 적으면 죄인이다. 야당은 정권 내내 반대를 위한 반대에 열중하다 그 한을 보복으로 푼 다람쥐 쳇바퀴가 우리의 헌정사다. 독재에 그토록 반대하다가도 정권만 잡으면 그대로 따라가다 만신창이 됐다. 대통령만 하면 감방에 가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국민 모두가 이런 정치에 결함이 있다는 걸 안다. 이젠 끝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누가 정권을 잡든 이런 풍경에 변화가 생길 거라고 믿는 사람은 정작 많지 않다. 대통령까지 탄핵으로 쫓아낸 대한민국이지만 정치는 늘 그 타령이다.

 정권의 힘이 다 빠져야 뭔가 바꾸자고 나서기 때문이다. 풍파만 만든 노무현ㆍ박근혜 전 대통령의 개헌 추진이 그랬다. 당연한 일이다. 개헌은 국민의 뜻을 모아야 한다. 임기 내내 진 쪽을 죄인 취급하며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다가 느닷없이 개헌하자면 나머지 절반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집권 전에 ‘내가 마지막 대통령’이란 개헌 약속으로 치고받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물론 쉽지 않을 거다. 아니 가능성 없는 얘기다. 그래도 먼저 버리고 바꾸는 경쟁만이 대통령 잔혹사를 끊어낼 수 있다. 유권자가 압박할 순 있다.

 모든 대통령이 ‘국민 머슴’을 자처했다. 그런데 힘센 머슴이 주인 말을 안 들을 땐 방법이 없다. 어떤 충격적인 부적격 사유가 나와도 전임자 탓, 야당 탓이다. 주인을 패배자 만드는 그런 전쟁이 다시 시작됐다. 그래서 폐단을 끊자면 지금이 적기다. 누가 집권하든 감방에 안 갈 수 있고 국민이 승리하는 길이다. 내가 마지막 대통령이 되겠다는 약속을 만들어내면 다. 어차피 대통령 권한을 줄이자는 것 자체엔 여야가 동의한다. 그래야 차악을 선택하는 악순환에서 최선을 고르는 선순환으로 탈출할 수 있다. 그게 선거다운 선거다. 가을아 돌아와라.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