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난민들 원성 폭주…전세대출 중단 안한다

중앙일보

입력 2021.10.15 00:16

업데이트 2021.10.15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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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부 규제발 대출 경색’에 움츠러들었던 ‘대출 난민’의 숨통이 트였다. 전세대출과 집단대출 중단 사태를 막기 위해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총량 관리를 일부 완화하면서다. 전세대출 증가로 인해 가계대출 증가율이 목표치(6.99%)를 초과하더라도 이를 용인한다는 게 핵심이다.

정부가 집값 급등을 잡으려다 오락가락 대출규제로 시장의 혼란만 키웠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럼에도 대출 한파는 이어질 전망이다. 실수요자 대출은 완화했지만 금융당국은 이달 중순 이후 가계부채 관리 대책을 발표하며 대출 죄기 기조는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14일 금융투자협회 세미나에 참석한 직후 기자들과 만나 “실수요자가 이용하는 전세대출이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4분기 중 전세대출의 한도와 총량을 관리하는 데 유연하게 대응할 생각”이라며 “전세대출 증가로 인해 (총량이) 6%대 이상으로 증가해도 용인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집단대출의 경우 연말까지 공급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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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서민 실수요자 대상 전세대출과 잔금 대출이 일선 은행 지점 등에서 차질 없이 공급되도록 금융당국은 세심하게 관리하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입장 선회는 대출 중단으로 인한 실수요자의 불만이 폭주한 때문이다. 그동안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증가율을 전년 대비 6%를 넘지 못하게 하면서 개별 금융사의 신규 대출 중단과 대출 한도 축소 등이 이어졌다.

지난 8월 24일 NH농협은행이 전세대출과 주택담보대출 등을 전면 중단한 데 이어 카카오뱅크(고신용자 신용대출)와 토스뱅크(신규 가계대출) 등 인터넷은행도 일부 대출을 중단했다.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은 지점별로 대출 한도를 배정해 이를 초과할 경우 사실상 대출이 불가능했다. 은행 문이 닫히며 시장은 ‘대출 발작’을 앓았다.

지난 12일 직장인이 많이 모이는 앱인 블라인드에는 ‘집단대출 현재 상황’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다음 달 중순 경기도 신축 아파트 입주 예정이라는 글쓴이는 “우리 아파트 대출 수요가 3000억원인데 1금융권 한 곳에서 200억원을 들고 와서 30번대 선착순으로 마감됐다”며 “불시에 (대출) 공지를 할 수 있어 일도 못 하고 휴대전화만 붙잡고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위 “잔금 집단대출 연말까지 공급” … 이달 중순 이후 가계빚 대책 발표

은행 전세대출 증가액

은행 전세대출 증가액

김성식 전 의원도 14일 페이스북에 “얼마 전 전세대출에 대해 수십 년 거래한 은행에 문의했더니 금융당국이 은행에 요구한 한도가 차서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매물 잠김, 영끌, 전·월세 시장의 대혼란, 실수요 대출 차단 등 결과는 땜질 정책의 폭망이다”고 적었다.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면서 연말까지 5대 시중은행의 대출 여력은 13조5000억원에서 약 20조원가량으로 늘어나게 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번 조치로 시중은행에 7조~8조원가량의 추가 대출 여력이 생겼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전세대출을 포함할 경우 (총량이) 7% 정도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NH농협은행은 이날 중단했던 전세자금 대출을 오는 18일부터 재개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신한은행은 이달부터 모집인을 통한 전세대출에 적용해 온 5000억원 한도 제한을 풀기로 했다. 우리은행도 실수요자에 한해 전세대출 한도를 추가로 배정할 계획이다.

정부가 처음부터 무리한 총량규제를 밀어붙이다 시장의 혼란만 초래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의 대출 증가세는 문재인 정부 들어 집값과 전셋값이 부쩍 오른 영향인 만큼 이에 대한 고려도 필요했다는 것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 교수는 “총량규제를 하다 보면 투기수요도 잡히지만, 실수요자에게 피해가 갈 수밖에 없다”며 “집값과 전셋값이 올라 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만큼 6%라는 숫자에 매몰될 게 아니라 유연하게 관리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전세대출을 무리하게 총량규제에 포함했다가 부작용이 생기니 다시 풀어줬다”며 “정책이 오락가락하다 보니 정책의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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