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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그 영화 이 장면

종착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권민표·서한솔 감독의 ‘종착역’은 최소한의 플롯에 최대한의 이야기를 담는다. 중학교 1학년인 시연(설시연)·연우(배연우)·소정(박소정)·송희(한송희). 사진 동아리 부원인 네 친구에게 선생님은 여름방학 숙제를 내준다. 필름 카메라로 ‘세상의 끝’을 찍어오는 것. 그렇게 아이들의 여행은 시작된다. 네 아이가 생각한 ‘세상의 끝’은 1호선의 끝인 신창역이었다. 하지만 그냥 역일 뿐, 그곳엔 그 어떤 특별한 것도 없다. 아이들은 길이 딱 끊겨서 더는 가지 못하는 ‘끝’을 원했던 것일까. 혹시나 해서 지금은 폐건물이 된 신창역 구(舊)역사에 가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다.

종착역

종착역

최대한 연출하지 않고 아이들의 즉흥 연기와 우연적 상황을 담아내는 ‘종착역’은 생생한 영화적 공기가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되는 영화다. 여기서 영화는 아이들이 찍은 필름 컷 이미지를 삽입한다. 처음엔 마치 NG 컷 같은, 노출이나 앵글을 딱히 고려하지 않은 사진들이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피사체에 조금씩 의미가 담긴다.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은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처음으로 함께한 여행의 추억을 쌓아간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어느 빈 경로당에서 하룻밤을 보낸 아이들. 이때 시연이 아침에 가장 먼저 일어나 무엇인가를 찍는다. 아이들의 신발 사진이다. 여기엔 ‘세상의 끝’을 향한 여정을 마친 아이들의 고단함과 그들의 돈독해진 우정과 앞으로 걸어갈 인생의 길이 오롯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