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JP가 극찬했던 ‘충청권 맹주’

중앙일보

입력 2021.10.15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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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때를 아는 정치인’ 등의 칭찬을 받으며 ‘포스트 JP’로 불렸던 이완구 전 총리. [뉴스1]

‘때를 아는 정치인’ 등의 칭찬을 받으며 ‘포스트 JP’로 불렸던 이완구 전 총리. [뉴스1]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14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71세.

충남 홍성 출신인 고인은 양정고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재학 중이던 1974년 행정고시(15회)에 합격했다.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일하다 경찰로 옮겨 최연소(31세) 경찰서장 기록으로 고향인 홍성에 부임했다. 39세 때 최연소 경무관이 됐으며 95년 2월 충남지방 경찰청장을 끝으로 제복을 벗었다.

민주자유당에서 정치에 입문했으며, 96년 총선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충남 청양·홍성에서 첫 금배지를 달았다. 당시 신한국당의 유일한 충남 지역 당선자였던 그는 98년 김종필(JP) 총재가 이끌던 자유민주연합에 합류해 대변인과 원내총무(원내대표)를 지냈다. 자민련 시절 그를 두고 JP는 “번개가 치고 나면 먹구름이 올지 천둥이 올지 아는 사람”이라며 정무감각을 높이 샀으며, 박태준 전 자민련 총재도 “철두철미하다”고 평했다.

2006년 한나라당 소속으로 지방선거에서 충남지사에 당선해 ‘충청권 맹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2009년 이명박 정부가 당초 계획된 세종시 원안을 바꿔 정부 부처 대신 기업이 입주하는 수정안을 추진하자 이에 반발해 ‘사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이를 통해 세종시 원안을 사수하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정치적 인연을 맺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뒤인 2013년 4월 재·보궐선거에 출마해 충남 부여·청양에서 당선했다. 세월호 참사 뒤인 2014년 5월 집권 여당 새누리당의 원내대표로 추대됐다. 한나라당 시절을 포함해 당시까지 새누리당의 충청권 원내대표는 그가 처음이었다.

원내대표 시절 세월호 특별법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키는 등 정무감각을 발휘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정홍원 국무총리를 교체하기 위해 안대희·문창극 총리 후보자를 지명했지만 잇따라 낙마하자 결국 2015년 1월 그를 총리로 지명했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잇따라 의혹이 제기되면서 야당이 강하게 반발했고 자진 사퇴 요구까지 받다가 가까스로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그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통틀어 유일한 ‘정치인 총리’가 됐다.

취임 두 달이 되지 않아 터진 ‘성완종 리스트’ 사건으로 취임 63일 만에 물러나 역대 최단명 총리가 됐다. 그 뒤 2년여에 걸친 재판 끝에 2017년 12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고통의 시기”가 됐다.

2012년 초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골수종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 끝에 완치됐지만, 최근 재발해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유족으로 부인 이백연씨와 아들 병현·병인 씨가 있다. 장례식장은 서울성모병원이며 발인은 16일 오전 7시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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