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 '미스김' 사표로 인생 바꿨다…도가니 변호사의 아픈과거

중앙일보

입력 2021.10.14 21:43

업데이트 2021.10.15 00:01

김영미 변호사가 13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법무법인 숭인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김영미 변호사가 13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법무법인 숭인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25살쯤 결혼하고 임신해서 회사 그만두고…제 미래가 뻔하더라고요. 진취적인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검사가 되고 싶었어요.” 빨리 취직해서 두 남동생의 학비를 대는 게 당연한 줄 알았던 김영미(47) 변호사는 26년 전, 꼬박 3년을 다닌 회사를 갑자기 관뒀다. 직장에서 고졸과 대졸의 차별을 몸소 겪으면서다. 고졸 사원은 대졸 사원보다 급여도 적고 승진도 없었다. 결혼 후 임신하면 무조건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지점장이 부르는 호칭도 달랐다. 고졸 사원은 ‘김양’이나 ‘미스 김’, 대졸 사원은 ‘○○씨’였다. 지난 13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법무법인 숭인 사무실에서 김 변호사를 만났다.

고졸 차별에 법조인 꿈…대학 입학 10년 만에 합격

회사를 그만두고 달려간 곳은 입시학원이었다. 상업고에선 우등생이었지만, 국·영·수 과목 공부는 제대로 해본 적 없던 그가 8개월 남은 대학입시에 도전한 것. 1996년 조선대에 입학한 뒤 술과 게임에 빠졌던 방황기를 거쳐 2003년 1차 사법시험에 합격했지만, 최종합격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2005년엔 시험장 문턱도 밟지 못했다. 응시자격에 ‘토익 700점 이상’이 생기면서다. 그의 첫 토익 점수는 200점. 포기할까도 했지만 물러설 곳이 없었다. 공무원시험은 연령제한에 걸렸고, “명문대 졸업한 친척도 못하는데 네가 무슨 사법고시냐”면서도 3년간 지원해주던 시골 부모님께도 더는 용돈을 받기 힘들었다. 6개월 만에 700점을 넘겨 이듬해 사시에 최종 합격했다.

13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법무법인 숭인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중인 김영미 변호사. 김상선 기자

13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법무법인 숭인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중인 김영미 변호사. 김상선 기자

끝은 또 다른 시작이었다. 결혼과 출산으로 사법연수원 수료를 미룬 끝에 36살 늦깎이 변호사가 됐지만, 갓난쟁이를 둔 여성 변호사를 채용하려는 로펌은 없었다. 어렵게 취직한 곳에서도 야근이 일상이던 그 시절 일·가정 양립은 불가능했다. 결국 2011년 개업을 택했다. 둘째를 임신한 것도, 선배의 소개로 영화 ‘도가니’로도 잘 알려진 광주인화학교 사건을 맡은 것도 그 무렵이었다. 오래전 무혐의 처분으로 묻혔던 이 사건에서 유죄 판결을 끌어냈다. 그는 “그땐 통쾌했지만, 언론의 조명을 받지 않았다면 가능했을까 한계도 느꼈다”고 했다.

그후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연루됐던 별장 성접대 사건 등 성폭력 사건에 집중했다. 지난 2017년엔 그가 참여한 디지털성범죄 보고서가 또 한번 사회적 관심을 받았다. 디지털성범죄란 개념도 없었고, 양형기준도 없었다. 불법 촬영물을 만들어 배포해도 벌금형에 그치던 시절이었다. 지난해 n번방(문형욱), 박사방(조주빈) 등 주범들이 붙잡히면서 여론은 폭발했다. 그는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과 함께 2만명의 국민 의견을 모아 국민대표로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제출했고, 지난해 말 최대 징역 29년 3개월까지 선고할 수 있는 양형기준이 확립됐다.

6년간 학폭 시달려…“청소년 교화 잘돼”

학교폭력 피해자에서 학폭 전문 변호사가 된 김영미 변호사. 김상선 기자

학교폭력 피해자에서 학폭 전문 변호사가 된 김영미 변호사. 김상선 기자

그가 학교폭력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11년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을 보면서다. 푸른나무재단(옛 청소년폭력예방재단)과 함께 상담과 강의, 연구용역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사실 김 변호사 자신도 학폭 피해자였다. 한 학년에 한반 뿐이던 초등학교를 함께 다니던 동네 유일한 동갑내기 친구가 6년 내내 때리고 학용품을 빼앗았다. 강제로 시험 답안지를 보여주다가 0점 처리된 적도 있었다. 그는 “너무 괴로웠지만,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말하는 게 창피해 아무에게도 도와달라고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런 자신의 경험과 상담 사례를 모아 공동 집필한 책이 지난 4월 출간한 『장난이 폭력이 되는 순간』이다.

늦게 시작한 만큼 숨 가쁘게달려왔지만, 고비가 왔다. 지난해 공들였던 성폭력 사건에서 패소하자 좌절감이 컸고, 일만 하다 보니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함께 번아웃이 됐다. 아예 전업을 염두에 두고 지난 3월 노량진 공무원학원 강의도 시작했지만 3개월 만에 역시 변호사가 천직이라는 결론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학폭에 관한 한 변호사가 아닌 상담가를 자처한다. “학교폭력이야말로 변호사가 개입하면 일을 키운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회적 관심사인 촉법소년 폐지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청소년은 강력범죄를 한번 시작하면 스스로 멈추지 못하지만, 교정·교화도 잘 됩니다. 아이들이 잘못된 원인을 찾고 바로잡아 건강한 사회의 일원이 되도록 하는 게 어른의 역할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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