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육종암 사망 소방관, ‘공상 인정’에 5年…정부, “의견청취 기능 강화”

중앙일보

입력 2021.10.14 16:40

업데이트 2021.10.14 16:49

정부가 공무상 재해를 당한 공무원이 요양급여 등을 청구할 때 의견을 청취하는 기능을 강화한다. 그간 소방관이 유독가스 등에 노출돼 희귀질병에 걸리는 등 공상(公傷)을 입고도 국가가 장기간 이를 인정하지 않는 등 문제점이 지적돼와서다.

인사처, “장해평가 기준도 세분화” 

줄어드는 소방관 공상승인율.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줄어드는 소방관 공상승인율.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14일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오는 12월 말부터는 공상 승인 첫 단계인 급여 청구 시부터 공무원이 직접 재해 발생 경위 등을 설명할 수 있다. 그동안은 공무상 재해를 입은 공무원은 요양급여와 장해급여 청구 이후 사실관계 확인 및 조사, 공상 심의과정에서만 의견을 개진할 수 있었다. 인사혁신처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무원 재해보상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을 15일 입법 예고한다.

장해급여의 지급 기준이 되는 장해평가 기준도 세분화한다. 척추 장해의 경우 그간 3개 등급으로 구분했지만 9개 등급(6~14급)까지 나눠 구체적으로 기준을 정한다. 코는 1→3개 등급, 외모는 2→4개 등급, 팔·다리는 1→4개 등급으로 나눈다. 기존엔 10급 이상 장해를 2개 이상 가져야만 종합장해등급을 올려줬지만, 이를 ‘13급 이상 2개’로 완화해 문턱을 낮췄다. 김정민 인사혁신처 재해보상정책국장은 “국민을 위해 봉사, 헌신한 공무원들에 대한 적합한 보상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공무원 재해보상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 주요 내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공무원 재해보상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 주요 내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사비 들여 공상 입증하는 소방관들

반면 공상 발생의 원인을 개인이 아닌 정부가 입증하는 ‘공상추정법’ 입법은 아직 요원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8일 국정감사에서 김우호 인사혁신처장에게 “인사처가 소방관 뿐만 아니라 군무원, 보건연구직, 심혈관 질환에 취약한 교대 근무자 등을 포괄하는 기준을 제시해줘야 발의한 법안을 시정이라도 할 수 있다. 수없이 요청드렸는데 묵묵부답이었다”고 지적했다.

공상추정법 내용을 담은 ‘공무원 재해보상법 일부 개정 법률안’은 20대 국회 때 폐기됐다가 지난해 11월 재발의 됐지만 아직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오 의원은 “2014년 돌아가신 김범석 소방관은 7년 9개월간 구조대원 및 특수구조대원으로 수없이 출동해 혈관육종암에 걸렸었다”며 “그러나 유가족이 (공상으로 인정받을 때까지) 소송으로 5년이 걸렸다. 그나마 힘겹게 인정이라도 받으면 다행인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 외에도 국감장에선 공상 인정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은 공무원들의 사연이 제시됐다. 지난해 10월 희귀 혈액암인 골수형성이상증후군에 걸린 25년 차 손승진 소방관(경북 영주소방서)은 화재 현장에서 마신 유독가스로 병이 생긴 것으로 추정했으나, 전문성이 없어 사비 500여만원을 들여 노무법인에 찾아가서야 공상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오영환 의원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의 인사혁신처 국정감사에서 '공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이른바 '공상추정법'과 관련해 질의하고 있다. [뉴시스]

더불어민주당 오영환 의원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의 인사혁신처 국정감사에서 '공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이른바 '공상추정법'과 관련해 질의하고 있다. [뉴시스]

공상승인율, 5년간 4.8%P 하락 

소방관에 대한 공상 승인율은 계속 낮아지는 추세다. 서영교 민주당 의원이 인사혁신처에서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92.3%였던 공상 승인율은 2018년 91.1%, 2019년 88.8%, 2020년 87.5%로 최근 5년 새 4.8%포인트 떨어졌다. 그러나 소방관이 행정소송을 제기했을 때 정부가 패소해 공상을 인정한 비율은 10년 평균 48.4%로 절반에 가까웠다. 이 때문에 “정보력 측면에서 불리한 피해자가 희귀질병과 업무의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지속해서 나왔다.

강수진 인사혁신처 재해보상정책과장은 “올해 말까지 근·골격계 질환과 관련된 직무·직종에 대한 연구용역이 완료될 예정”이라며 “직업성 암 등과 관련해선 내년 6~7월까지 소방청 쪽에서 용역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 현재 발의된 공상추정법안 시정 논의는 국회와 계속해서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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