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외향적 여자와 내향적 남자가 함께 사는 법

중앙일보

입력 2021.10.14 15:00

[더,오래] 김현주의 즐거운 갱년기(73)

휴일 낮, 느긋하게 TV를 보던 중이었다. 화면 속 진행자가 꺼낸 MBTI 유형 멘트에 솔깃해 남편과 딸아이에게 물었다.

“우리 딸 MBTI가 ISFJ라고 했던가? 당신은 뭐였지?”
“새삼스럽게 무슨. 비슷했던 것 같은데.”
“아빠가 나랑 비슷할 리가 없을 텐데. 성격이 달라.”
“음, ISFP라고 나왔던 것 같아. 두 번 해 봤는데 결과가 다르더라구. 믿을 게 못돼.”
“이걸 믿어서 하나? 그냥 성향을 짐작해보는 거지. 내향적인지, 외향적인지, 감성이 풍부한 사람인지, 판단하는 사람인지 말이야. 엄마는 뭐였어?”
“나? 너랑 완전 정반대야, 하하하. ENTP!”
“어, 그럴 리가 없는데. 엄마처럼 드라마, 영화 보면서 매번 우는 사람이 T라고? F가 아니고? 좀 이상한데. 아빠처럼 무심한 사람이 F고 말이야.”

엄마는 감정이 풍부하고(그것도 좀 많이) 아빠는 사고하는 사람(냉랭하다는 말)이라는 거다.

똑 같은 성격과 성향을 가진 사람은 없다. 바라보는 곳이 같다면 다른 성향을 가졌다는 것이 다른 시야를 전하는 선물이 될 수 있다. [사진 Dương Hữu on Unsplash]

똑 같은 성격과 성향을 가진 사람은 없다. 바라보는 곳이 같다면 다른 성향을 가졌다는 것이 다른 시야를 전하는 선물이 될 수 있다. [사진 Dương Hữu on Unsplash]

MBTI는 ‘마이어스-브릭스 유형지표’라는 심리검사로, 질문에 답을 하며 자신이 선호하는 경향을 찾고 이것이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해보는 과정이다. 요즘엔 워낙 이 유형을 기반으로 다양한 콘텐트가 만들어지고 있어, 대부분의 사람이 한 번쯤은 긴 문제를 풀어가며 테스트를 해봤을 거다. 이전에는 혈액형으로 심리와 행동유형을 예측했다면 요즘은 다들 MBTI를 끄집어내니 말이다. 테스트가 끝나면 4가지 판단 기준에 따라 나눠진 2개의 유형을 조합해 16가지 타입 중 한 타입으로 개인의 성향이 정리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일상의 에너지를 어떤 방향으로 쓰는지에 따라 E(Extraversion, 외향형)와 I(Introversion, 내향형)로, 정보를 얻고 인식하는 방법에 따라 S(Sensing, 감각형)와 N(Intuition, 직관형)으로, 판단과 결정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 T(Thinking, 사고형)와 F(Feeling, 감정형)로, 평소 생활방식에 따라 J(Judging, 판단형)와 P(Perceiving, 인식형)로 나뉜다.

그러고 보니 ENTP가 내 성격을 잘 설명하는 듯도 하다.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 이전의 사례를 찾아보며 가능한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게 나의 스타일이니 말이다. 아직 딸 아이는 엄마의 그런 부분을 대면하지 못했고, 감정적이 된 갱년기 엄마의 모습만 주야장천 보고 있으니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남편이야말로 F의 설명 그대로 사람과 상황을 관찰하며 오랫동안 지켜보고 움직이는 타입인데.

딸과 남편의 성향과 취향이 비슷하다는 건 늘 느껴왔지만 MBTI까지 이렇게 유사할 줄이야. 나는 그 정반대이고 말이다. 남편과 내가 유일하게 같은 부분은 P인데, 자율적이고 융통성을 가지고 상황에 맞춰 변화한다는 점이다. 결혼 생활이 오래될수록 다른 성격의 부부가 서로를 보완하며 살아가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면에서 남편과 나의 MBTI 결과는 나쁘지 않은 조합이다. 두 사람 모두 유연하게 주변을 바라보고 결정하는 타입이라니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연애할 때부터 남편이 내향적인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고, 나와 다른 그 점에 매력을 느꼈으니 그 부분은 이미 익숙하다.

MBTI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성향은 단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음을 알게 된다. 거칠게 한 사람을 어떤 틀로 설명할 수는 있지만, 그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 어떤 상황에 닥쳐있는지 누구와 함께인지에 따라 자신 안의 다른 모습이 발견되고 발현하기도 한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주변의 상황과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폭도 커진다. 부부도 마찬가지다. 성격이 다른 부부라도 오랜 시간 함께하면 갖가지 돌발 상황에 함께 대처하며(다른 방식으로),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해 더 잘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서로의 사고의 폭을 넓히며 말이다.

정여울 작가는 에세이 『상처조차 아름다운 당신에게』(은행나무)에서 “우리는 자기 안의 편향성을 극복할 수 있을까”란 질문을 던지고 이렇게 정리한다.

 “내가 나의 페르소나를 단장하지 않아도 좋은 순간, 그 순간에는 외향성과 내향성의 구분이 없어진다. 요컨대 나는 스스로를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규정하지만, 가장 편안한 순간은 내향성과 외향성의 경계마저 사라질 정도로 자유로워지는 순간이다. 그렇게 마음의 빗장이 풀어질 때까지 정말 오랜 시간과 다양한 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내 마음 깊은 곳의 나는 내향성에 고착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완전히 외향적인 사람도 없고 완전히 내향적인 사람도 없다. 남성성과 여성성처럼, 내향성과 외향성도 한 인격의 두 가지 측면이다. 여성에게도 남성성이 필요하고 남성에게도 여성성이 필요하지 않은가. 융 심리학에서는 남성의 여성성과 여성의 남성성이 균형과 공존을 이룰 때 심리적으로 더욱 건강한 사람이 되는 것처럼, 외향성과 내향성도 그때그때 자유로이 자신의 날개를 펼칠 수 있다면 우리는 훨씬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다.”

얼마 전 남편에게 슬쩍 물어본 적이 있다.
“당신, 하고 싶은 일이 뭐야? 지금부터라도 해보고 싶은 일 말이야. 이제 우리는 그런 일을 찾아가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특별히 없는데.”
“그러면 이렇게 물어볼까? 어떤 것을 할 때 가장 즐거워?”
“다니면서 새로운 걸 보고, 만나는 일. 생각해보니 나한테는 그게 제일 재미있는 일이네.”
“오, 나도 그런데. 쉽게 말하면 여행, 풀어서 이야기하면 움직이고 마주하는 일, 새로운 누구든 아니면 어떤 상황이든 말이야. 같이 할 수 있는 그런 걸 찾아봐야겠다!”
“찾아보긴 무슨.”

그러고 보니 우리 부부는 성향은 다르지만 관심사와 즐거움을 느끼는 일이 같기에 지금껏 서로를 보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도 그러리라 본다. 밖으로 뻗치는 나와 안으로 곱씹는 남편, 서로에게 도움을 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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