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중앙시평

국가의 번영을 막는 ‘가장 약한 고리’

중앙일보

입력 2021.10.14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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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쇠사슬의 강도는 ‘가장 약한 고리(the weakest link)’가 결정한다. 약한 고리가 끊어지면 쇠사슬 전체가 끊어진다. 축구팀의 실력도 가장 약한 고리가 결정한다. 강팀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장 약한 고리부터 보강해야 한다. 세계적인 공격수가 있어도 수비가 너무 약해 실점을 많이 하면 경기에서 지게 된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말콤 글래드웰은 코로나19 시대를 이러한 축구에 비유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에 충격을 줬다. 코로나19로 겪은 피해 규모를 국가 간에 비교해 보면, 공공의료 체계가 미흡하고, 저소득층이 많고,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는 기저 질환 환자가 많은 국가의 피해가 가장 컸다.

이제 ‘위드 코로나’로 단계적으로 일상을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나아가 코로나 이후를 내다보고 지속적인 발전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 됐다. 그렇다면 우리 경제와 국가 발전의 발목을 잡는 가장 약한 고리는 무엇일까. 우리가 다른 국가와 비교해서 특별히 약한 고리는 무엇일까. 여러 국제기관의 보고서는 한국의 발전 역량을 상당히 높게 평가한다. 세계경제포럼(WEF)의 평가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13위의 ‘국제경쟁력’을 지닌 국가다. 인프라, 시장 규모, 교육 수준, 정보통신기술에서 최상위의 평가를 받았다. 영국의 싱크탱크 레가툼 연구소(Legatum institute)가 발표한 2020년 ‘번영지수’(property index)에서 한국은 세계 28위를 차지했다. 투자환경, 인프라, 교육, 정부의 목표 달성 능력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한국은 사회적 자본 매우 취약
코로나가 사회 약한 고리에 충격
국민 의식 높이고 경제 격차 줄이고
제도 개혁해 신뢰와 협력 쌓아야

그러나 이 기관들은 공통적으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 항목에서 한국을 매우 낮게 평가했다. 세계경제포럼 평가에서 한국은 사회적 자본이 세계 78위였고 레가툼 지수에서는 세계 167개 국가 중에 139위였다. 사회적 자본은 익숙하지 않은 개념일 수 있지만,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와 존중, 협력과 관련된다. 즉 사회적 자본이란 한 사회 또는 국가의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어 힘을 발휘하게 하는 무형의 자산으로 정의할 수 있다. 더 많은 구성원이 서로를 신뢰하고 존중하며 가치를 공유하고 협력할수록 사회적 자본이 많아진다.

사회적 자본은 개인 간의 신뢰, 사회 네트워크, 제도에 대한 신뢰, 개인과 가족의 관계, 시민의 참여도 등을 조사하여 점수로 평가한다. “당신은 대체로 타인을 신뢰하는가” “사람들이 어제 하루 당신을 존중하며 대했나” “사법제도를 신뢰하는가” “중앙정부를 신뢰하는가” “지난 한 달간 기부하거나 봉사활동에 참여한 적이 있는가” “당신이 어려울 때 도와줄 친척이나 친구가 있는가”와 같은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한 사람의 비중이 높을수록 사회적 자본이 많다고 평가한다.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는 참가자들은 서로 속고 속이며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게임에서 이겨 상금을 독차지하려 한다. 이런 세상에서는 사회적 자본이 존재할 수 없다. 경제학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 자본이 적은 국가일수록 경제발전 속도가 느렸다. 거래하는 상대방을 신뢰하지 못하고 법과 제도가 부실하면 경제활동의 비용이 커지고 장기 투자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트러스트』라는 책에서 사회적 자본이 국가의 경제적 번영을 결정한다고 했다. 우수한 기업과 인재가 많아도 서로 불신하고 협력하지 않으면 국가가 번영하기 어렵다. 축구팀으로 비유하면 아무리 우수한 선수가 모여도 팀워크가 나쁘면 경기에서 이기지 못한다.

한국 사회가 ‘오징어 게임’을 닮아 간다는 자조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지난 몇 년간 한국 사회는 이념과 계층으로 더욱 분열되고 대립이 심해졌다. 현 정부는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약속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독립적이어야 할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 많이 낮아졌다. 최근 대장동 개발에서 민간사업자, 공직자, 법조인이 얽히고 부당한 이득이 뇌물로 오고 간 정황이 나오고 있다. 우리 사회의 부패와 비리, 정경유착이 이것뿐만은 아닐 것이다.

사회적 자본이 우리 경제와 국가 발전의 발목을 잡는 가장 약한 고리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국민 의식 수준을 높이고, 경제적 격차를 줄이고, 올바른 제도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적절한 교육을 통해 사회 구성원들이 윤리적 가치를 존중하고 적극적인 사회·정치 참여로 공동의 선을 달성하는데 더 많은 관심을 두도록 해야 한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져야 개인적 연고를 넘어서서 서로 신뢰·협력하고, 선거를 통해 유능하고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헌신할 지도자를 선출할 수 있다. 취약계층을 돕고 소득과 부의 격차를 줄이면 사회 구성원 간 동질감이 높아진다. 공정한 제도를 통해 공직자와 특권층의 권력 남용과 부패를 막아 사회적 신뢰를 높여야 한다. 역량 있고 존경받는 지도자가 많이 나와 국민을 통합하고 제도를 개혁하고, 시민사회의 각성과 참여로 국가 발전의 약한 고리인 사회적 자본을 확충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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