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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주호의 퍼스펙티브

혁신 선도하는 스마트 강국, 규제 타파에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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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인공지능(AI) 3대 강국의 비전

이주호 케이정책플랫폼 이사장·아시아교육협회 이사장·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이주호 케이정책플랫폼 이사장·아시아교육협회 이사장·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대선을 5개월 앞두고 정치권은 여전히 진흙탕 싸움이다. 이번 대선은 변종 코로나바이러스부터 미·중 패권 경쟁까지 엄청난 국가적 도전을 앞에 두고 치르는 만큼, 국민을 통합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미래 비전과 정책 대안이 치열한 경쟁과 검증을 거쳐서 국민에게 선택받는 과정으로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이제 눈길을 돌려서 글로벌 인공지능(AI) 지수에 주목하자.

영국의 미디어 회사 토르토이스(Tortois)가 62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하여 며칠 전 발표한 이 지표에서 한국은 미국·중국·영국·캐나다에 이어 세계 5위 AI 강국으로 평가받았다. AI는 미래를 여는 게임 체인저이며 미국이 중국에 선두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피 말리는 경쟁을 하고 있어서 한국의 AI 세계 5위는 방탄소년단(BTS)의 빌보드 1위만큼 자랑스럽다.

AI지수 세계 5위, 인프라는 훌륭하지만 운영·연구는 뒤처져
산업구조 자체를 AI·바이오 등 첨단산업 기반으로 재편 필요
각 부서에 흩어진 규제개혁 기능 한 곳에 모아 역량 키워야
창의성 북돋는 교육혁명 필수…대입 시험·정원 사라질 운명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만할 일은 결코 아니다. 글로벌 AI 지수 점수를 보면 미국을 100점으로 할 때 중국이 58.2점이며, 그다음으로 영국·캐나다·한국·이스라엘·독일·네덜란드·싱가포르·프랑스·호주 등 9개국이 모두 30점대다. 즉 미국과 중국이 2강이며 나머지 상위권은 점수가 중국의 절반에 불과하고 미국의 3분의 1 수준이며 서로 점수 차이도 작다. 따라서 앞으로 중국이 미국을 과연 추월할지, 한국을 포함한 상위권에서 누가 도약하여 글로벌 3강을 형성할지 등에 따라서 지정학적 글로벌 지형이 크게 바뀔 것이다.

중국이 불댕긴 차세대 AI 발전계획

이주호의 퍼스펙티브

이주호의 퍼스펙티브

중국은 2017년 ‘차세대 AI 발전 계획’을 수립했다. 2030년까지 AI 이론·기술·응용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돼서 AI 핵심 산업 1조 위안(약 170조원), 연관 산업 10조 위안(약 1700조원) 규모의 시장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AI 초강대국(superpower) 전략이 미국과의 기술 패권 경쟁을 촉발한 측면이 크다.

우리 정부도 2019년 ‘IT 강국을 넘어 AI 강국으로’ 비전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AI를 통한 지능화 경제 효과 455조원 창출을 목표로 내걸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한국이 2030년 AI 3강 진입을 구체적 목표로 AI를 활용하여 격차 해소 및 사회 혁신은 물론 기후 변화 및 변종 바이러스 문제 등 세계 난제 해결을 선도하는 AI 스마트강국(smart power)의 비전을 제시하면 어떨까.

이것이 장밋빛 전망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우리의 장단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근본적 문제점을 과감히 개혁하는 국가 전략이 필요하다. 글로벌 AI 지수를 보면 우리는 AI 특허 등 혁신적 AI 프로젝트의 기반이 되는 플랫폼과 알고리즘의 개발은 세계 2위, 그리고 전기 및 인터넷에서부터 슈퍼 컴퓨팅까지 안정적으로 네트워크에 접근 가능한 인프라 수준은 세계 6위이다.

반면 AI에 관한 정부 규제와 여론 등을 포함한 운영 환경에서는 62개 국가 중에서 50위로 심각한 문제가 드러났다. 열악한 AI 운영 환경은 바로 정부의 규제 문제로 귀결되지만, AI 인재와 AI 연구 분야에서도 각각 19위와 18위에 그친 점은 대학과 과학기술 분야 정부 출연 연구기관을 포함한 학계의 분발과 동시에 이들을 위한 규제 개혁도 절실히 요구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국 기업혁신기술부의 성공

AI 국가전략이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 개혁이 중요하다. 그동안 역대 정부가 규제 개혁을 하겠다고 공약을 내걸었지만 큰 성과가 없었다. 과거 실패한 규제 개혁 방식을 답습하기보다 근본적으로 정부의 기능과 역할을 바꾸는 정부 개혁을 하여야 한다. 현재 우리 정부 부서들은 하나같이 해당 산업과 분야를 진흥시키는 목적을 두고 있어서 혁신 전략을 수립하고 규제 개혁을 최고 목표로 하는 부서가 없다.

따라서 AI 국가 전략과 같이 장기적 안목으로 국가 미래 전략을 수립하고 규제 개혁을 집행하며 과학기술 출연 연구기관과 대학을 지원하고 혁신·첨단산업을 총괄하는 혁신전략부(가칭)를 신설하자. 우리 산업 구조의 근간을 AI를 포함하여 바이오·미래차·탄소중립 등 첨단산업 기반으로 재편하기 위해서는 대학과 과기 출연연의 인재 양성, 연구·개발, 혁신 등을 지원하는 기능에서부터 첨단산업의 운영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규제 개혁에 이르기까지 혁신 전략에 집중하는 부서가 필요하다.

영국에서 2009년 혁신 및 대학 지원 부서와 산업 및 규제 개혁 부서를 통합한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는 기업혁신기술부(BIS)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과거 개발 연대에 경제기획원이 성공적으로 경제성장을 주도했다고 평가받는 주요 원인은 경제 계획의 수립과 이를 뒷받침하는 예산 기능에 집중하면서 특정 산업 혹은 특정 분야나 이익에 얽매이지 않고 창의적으로 정책 개발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경제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 분야에 걸쳐서 성장은 물론이고 형평의 제고를 위해서도 동력을 제공하는 혁신 전략을 디자인하고 규제 개혁을 집행하는 혁신전략부를 둘 때가 됐다.

대학·과기연구소 새롭게 편제

이와 함께 대학과 과기 출연연을 각각 교육부와 과학기술정통부로부터 떼어내면서 경제·인문사회 출연연처럼 총리실 산하로 편제함으로써 혁신전략부는 이들에 대한 지원과 규제 개혁 기능만 담당하도록 하여야 한다. AI 시대 혁신의 허브가 되어야 할 대학, 과학기술 출연연을 규제 부서가 아닌 조정 부서인 총리실로 이관해 이미 총리실 산하에 있는 경제·인문사회 출연연과 함께 두뇌 기관들에 최대한 자율을 보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개혁이다.

이렇게 해야 대학에 대한 교육부의 규제와 과기 출연연에 대한 과기정통부의 규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동시에 신설하는 혁신전략부는 혁신 전략과 규제 개혁에만 집중할 수 있다. 혁신전략부 설치와 대학 및 출연연의 총리실 산하 편재를 통하여 현재 62개국 중에서 50위인 AI 운영 환경, 19위인 AI 인재, 18위인 AI 연구 등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극복하는 정부 개혁에 나서야 한다.

이와 더불어 AI 엔지니어와 데이터 전문가 양성이라는 AI 인재의 좁은 정의를 훨씬 넘어서는 보다 근본적인 AI 교육혁명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한국인 모두가 AI 시대가 요구하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인간과 AI가 공존하는 시대에 인간이 AI에 대체되지 않는 창의성과 인성을 키우기 위해서 AI 교육혁명을 시작해야 한다. 지식 전달과 개념 학습은 AI를 활용하여 온라인으로 하고, 교수는 프로젝트 학습이나 토론 등으로 강의에 의존하였던 기존의 수업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청년들에 희망 주는 정책 만들어야

AI 교육혁명이 시작되면 대학의 입학 정원과 입시를 중심으로 한 과거 교육부의 대학 규제는 의미가 없어진다. 학생 수에 거의 구애받지 않는 온라인 수업이 교실 수업만큼이나 중요해지면서 입학 정원에 대한 규제는 시대착오적으로 된다. 그리고 AI가 학생 한 명 한 명을 실시간 진단을 통하여 맞춤형 학습을 완벽하게 지원할 수 있게 된다면 학습과 평가가 통합되면서 한 번의 시험으로 일생을 결정하는 수능시험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미국의 퍼듀대학은 최근 온라인 영리 대학인 캐플란대학과 통합하여 3만 명의 학생에게 온라인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애리조나주립대학은 AI를 활용한 맞춤학습과 온라인 수업으로 학생 수가 12만 명으로 늘어났다. 코로나19 이후 미국 1400개 이상의 대학들이 학생 선발에서 대학입학자격시험(SAT), 대학입학학력고사(ACT) 시험 점수를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변경했다. 스탠퍼드대학의 경우 AI가 지원하는 외국어 맞춤학습 코스웨어인 듀오링고의 평가 결과를 제출할 수 있게 하였다.

이렇게 AI 교육혁명이 우리나라에서도 시작되면 교육부가 수십 년 동안 쌓아 올리고 유지하여온 대학에 대한 규제 틀은 일거에 허물어질 것이다. 대선을 코앞에 둔 지금 대학을 교육부의 낡은 규제 틀로부터 자유롭게 하여 대한민국을 AI 3대 강국으로 만들고 우리 청년에게 희망을 찾아주는 공론부터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