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조강수의 시선

수사에 점령당한 아수라 대선판

중앙일보

입력 2021.10.14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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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국민의힘 김도읍 정책위 의장 등 국회 정무-행안-국토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13일 수원시 팔달구 경기도청을 방문해 경기도의 국정감사 자료 제출 비협조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뉴시스]

국민의힘 김도읍 정책위 의장 등 국회 정무-행안-국토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13일 수원시 팔달구 경기도청을 방문해 경기도의 국정감사 자료 제출 비협조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뉴시스]

대선판에서 벌어지는 '폴리티컬 오징어 게임'을 보고 있노라면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선다. 승자 독식의 권력 쟁취 게임이라지만 살벌하기가 역대급이다. 여당의 대선 후보 확정자와 야당의 여론조사 1위 후보가 각각 검·경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를 동시에 받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아들의 병역 비리 은폐 의혹 사건, 2007년 한나라당 후보 경선 때의 BBK 주가 조작 의혹 사건 때도 검찰의 유력 후보 수사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지금보다는 덜했던 것 같다. 수사가 정치를 덮을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수사 과정에서 잘못이 확인돼 대권 가도에서 유력 후보가 중도 탈락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나오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그게 현실화된다면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들 너도나도 대선판에 뛰어드는 걸까.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1등 상금은 456억원이다. 참가자 1인당 목숨값을 1억원씩 친 가격이다. 정치판 오징어 게임의 우승 상품은 대통령직이다. TV토론에 나온 어느 후보의 손바닥에 쓰였다시피 왕(王)이다. 대통령직을 상금으로 환산하기는 어렵다. 제왕적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7000여 개 자리만 갖고 추산해 보자. 연봉을 평균 1억원씩이라고 가정해도 7000억원이다. 탈원전 정책,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망국적 부동산 정책,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등으로 쓸 수 있는 재정 규모가 천문학적이다.
 드라마와 달리 현실에선 "탈락입니다"라는 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와도 총탄 세례를 받지 않는다. 다행이긴 하나 그냥 넘어갈 리도 없다. 특히 여야 선두주자 2명에 대한 수사 게임이 격화하면서 측근 사법처리는 피할 수 없게 됐다.
 먼저 불거진 건 '고발 사주' 의혹이다. 윤석열 검찰이 여권 유력 인사들에 대한 고발장을 작성, 야권에 전달했고 국민의 힘 대선 주자인 윤 전 총장이 개입했다는 것이다. 폭로자는 조성은씨. 설계자는? 조씨가 폭로 전후 박지원 국정원장과 만난 것으로 드러나며 폭로의 순수성이 오염됐다. '제보 사주' 아니냐는 역풍에 휩싸였다. 윤 전 총장의 부하 검사 두어 명과 김웅, 정점식 의원이 수사 대상에 올라있다. 공수처의 수사 속도는 더디고 윤 전 총장 개입 여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진욱 공수처장이 국회에서 "이게 사실이면 헌정 질서에 중대한 사건"이라고 예단성 발언을 했다. 수사 결과로 말해야 할 공수처장의 발언으로는 낙제점이다.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은 애초에 이낙연 캠프 쪽에서 이슈화했다는 얘기가 많이 돌았다. 이 지사는 민관합동 방식을 잘못 설계해 지역 토건세력에 엄청난 부를 몰아준 책임이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 게임의 1번 참가자는 이 지사다. 이 지사는 "민관합동 개발 방식은 내가 설계한 것이며 민간업자로 돌아갈 막대한 이익을 환수했다"고 치적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후 대장동 사업 주변에 이 지사의 깐부들이 포진해 있음이 하나둘 드러났다.
 게임의 첫 번째 탈락자도 이 지사 측 인물이다. 한때 '이 지사의 장비'로 불렸던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가장 궁금한 건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회장이 언급한 '그분'이 누구냐이다. 유씨에게 주기로 약속했다는 화천대유 이득의 25%(700억원)가 유씨 것인지, '그분' 것인지, 공동 소유인지에 대한 답은 유씨와 김 회장의 머릿속에 있을 것이다. 증거로 규명하는 건 김오수 검찰의 몫이다. 영화 같은 반전이 있을지 궁금하다. 그동안 "엄중히 지켜보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의혹이 이미 사법의 영역으로 넘어왔다"며 검·경에 대장동 사건 철저 수사를 지시하면서 판이 요동치고 있다. 이 지사 측과 이낙연 캠프 측은 아전인수격 해석을 했다. 야당은 "문 대통령의 발언은 특검을 거부하겠다는 대국민 선언"이라고 반발했다.
 수사가 대선판을 덮치는 건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다. 두 사건 다 후보의 직접 개입 단서가 드러난 게 없다 보니 서로 네 탓이라며 난타전을 벌인다. 이를 규칙이 살아있는 '오징어 게임'에 비유하기도 민망하다. 차라리 '꼴뚜기 게임'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 듯하다. 겉으로는 후보 검증이라는 외피를 썼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비리를 들춰 수사를 통해 탈락시키려는 방식은 민의를 표출하는 선거 민주주의의 진보라는 측면에서 득보다 실이 더 크다. 대선 때마다 반복되는 찌질한, 그러면서도 상대를 그로기 상태로까지 몰고 갈 수 있어 폭력성과 중독성이 강한 수사 게임은 신속히 셧다운 돼야 한다. 솔깃한 유혹에 현혹되지 않고 정책과 능력 대결 위주의 선거판으로 만들어가야 할 책임과 의무가 민주 시민들에게 있다.

조강수 논설위원

조강수 논설위원

고발 사주, 대장동 수사로 뒤범벅
대장동 '그분' 실체 밝혀야 하나
대선 때마다 폭로전 고리 끊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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