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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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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위성욱 기자 중앙일보 부산총국장
위성욱 부산총국장

위성욱 부산총국장

최근 부산대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씨의 ‘입시 부정 의혹’과 관련해 조씨의 대학 성적을 잘못 발표한 것이 논란이 됐다.

이 논란을 지켜보면서 아프가니스탄의 굴곡진 역사를 다룬 소설 『연을 쫓는 아이』의 한 문구를 떠올렸다. “이 세상에는 도둑질이라는 단 하나의 죄밖에 없다. 다른 죄들은 도둑질의 변형이다. (중략) 네가 거짓말을 하면 너는 진실에 대한 누군가의 권리를 훔치는 것이다. (후략)”

부산대는 공신력을 가진 국립대다. 그런 기관에서 지난 8월 24일 조씨의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 입학 취소 결정을 내리면서 “조씨의 대학 성적이 3위였다”고 공식 발표할 때 누구도 발표 자체를 의심하지 않았다. 당시 박홍원 교육부총장의 브리핑을 들으면서 많은 사람이 “(조씨가) 입학 성적은 우수한 편이었지만 제출한 서류가 사실과 달라 입학이 취소됐구나”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이 발표는 사실과 달랐다. 조씨의 대학 성적은 3등이 아니라 부산대 의전원 1단계 전형 합격자 30명 중 24등이었다. 잘못을 바로잡은 것도 부산대가 아니었다. 언론에서 조씨의 어머니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1심 판결문을 확인하면서 관련 사실이 드러났다.

박 부총장이 조민씨 입학 취소 결정을 발표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박 부총장이 조민씨 입학 취소 결정을 발표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대국민 기자회견으로 진행된 국립대의 발표에서 어떻게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검증하지 않았을까. 의문이 제기됐다. 그런데 부산대의 해명은 더 가관이었다. 부산대 관계자는 “박 부총장이 조씨의 대학 성적이 3위였다고 말한 것은 입학전형공정관리위원회(이하 공정위)가 지난 8월 19일 대학본부 측에 제출한 보고서 내용을 인용한 것”이라며 “(공정위가) 분석 결과를 자체 조사 결과서로 옮기는 과정에 오류가 발생했다”고 해명했다.

부산대는 조씨의 입시 비리 의혹에 대해 조사의 독립성과 결과의 신뢰성을 확보하겠다며 25명이나 되는 공정위원을 비공개로 선정했다. 4개월간이나 암막 속에서 논의를 진행했다. 발표 결과에 이렇게 큰 오류가 포함된 것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잘못이 드러나자 얼굴도 없는 공정위 뒤에 숨는 부산대의 비겁함이 볼썽사나웠다. 부산대는 그것도 모자라 누군지 알 수 없는 공정위원장 사퇴로 책임을 다한 척했다. 오류가 발생한 과정은 여전히 비밀에 부치며 ‘착오 또는 실수’로 얼버무리고 있다.

이후 부산대의 행보도 걱정스럽다. 이번에는 입학 취소에 대한 조씨의 청문 절차를 밟겠다며 또 ‘얼굴 없는’ 청문 주재자를 수소문 중이라고 한다. 논의 과정이 비공개여서 투명하지 않은 공정위의 조사와 부산대의 부정확한 발표로 이미 신뢰성에 흠집이 난 상황에서 과연 청문 절차가 얼마나 공정하고 신속하게 진행할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지나친 기우일까. 부산대가 시간을 끌면 끌수록 또 다른 ‘도둑질’을 꾀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깊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