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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외치던 마크롱, 원전에 1.4조원 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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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마크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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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사진) 프랑스 대통령이 앞으로 원자력 발전 연구개발에 정부 자금 10억 유로(약 1조377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지난 12일(현지시간)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우리는 앞으로도 원자력 기술이 계속 필요할 것”이라고 선언하고 “새로운 원자력 프로젝트에 신속히 투자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마크롱은 이날 ‘프랑스 2030’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2030년 이전에 핵폐기물 관리를 개선하고, 혁신적인 ‘소형 모듈화 원자로(SMR)’를 개발하는 것”을 첫째 목표로 꼽았다. 마크롱은 앞으로 5년간 정부 자금 300억 유로(약 41조3000억원)를 저탄소 항공기, 그린 수소 생산, 산업 첨단화·저탄소화, 스타트업 등 10대 하이테크 분야에 투입해 경제를 부양하고 원자재와 반도체 칩 등의 수입 의존도를 낮추는 성장 전략을 밝히면서 SMR을 앞세웠다. SMR은 한국에선 두산중공업 등이 개발해 왔다.

마크롱의 원전 기술 투자 선언은 유럽의 원자력 중심 국가인 프랑스가 에너지 정책의 방향을 10년 만에 전환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동안 프랑스 정부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사고가 난 것을 계기로 원전 의존도를 줄이는 기조를 유지해 왔다. 마크롱도 2017년 취임 직후 원자로 14기를 닫고 전체 전력에서 원자력 비율을 2035년까지 75%에서 50%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마크롱의 선언은 이런 정책 방향을 뒤집는 것이어서 프랑스는 물론 유럽의 에너지 믹스(화석연료·원자력·신재생 등 1차 에너지원의 비율과 구조)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변화의 계기로 최근 유럽의 에너지 대란이 지목된다. 영국은 석유·가스값 급등으로, 유럽연합(EU)은 러시아발 천연가스 가격 급등으로 각각 에너지 대란을 맞고 있다. 반면에 에너지의 70% 이상을 원자력에서 얻는 프랑스에선 석유나 가스 수급과 가격이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이에 따라 FT는 원전의 이점이 안전 우려를 넘어선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전했다. 반면에 신재생 에너지는 공급이 들쭉날쭉하고 저장이 어렵다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 난방가스값 1년새 5배 폭등 … FT “에너지 위기 속 원전 가치 입증”

신문은 이에 따라 “‘원전의 가용성과 예측 가능성이 에너지 위기 속에 가치를 입증했다’는 원전 옹호론자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보도했다.

앞서 프랑스·핀란드 등 유럽 10개국 장관 16명은 지난 11일 ‘유럽인은 원자력이 필요하다’는 제목의 기고문을 일간지인 프랑스의 르피가로와 스페인의 엘파이스 등에 공동으로 실었다. 이들은 “재생 에너지로 전환하는 과정에선 탄소 배출이 없는 다른 에너지원도 필요하며, 수요를 지속해서 충족하려면 원자력은 필수”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유럽의 원전 산업은 지금까지 60년이 넘도록 신뢰성과 안전성을 입증해 왔다”고 강조했다.

내년 4월 대선을 앞두고 프랑스의 경쟁 후보들이 일제히 원전 투자를 늘리겠다고 공약한 것도 마크롱이 에너지 정책을 전환한 배경이라는 분석도 있다. FT는 “마크롱은 이번 발표로 자신의 친원자력적인 성향을 보여줬다”고 풀이했다.

유럽이 현재 에너지 위기를 겪는 이유는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벗어나면서 수요가 급증했지만,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에너지원을 화석연료에서 신재생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공급을 제때 맞추지 못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신재생에너지인 풍력과 태양열 발전은 바람이 충분히 불지 않거나 일조량이 적어 발전량이 떨어지는 간헐성에 취약하다. 이 때문에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소를 예비용으로 두기 때문에 다량의 천연가스 공급이 필요하다.

FT에 따르면 영국과 EU에선 10월 중 난방용 가스 가격이 1년 전보다 5배로 폭등했다. 이에 따라 가스를 공급해 온 러시아는 유럽에 대한 발언권을 키우고 있어 ‘지정학적 위기’마저 우려된다.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했다는 이유로 2014년부터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제재해 온 유럽은 이제 에너지 안보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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