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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0억 대박 장진호에 "참전노병에 전액 기부를" 건의서 논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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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경절 연휴이던 지난 10월 3일 베이징의 한 극장 계산대에 애국주의 전쟁 영화 ‘장진호’ 포스터가 붙어 있다. 신경진 기자

중국 국경절 연휴이던 지난 10월 3일 베이징의 한 극장 계산대에 애국주의 전쟁 영화 ‘장진호’ 포스터가 붙어 있다. 신경진 기자

“관중은 얇은 전투복으로 눈과 얼음에 덮인 용사를 보기 위해 왔다. ‘장진호’ 제작진·제작사는 제작비를 뺀 흥행 수입 전액을 노병에게 기부할 것을 요청한다. 이는 영화 소재에 대한 마땅한 보답이며, 회피할 수 없는 사회에 대한 환원이다.”

최근 한국전쟁을 다룬 중국 애국주의 영화 ‘장진호’가 흥행에 성공하자 수익금 전액을 참전 군인에게 기부할 것을 요구하는 ‘건의서’의 요지다. 지난 8일 기부 건의서가 소셜미디어(SNS)에 올라오자 중국 네티즌과 관영 매체 사이에 기부 찬반 논란이 뜨겁다. 논란은 최근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공동부유(共同富裕)’와 ‘3차 분배’라고 부르는 기부 정책과 맞물리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네티즌들은 애국을 내세워 번 돈이니 환원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중국 관영 매체는 기부는 강제할 수 없다며 변호하는 입장을 내세워 대조를 이루고 있다.

건의서 “흥행 수익은 마땅히 참전 군인 몫” 주장

13일 중국 영화 예매 플랫폼 마오옌(猫眼)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개봉한 ‘장진호’는 14일 만에 매출 43억 위안(약 8000억원)을 기록하며 역대 흥행 순위 7위에 올랐다. 수익금 전액 기부 논란을 일으킨 ‘건의서’는 “영화 마지막 지원군(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군을 부르는 중국 측 명칭) 전사가 전투 대형으로 산봉우리에서 얼어 죽은 장면에서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며 “흥행 수익은 마땅히 지원군 전사의 몫”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이 믿기 어려운 인내심으로 장진호의 흥행을 떠받쳤다”고 덧붙였다.

관영매체 “기부 요구는 멍청한 게 아닌 나쁜 자”

그러자 관영 매체가 일제히 ‘강제 기부(逼捐·핍연)’라며 반대했다. 당 기관지 ‘북경일보’는 11일 “영화의 상업적 속성과 비상업적 속성을 갈라치고 대립시켜 도덕적 우위를 차지하려는 주장”이라며 “번번이 기부를 강제하고 먹칠하는 조작의 의도가 무엇인가?”라고 되물었다. 이어 “기부를 요구한 네티즌은 ‘멍청한 것이 아니라 나쁜 자’”라고 비난했다.

‘신경보’는 9일 ‘건의서’가 나오자 칼럼을 내고 “투자자는 수익의 33%만 가져갈 수 있는 영화 흥행수익 분배 비율에 따르면 ‘장진호’는 극장과 인터넷 플랫폼 수익을 합쳐 39억 위안을 넘어야 본전을 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흥행 수익이 39억 위안을 넘겨야 13억 위안(2300억원)에 이른 제작비를 회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단 나머지 67%가 어디로 귀속되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혁명 역사를 소재로 한 주선율 영화는 이미 ‘상업화 운영 모델’ 시대에 진입했다”며 “시장의 법칙의 효력을 잃게 하여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장진호’를 포함해 애국주의 주선율 영화 주연을 단골로 해온 우징(吳京·47)까지 싸잡아 비난하고 있다. “애국을 팔아 장사한다” “애국의 과실 따 먹기” “사람의 피로 빚은 만두 먹기” 등등이다. 중국의 톱배우 겸 감독 우징은 ‘늑대전사(戰狼)’ ‘나와 나의 조국’ 시리즈 등으로 중국 역대 최고 흥행 순위를 석권해 왔다. 지난 2017년 ‘늑대전사 2’가 큰 흥행을 거뒀을 때도 네티즌들은 우징에게 당시 발생한 쓰촨(四川) 구채구(九寨沟) 지진 피해자에게 기부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관영매체 대공보가 앞장서 “우징은 이미 묵묵히 100만 위안(1억8000만원)을 기부했다”며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RFA “중국 영화계 천편일률 애국주의로 변할 것”

중국의 ‘장진호’ 흥행과 공동부유 사이의 논란에 대해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지난 11일 “향후 중국 영화의 발전은 천편일률적으로 바뀔 것”이라며 “주선율인 애국 소재, 위대한 혁명을 선전하는 영화는 ‘불사신’이 되고, 다른 소재를 다룬 영화는 모두 기부 압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RFA는 지난 8월 시작된 ‘칭랑(淸朗)’이라고 이름 붙인 연예계 정화 운동에 연예인들이 모두 숨을 죽이고 있는 이번 ‘투쟁’ 역시 언제 끝날지 현재로써는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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