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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의 한줄명상]법정 스님 “행복은 당장 이 순간에 존재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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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당장 이 순간에 존재한다.”

#풍경1

2006년 봄날이었습니다.
당시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법정 스님이 종종 법문을 했습니다.

강원도 오두막에 살다가
길상사에 와서 대중을 향해 법문을 내놓곤 했습니다.

송광사 불일암에 벗어놓았던 법정 스님의 흰 고무신. 찢어진 고무신 뒤꿈치를 기운 자국이 보인다.

송광사 불일암에 벗어놓았던 법정 스님의 흰 고무신. 찢어진 고무신 뒤꿈치를 기운 자국이 보인다.

그날 법상에 오른 법정 스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복은 다음에 이루어야 하는 목표가 아닙니다.
 당장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면서도
 정작 이 순간의 행복은 놓치고 있습니다.”

길상사에는 침묵이 흘렀습니다.
대중은 법정 스님의 ‘행복론’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법정 스님은 이 말을 덧붙였습니다.

“다 내려놓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무심히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야,
 그 안에서 행복의 싹이 튼다.”

저는 ‘무심히’라는 말에서 울림이 왔습니다.
글자 그대로 무심(無心)히는 ‘마음 없이’라는 뜻입니다.
슬픈 마음, 기쁜 마음, 아픈 마음, 성난 마음을 내려놓아 보라는 말입니다.

그럼 무엇이 보일까요.
지금 이 세상에 이미 내재해 있는 아름다움입니다.

겨울에 내리는 눈,
봄에 피는 꽃,
여름에 내리는 소나기,
가을에 떨어지는 낙엽.

내 감정의 선글라스를 벗고 보면
이 모두가 ‘아름다운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법정 스님은 “그런 시간을 가져야 행복의 싹이 튼다”고 했습니다.

#풍경2

우리는 ‘먼 곳’에 익숙합니다.
늘 먼 곳을 바라보고, 먼 곳을 동경합니다.

‘님은 먼 곳에’란 노래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꿈꾸는 행복의 순간도
늘 먼 곳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법정 스님의 다비식에서 장작이 타고 있다. 법정 스님의 상좌들이 영정 사진을 들고 있다.

법정 스님의 다비식에서 장작이 타고 있다. 법정 스님의 상좌들이 영정 사진을 들고 있다.

우리는 ‘먼 곳’을 향해 달려갑니다.
백 걸음, 천 걸음, 만 걸음 달려간 뒤에는 어떨까요.
거기에 있는 ‘먼 곳의 행복’을 내 손에 쥐게 될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천 걸음, 만 걸음 나간 뒤에는
거기서 다시 천 걸음, 만 걸음 뒤에 있을 거라 설정한
‘더 먼 곳의 행복’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어느덧 우리의 삶에도 황혼이 내리겠지요.

인생에서 백 걸음, 천 걸음, 만 걸음을 걷지 말자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이미 존재하는 행복을 맛보면서
간다면 더 좋지 않을까요.
그런 작은 순간들이 모여서 결국 ‘나의 인생’이 될 테니 말입니다.

#풍경3

그날 법문을 하던 법정 스님은 아프리카 탐험대 일화를 꺼냈습니다.

유럽 탐험대였습니다.
탐험에 필요한 짐들은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짊어지고 갔습니다.
물론 길 안내까지 겸해서 말입니다.

탐험을 떠난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원주민들이 꼼짝도 하지 않고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화가 난 탐험대의 유럽인들이 그들을 다그쳤습니다.
그러자 원주민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곳까지 너무 빨리 왔다.
  우리 영혼이 우리를 따라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유럽에서 온 탐험대원들이 놓치고 있던
무심의 순간을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이미 챙기고 있었습니다.

그건 원주민들의 표현처럼
내 삶과 내 영혼이 보폭을 맞추어 가는 여정입니다.

법정 스님이 생전에 남긴 글과 글씨. [사진 금강스님]

법정 스님이 생전에 남긴 글과 글씨. [사진 금강스님]

#풍경4

가을밤, 별들이 참 많습니다.
별은 아주 멀리 있습니다.

별들이 울어대는 고흐의 그림을 봐도,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을 읊조려봐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행복, 우리의 별은 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말입니다.

이 우주의 어딘가에 행복의 별이 있겠지.
내 인생에도 그런 행복의 순간이 오겠지.
언젠가는 그 별에 가닿을 수 있겠지.

우리는 늘 멀리 있는 행복을 꿈꿉니다. 그러느라 지금 내 앞에 있는 행복을 지나치기 쉽습니다.

우리는 늘 멀리 있는 행복을 꿈꿉니다. 그러느라 지금 내 앞에 있는 행복을 지나치기 쉽습니다.

여기에는 없는 별,
먼 곳에만 있는 별.
그런 별을 찾으며
우리는 밤하늘을 바라봅니다.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달에 가서 보면 어떨까,
화성에 가서,
목성에 가서,
아니면 더 먼 우주에 가서 보면 어떨까.

맞습니다.
거기서 바라보면
지구가 그런 별입니다.

내가 그토록 동경하던 별,
그토록 가고 싶던 별,
그토록 살고 싶던 별.
우리가 바로 그 별에 살고 있습니다.

밤하늘의 별을 그린 고흐의 작품. 달에서 바라보면 지구야말로 아름답고 푸른 별이다.

밤하늘의 별을 그린 고흐의 작품. 달에서 바라보면 지구야말로 아름답고 푸른 별이다.

거기가 어디일까요.
우리가 지지고 볶으며 숨 쉬고 있는
지금 여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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