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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리셋코리아

"팬데믹 대응 공공의료론 한계, 민간 공조 체계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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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에스더 기자 중앙일보 팀장
12일 서울 송파구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서울 송파구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첫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이후 1년 9개월이 지났다. 백신 접종이 이뤄지고 경구용 치료제가 등장하면서, 인류는 길고도 잔혹했던 코로나19와의 전쟁이 곧 끝날 거란 희망을 갖게 됐다. 코로나19는 대한민국이 21세기 들어 만난 네번째 신종 감염병이다. 앞서 2003년 사스(SARSㆍ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MERSㆍ중동호흡기증후군)가 있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와의 공존(with corona)을 이룬다 해도 앞으로 5~10년 이내 새로운 감염병이 들이닥칠 것이라고 경고한다. 머지않아 또 다른 팬데믹을 맞닥뜨릴 때를 대비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국내 최고의 감염병ㆍ방역 전문가들로 구성된 리셋코리아 감염병대응분과 위원 6인의 진단을 들어봤다.

②감염병대응분과 제언- 제2, 제3의 코로나 #질병청은 역부족, 보건부 신설해야 #과학적 근거 둔 의사결정 필요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회 상설화를 #백신구매 땐 공무원에 면책권 줘야

“보건부를 만들어 대한민국 보건의료 청사진 그려야”

리셋코리아 자문위원들은 “현재 정부의 보건의료 거버넌스는 신종 감염병 대응에 한계가 있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병율 차의학전문대학원 예방의학교실 교수(리셋코리아 감염병분과 위원장)는 “코로나19 와중 질병관리청이 만들어졌지만 질병청은 아주 제한적인 부분만 다룰 수 있어서 보건의료를 전문화해서 다루는 정부 조직이 만들어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전 교수는 “전체 보건의료 분야를 총괄하는 조직이 있어야 중앙 정부 전체를 아우르는 감염병 등 보건의료 분야 국가 정책 마련이 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보건부를 만들어 그 안에서 보건의료 전체에 대한 청사진을 만들고, 국가의 모든 자원을 관리하고, 질병청과 광역ㆍ기초지방자치단체까지 다 함께 어우러지는 정부 조직이 돼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이혁민 세브란스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코로나 19가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계산하고 시뮬레이션해서 정책 방향을 정해야 하는데 질병청에는 그런 자원이나 능력이 없다”라고 말했다. 방역과 사회경제 여파를 큰 그림에서 조망하고 정책 방향을 결정할 수 있을 만큼 질병청 조직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정재훈 가천대길병원 예방의학과 교수도 “감염병 정책에서 거버넌스를 잘 잡아주는 것이 필요하다”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정 교수는 “앞으로 신종 감염병 위기가 생겼을 때 위기 대응하는 컨트롤타워, 거버넌스가 어떻게 구성이 되고, 누가 최종적인 책임을 지고, 거시적인 정책 판단이 틀렸을 때 책임질 수 있는 주체가 누구인지 명시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리셋코리아 감염병분과 위원들의 비대면 회의 모습.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윤 서울대의대 교수, 정두련 삼성서울병원 교수, 이혁민 세브란스병원 교수, 정재훈 가천대길병원 교수, 최재욱 고려대의대 교수, 전병율 차의학전문대학원 교수

리셋코리아 감염병분과 위원들의 비대면 회의 모습.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윤 서울대의대 교수, 정두련 삼성서울병원 교수, 이혁민 세브란스병원 교수, 정재훈 가천대길병원 교수, 최재욱 고려대의대 교수, 전병율 차의학전문대학원 교수

“대통령에 상시 조언할 수 있는 전문가 자문위원회”

코로나19와 같은 국가 재난 상황 속에서 정부와 대통령에 상시 조언할 수 있는 전문가 중심의 공식적인 자문위원회가 절실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전병율 교수는 “현재 청와대에서 대통령에 전문적인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라며 “질병청이 있고 각각의 학회가 있지만 과연 그들의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대통령에게 전달이 되는지 의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이런 국가 재난 상황 속에서 대통령에게 상시 조언해줄 수 있는 전문가 중심의 자문위원회가 반드시 필요하다”라며 “그 자문위원회는 보건의료의 재난에 대해 사견을 배제하고 전문적인 내용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최재욱 고려대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과학적 근거가 불충분한 불확실성 위험에 대응하는 것은 현행 의사결정체계로는 한계가 명확하게 드러났다”며  감염병을 포함한 건강, 보건, 과학 분야의 최고 위원회를 국가과학기술위원회처럼 대통령 산하 직속기구로 만들어 과학적근거에 기반한 의사결정기구를 제도화하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민간ㆍ공공 병원을 아우르는 진료 체계

김윤 서울대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지난 1~4차 대유행 때 드러난 우리나라 감염병 진료 체계의 문제를 지적했다. 김 교수는 “1차 유행 때 대구 신천지발 집단감염으로 병원에 못가는 확진자 수가 1300명이 넘어가는 상황이었는데, 당시 대구 지역의 병원 상황을 보면 피크(정점)때 병상가동률은 25.4%로 사실상 병상이 비어있었고, 중환자실은 절반이 비어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병상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고 정부가 비어있는 (민간) 병상을 동원할 능력이 없었고, 병원들도 병상을 안 내 줬던 것”이라며 “그렇게 되니까 대부분의 공공병원이 코로나 환자를 진료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인공호흡기나 고농도 산소요법을 필요로 하는 중증 환자의 55%가 일반 병동에서 부적절한 치료를 받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감염병 진료 체계에 있어 민간과 공공을 다 아우르는 체계가 있어야 한다. 선진국은 확진자가 많이 발생하면 공공과 민간을 가리지 않고 함께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두련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공공의료만 강화해서는 이런 대규모의 감염병 국가 재난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이번에 확실히 알았고 따라서 민간의료와의 협력이 필요하다”라며 김 교수 주장에 공감했다. 그는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민간과 공공의 협력을 통해서 민간을 감염병 위기 대응에 얼마나 끌어들일 수 있을지 사전에 법제화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최재욱 교수는 "코로나 19 감염병 확산에 대한 두려움과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동네의원 즉 소아청소년과, 내과, 이비인후과 등 1차 의료체계의 약화를 초래했다. 감염병 뿐만 아니라 필수 의료를 담당하는 동네의원, 종합병원을 아우르는 국가의료전달체계의 종합적인 개편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리셋코리아 감염병분과 위원들의 제언.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리셋코리아 감염병분과 위원들의 제언.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감사 두려워 ‘백신 도입’ 적극적으로 못하는 공무원

김윤 교수는 감사원의 감사가 감염병과 같은 위기상황,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도 통상적인 상황과 다름없이 이뤄지는 건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는 대표적인 예시로 ‘백신 도입’을 들었다. 김 교수는 “2020년 9월 15일 정부 브리핑에서 ‘많은 국가가 이미 백신 선구매 계약을 체결했는데 한국은 너무 늦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정부는 ‘선구매 계약은 해당 백신의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날리는 돈이 된다. 전문가 평가를 통해 안전성, 유효성을 충분히 검토한 뒤 구매계약을 체결하겠다’고 답변했다. 그런데 사실 8월말에 이미 선진국들은 전 국민에게 백신을 접종할 수 있는 20억 회분의 백신 구매계약을 마친 상태였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정부는 11월말 감사원으로부터 ‘(백신 계약에 대한 책임을)면책한다’는 회신을 받은 후에 백신 구매계약을 체결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2009년 신종플루때의 기억 때문이다. 당시 질병관리본부장이 직접 백신을 확보하러 미국에 다녀 왔는데 이렇게 확보한 백신이 나중에 남았고, 감사원이 이 일을 문제 삼았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공무원들을 소극적으로 만든 중요한 원인이 현재 감사원의 감사 체계이고, 그 결과 백신 구매가 늦어지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며 “감사와 관련, 방역이나 재난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공무원의 정책 결정에 대한 면책조항이나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 제도화돼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코로나19 종식 이후 바로 닥칠 ‘항생제 내성’ 문제

이혁민 교수는  “코로나 19가 끝나면 가장 문제가 될 것이 항생제 내성”이라고 경고했다. 이 교수는 “항생제 내성에 대해서 길게는 20년 전부터 짧게는 5년 전부터 여러 얘기가 나왔었지만 지금 개선되는 것이 전혀 눈에 보이지 않고 있다. 지속적인 노력은 하고 있는데 눈에 확 보이는 개선은 없는 상황이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그 이유 중 거버넌스 문제가 제일 크다”라며 “최근 들어서 질병청 내에 ‘항생제내성관리과’가 생기긴 했지만, 질병청의 한 과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훨씬 더 복합적인 접근을 해야지만 해결되는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성북구청에 마련된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에서 시민들이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뉴스1

지난 7일 오후 서울 성북구청에 마련된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에서 시민들이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뉴스1

“백신ㆍ치료제ㆍ진단검사법 개발은 국가 안보”

정두련 교수는 “과연 그 다음에 뭐가 또 올 것인가 생각해보면 조류 인플루엔자처럼 치명률이 60% 넘는 가장 안 좋은 팬데믹이 오지는 않을지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그러면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 때와 같이 과연 항바이러스제를 우리가 비축하고 있는지가 문제 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코로나19와 똑같은 상황만 대처할 것이 아니라 그동안 경험했던 여러 가지 감염병 위기 상황들을 잘 대처할 수 있는 다방면의 개선이 필요할 것 같다. 이번에 다양한 신기술의 백신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기술 백신 개발 역량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인플루엔자를 포함한 항바이러스제의 확보와 백신 개발 역량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정재훈 교수는 “백신ㆍ치료제나 진단검사 개발하는 능력은 사실상 국방의 개념에 가깝다고 본다. 국산 백신을 개발하고 보급할 수 있는 국가가 빠르게 접종하고, 빠르게 경제적으로 회복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의학이나 과학의 영역을 넘어서서 국가 안보와 직결된 것들이 백신과 진단검사, 치료제 개발이다. 그러한 개발 능력을 경제성이 없더라도 정부가 장기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백신 접종 현황.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백신 접종 현황.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