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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20대가 ‘패닉바잉’한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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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창규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김창규 경제에디터

김창규 경제에디터

대학생 A(23)군은 방학 때만 되면 인근 공장으로 가 일을 한다. 일은 고되다. 단순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공장 직원과 똑같은 일을 한다. 카페 등이 아닌 공장으로 가는 건 돈을 모으기 위해서다. 일이 힘든 만큼 수입도 많다. 그는 등록금뿐만 아니라 여윳돈을 모으고 있다. 직장에 들어가면 이른 시일 내에 집을 살 수 있도록 목돈(종잣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20대가 직장에 들어가면 월급을 차곡차곡 저축한다는 건 이젠 옛날얘기다. 주식이건 암호화폐건 돈을 불릴 수 있는 재테크에 적극적이다. 기성세대가 볼 때는 공격적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부업으로 온라인 소매업 등에 뛰어들기도 한다. 이들이 돈을 모으는 1차 목표는 대체로 한 곳으로 집중된다. 내 집 마련이다.

빚 내서 부동산 등 투자에 적극
집값 상승 흐름…투자만 탓할수야
정책 유연해야 동맥경화 해소돼

2020년 3월부터 올해 7월까지 서울의 부동산 매매 자금조달계획서를 분석한 결과 20대 주택 구매자 10명 중 7명은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를 했다. 이 비중(71%)은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높다. 20대가 자금이 부족함에도 무리하게 주택 구매에 나서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전국 아파트 매매에서 20대 이하가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2019년만 해도 4%였지만 지난해 9월 5%대로 뛰더니 올해는 6%대로 올라섰다.

정부의 고점 경고에도 불구하고 서울 아파트 값 상승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지난 8월 서울타워에서 바라본 서울·경기도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정부의 고점 경고에도 불구하고 서울 아파트 값 상승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지난 8월 서울타워에서 바라본 서울·경기도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20대는 사회 경험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적다. 모아놓은 돈도 적은 편이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주식이나 암호화폐 투자에 적극적이고, 주식 시장이 주춤해지자 없는 돈까지 끌어모아 전세를 끼고라도 집을 사려 한다. 사회생활을 먼저 시작한 ‘선배’ 입장에서 볼땐, 위험하기 짝이 없는 행위다. 이를 두고 가격 상승 등에 대한 불안감으로 가격과 관계없이 사들이는 ‘패닉바잉(공황구매)’ 또는 많은 사람이 사서 가격이 오르니 뒤따라 사는 ‘추격매수’라는 설명을 내놓는다. 이런 표현에는 20대의 투자는 무모하거나 합리적이지 않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하지만 2021년 10월 이 시점에서 20대의 부동산 투자 행위는 합리적이다.

우선 집값 전망을 보자. 한국갤럽이 지난달 18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여론 조사에서 향후 1년간 집값 전망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의 57%가 “오를 것”이라고 답했다. “내릴 것”이라는 응답자는 14%에 불과했다. 상당수 부동산 전문가도 집값 상승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이들은 요즘 집값 하락 요인을 찾기 어려운 데다 각종 개발 호재, 입주 물량 감소 등이 가격을 끌어 올릴 것으로 본다. 심지어 정부도 내년 부동산 가격은 오르고 증시는 하락할 것으로 예측하고 세입예산을 편성했다. 대부분의 시장참여자가 집값이 오른다는데 집을 사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집 있는 사람과 집 없는 사람의 빈부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 데이터를 분석(김회재 의원)해 보니 지난해 20대 가구 상위 20%의 경상소득(5262만원)은 하위 20%(2145만원)의 2.5배 정도였다. 하지만 자산의 경우 상위 20%(3억2855만원)가 하위 20%(844만원)의 38.9배에 달했다. 2019년(33.4배)보다 5.5배 포인트 늘었다. 그 사이 상위 20%의 자산은 늘고 하위 20%는 쪼그라든 탓이다.

여기에 임대차법(계약갱신청구권제·전월세상한제) 시행 2년이 되는 내년 7월 이후엔 신규 전월세 계약이 쏟아진다. 계약갱신청구권이 만료된 물량은 임대료 인상 폭 제한(5%)을 적용받지 않아 전월세 시장이 들썩일 가능성이 크다. 보통 전세가는 매매가에 선행한다고 한다. 전셋값이 오르면 이어서 집값이 뛴다는 말이다. 집이 없는 사람 입장에선 이래저래 고난의 시기가 이어지고 있다. 시장 흐름이 이런데도 ‘집값이 주춤해지겠지’라며 느긋하게 팔짱 끼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20대의 투자가 위험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한국은행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릴 채비를 하고 있다. 앞으론 감당하지 못할 수준으로 빚을 내 투자했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다만 이렇게 만든 건 규제일변도의 정부 정책과 풍부한 유동성 등 시장 상황이다. 시장참여자의 매매 동기는 20대건, 50대건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정부는 대출 조이기 등 규제만 하면서 “큰 폭의 조정 가능성”“오름세 꺾였다”는 말만 되뇐다. 시장은 수요와 공급의 어우러짐을 통해 건강해진다. 신규 주택뿐만 아니라 (다주택자 등의)기존 주택의 공급(매물)을 크게 늘려 ‘공급 동맥경화’를 해소하는 정책의 유연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