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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배의 "정영학 녹취록 편집됐다" 증거 오염 전략은 묘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인 김만배(57)씨가 대장동 개발 로비 의혹의 핵심 증거물인 ‘정영학 녹취록’을 탄핵할 수 있을까.

12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김씨는 지난 11일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팀장 김태훈 4차장) 조사에서 천화동인 5호 실소유주인 정영학 회계사가 검찰에 제출한 녹취록의 증거능력을 깨트리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김씨는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 “정 회계사가 의도적으로 녹음하고 편집했다”며 “단 한 번도 정 회계사와 진실된 대화를 한 적 없다”고 선을 그었다.

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의 핵심 인물인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가 12일 오전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소환 조사를 마치고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의 핵심 인물인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가 12일 오전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소환 조사를 마치고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김만배 “악의적 편집”…녹취록 증거오염 의혹 제기

김씨는 정 회계사의 녹취록에 자신이 천화동인 1호의 절반은 ‘그분’ 것이라는 취지의 내용을 말했다는 내용을 두고 “천화동인 1호 실소유주는 의심의 여지 없이 화천대유 것이고 화천대유는 내 개인 기업”이라며 선을 그었다. 당초 정치권에선 김씨가 언급한 ‘그분’이 천화동인 1호의 숨겨진 실소유주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주요 발언.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주요 발언.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하지만 김씨는 12일 검찰 조사를 마치고 녹취록에 나오는 ‘그분’과 관련해 “(과거 민영개발을 추진했던) 구사업자들의 갈등이 내 쪽으로 번지지 못하게 하려는 차원에서 (정 회계사에게) 말한 것일 뿐”고 반박했다. 녹취록발(發) 의혹 중 ‘350억원 로비’ ‘700억원 약정’ 등에 대해서도 “주주들이 각자 분담할 비용을 과도하게 부풀리면서 오간 사실이 아닌 말”이라고 부인하며 녹취록의 증거오염 가능성을 제기했다. 김씨 측은 정 회계사 역시 “고위직 5~6명에게 50억원씩 인사해야 한다”며 200억~300억원 비용을 주장했으면서 자신 발언은 쏙 뺀 채 녹취록을 악의적으로 편집해 유포하고 있다는 주장도 폈다.

‘녹취록 편집됐다’ 입증 땐 증거능력 탄핵 가능

실제로 대장동 의혹을 풀 ‘스모킹 건’이라 불리는 정 회계사의 녹취록을 탄핵하는 일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2012년 대법원은 녹취록의 증거능력이 인정되기 위한 두 가지 조건을 제시한 바 있다. 형제 소유 토지의 손실보상을 받아내는 과정에서 사업지구 조합장을 협박해 조정에 합의하게 한 혐의로 2년 6개월형을 확정받은 김홍복 전 인천 중구청장의 상고심에서다.

당시 재판부는 녹취록이 증거능력으로 인정받으려면 제출된 녹취록이 ①대화 내용을 녹음한 원본 파일이거나 사본일 경우 편집 흔적이 발견되어서는 안 되고 ②녹음 경위, 대화 장소, 내용 및 대화자의 관계 등에 비추어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행해져야 한다고 판시했다. 김씨 측 설명대로 녹취록이 편집되거나 사실관계와 다를 경우 증거로서 신빙성을 갖지 못하거나 최악의 경우 증거능력으로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는 셈이다.

“한명숙 동생이 쓴 ‘1억 수표’처럼 추가 물증 나와야”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김씨 측의 ‘녹취록 증거능력 오염 전략’에 대응하려면 추가 물증 확보가 필수라고 분석한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충분한 정황 증거 없이 녹취록만을 토대로 기소할 경우 재판에서 막힐 수밖에 없다”며 “‘성완종 리스트’ 사건 때에도 성 전 회장의 녹취록이 앞뒤 맥락을 보강할 증거가 없어서 증거능력 인정을 못 받았다”고 지적했다.

이필우 변호사(법무법인 강남)는 “배임 혐의나 로비 의혹은 상대방의 지위, 로비했다고 추정되는 시점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만 나오면 되기 때문에 정 회계사의 녹취록 영향이 클 것”이라면서도 “다만 뇌물 혐의의 경우에는 한명숙 전 총리 사건 때 동생의 전세자금으로 쓰인 ‘1억원 수표’처럼 단순 녹취록보다도 금원이 어떤 방식으로 전달됐는지 입증하는 게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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