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키호택과 걷는 산티아고길 8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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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키호택과 걷는 산티아고길 80일]나폴레옹에 도전하다, 피레네산맥 그 길

중앙일보

입력 2021.10.12 17:00

업데이트 2021.10.15 17:35

[동키호택과 걷는 산티아고길 80일-5화]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우리는 이제 피레네산맥을 넘어 스페인으로 간다.

우리는 이제 피레네산맥을 넘어 스페인으로 간다.

 하늘은 맑고 구름은 환상적이다. 우리는 드디어 프랑스의 샤를마뉴 대제와 나폴레옹 황제가 걸었다는 바로 그 순례길로 들어섰다. 당나귀 동키호택은 산을 넘어서 만날 예정이다. 샤를마뉴는 이베리아반도의 이슬람 제후국 코르도바를 정복하려 피레네를 넘다가 도중에 바스크 전사들에게 쌍코피가 터지고 철수했다. 이들 덕에 맞닥트리지는 않았지만 이슬람 세력은 넘실대는 제국 군대의 파도를 걱정하며 불안에 떨었을 것이다. 샤를마뉴에게 공격의 명분은 있었다. 갈리시아 한 벌판에서 예수의 12제자 중 한 명인 큰 야고보의 무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기독교도들이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성지’다. 신앙심 깊은 교도들이 몰려들었다.
‘산티아고 순례자들을 막아라.’

걸으며 만나는 아주 흔한 풍경.

걸으며 만나는 아주 흔한 풍경.

이슬람 세력이 이 길에 촉각을 곤두세우자 순례자들은 위험에 빠졌다. 그들을 위협하는 것은 이슬람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노상강도도 있었을 테고 사나운 짐승들이 달려들기도 했을 테다.
5일간의 레이짜 생활을 마치고 팜플로나를 거쳐 생 장 피에 드 포드(Saint-Jeang-Pied-De- Porte)의 한 숙소에 도착했다. 레퓨지(Refugee)라고 쓰여 있는데 이는 알베르게와 마찬가지로 ‘피난처’라는 의미다.
“천 년 전에는 아마도 은밀한 장소에 숙소가 있었을 것 같아. 순례자들은 비표로 조가비를 가지고 다닌다잖아? 그래서 피난처라는 말을 쓰다가 오늘날 숙소라는 의미로 굳어진 것 같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이곳부터 다음 숙소가 있는 스페인의 롱세스바예스(Roncesvalles)까지는 24km다. 길을 나서자마자 피레네 산맥의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이 길을 지나간 많은 사람들이 가장 어려웠던 순간이었다고 기억하는 곳이다.

오리손 산장이 가깝다. 프랑스에서는 숙소를 레퓨지라고 부르고 스페인에서는 알베르게라고 부른다.

오리손 산장이 가깝다. 프랑스에서는 숙소를 레퓨지라고 부르고 스페인에서는 알베르게라고 부른다.

오리손 산장. 걷다가 가장 먼저 만나는 쉼터다.

오리손 산장. 걷다가 가장 먼저 만나는 쉼터다.

쉼터에서 만난 짖궂은 아재. 손가락 모양 하고는 끌끌.

쉼터에서 만난 짖궂은 아재. 손가락 모양 하고는 끌끌.

“동훈아 무겁지 않아?”
나는 짐을 배달로 보냈지만 동훈이는 배낭을 짊어지고 가겠다고 했다. 짐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다음 숙소까지 소위 〈동키서비스〉라는 택배를 이용한다.
“동훈아. 아부지는 말야. 당나귀하고의 여행이 컨셉이잖아. 그래서 동키서비스를 이용한 거지.”
“...”
괜히 미안한 마음에 한 말인데, 동훈이에겐 염장을 지르는 소리로 들렸겠지. 몸이 홀가분하니 에너지가 모두 입으로 모였나 보다. 나는 연신 이야기를 하고 동훈이는 말이 없다. 동훈이가 힘에 부쳐보였다. 헉헉대며 걷다가 가끔 쳐다보는 피레네의 풍경은 힘들어하는 순례자들에게 위안이다. 하얀 구름 아래 푸른 풀밭에서 풀을 뜯는 양떼들의 모습에 눈을 돌리면 발은 스스로 멈춘다.
“아부지”
말이 없던 동훈이가 나를 불러세웠다.
“응, 왜?”
“지금부터는 함께 걷지 말고 자기 페이스대로 걷기로 해요. 쉬고 싶을 때가 서로 다르니까. 대신 많이 뒤처지면 일정 장소에서 기다리면 좋을 것 같아요.”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했다.

걷던 길을 돌아보는 동훈이. 양들은 아는 체도 안한다.

걷던 길을 돌아보는 동훈이. 양들은 아는 체도 안한다.

초지에는 어디나 양들이 풀을 뜯고 있다.

초지에는 어디나 양들이 풀을 뜯고 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말들도 부지런히 살을 찌운다.

겨울이 오기 전에 말들도 부지런히 살을 찌운다.

어제 레퓨지에 들렀을 때 숙소 주인이 아주 유머스러운 말로 순례길을 걷는 자세에 대해 설명 했다.
“경쟁하지 마세요. 먼저 간다고 상 주지 않아요. 뒤처졌다고 나무라지도 않습니다. 누구를 따라가지 마시고 자기 몸이 허락하는 대로 따르세요.”
 누구를 따라가지 않기 위해 우리는 헤어졌다. 몸이 가볍고 지팡이까지 있는 내가 앞서갔다. 침묵 속에 혼자 걷자니 내 관심은 마음속으로 향했다. 생각을 하며 땅을 보고 걸으니 똥도 밟지 않았다. 멀리서 양떼의 방울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몸이 처지기 시작했다. 둘이 걸을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기운이 급작스럽게 빠졌다. 그래도 동훈이가 저 멀리서 모습을 나타내면 다시 힘이 생겼다.
‘먼 길을 가려면 함께 하라’

걷다가 만난 비야꼬리 성모상. 프랑스 루르드 성지에서 모셔왔단다. 완주하도록 힘을 주세요, 오가는 사람들이 앞에서 두손을 모은다.

걷다가 만난 비야꼬리 성모상. 프랑스 루르드 성지에서 모셔왔단다. 완주하도록 힘을 주세요, 오가는 사람들이 앞에서 두손을 모은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 맨발로 잠시 휴식중. 장난기가 발동해 지팡이에 깃발 대신 신발을 걸었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 맨발로 잠시 휴식중. 장난기가 발동해 지팡이에 깃발 대신 신발을 걸었다.

부드럽게 흘러가는 피레네 봉우리들.

부드럽게 흘러가는 피레네 봉우리들.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격언이다. 함께 하니 다시 힘이 솟았다.
정상을 지나면 롱세스바예스 수도원까지 11키로다. 절반을 넘게 걸었다니 마음이 놓였다. 이제부터는 내리막길이 계속 이어진다. 내리막길은 중력의 힘을 빌릴 수 있으니 쉽게 걸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뒤 쫒아 오던 사람들이 우리를 앞질렀다.
저 앞에 고깔모자를 쓴 모습의 수도원이 나타났다.
“동훈아, 이제 다 왔어. 저기가 숙소잖아. 금방 가겠는 걸?”
“한 시간은 걸어야 해요.”
손에 잡힐 듯 보이는 수도원인데 아직도 5km나 남았다. 이 짧은 구간을 지나며 몸이 부서지는 느낌을 받았다. 목적지에 다 왔다고 생각하니 내 몸이 진심을 드러냈다. 나는 물론 동훈이 걸음도 비틀거렸다. 피로가 몰려와 내리막길 내내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이 친구들 힘내. 지나치며 주고받은 가벼운 한마디가 걸을 때 큰힘이 된다.

어이 친구들 힘내. 지나치며 주고받은 가벼운 한마디가 걸을 때 큰힘이 된다.

거대한 수도원 롱세스바예스는 피레네를 넘은 순례자들이 처음으로 만나는 숙소다. 생장피에드포드에서 출발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하루를 잔다. 신발장에는 이미 도착한 사람들의 신이 가득했다. 우리가 거의 꼴찌로 도착한 모양이었다.
숙소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몸이 스르르 풀렸다. 서로 다른 속도로 걸었지만 우리는 결국 같은 공간에 도달했다.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저녁이었다. 수도원은 숙소가 아니라 안전을 위탁할 피난처라는 생각이 들었다. 빠르게 걸어온 사람도, 달팽이처럼 느리게 온 사람도 결국 이 피난처에서의 저녁을 함께 맞이했다.
우리는 내일 이곳에서 아리츠 농장에서 오는 당나귀 동키호택을 만난다. 당나귀와 함께 할 순례여행의 앞날에 어떤 피난처가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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