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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화 BMW'라 불리던 中 기업의 추락

중앙일보

입력 2021.10.12 11:55

‘리닝(李寧, LI-NING), 안타(安踏, Anta)’. 중국에서 ‘궈차오(國潮, 자국 브랜드 소비를 선호하는 중국 트렌드)’ 열풍에 힘입어 2030세대를 사로잡은 토종 브랜드다. 반면 궈차오 마케팅을 활용하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브랜드도 있다. 여성화로 한때 인기를 끌었던 ‘다프네(DAPHNE, 達芙妮)’의 이야기다.

[사진 腾讯网]

[사진 腾讯网]

리닝, 안타 등 중국 토종 기업은 현재 매출 100억 위안(1조 8441억 원)을 기록하며 연일 성장세를 거듭하고 있다. 그중 안타는 올해 상반기 기준 228억 위안(4조 2045억 4800만 원)의 매출을 올리며 아디다스차이나(3조 3747억 300만 원)를 훨씬 웃돌았다. 이는 전년 동기보다 55% 증가한 수준이며, 순이익 역시 같은 기간 131.6% 증가하는 등 눈에 띄는 실적을 보여줬다.

궈차오 열풍을 이어가고 있는 또 다른 중국 토종 브랜드 ‘후이리(回力, WARRIOR)’는 1927년 탄생, 60년대 시대를 풍미한 신발 브랜드로 군림하다가 90년대 들어 ‘싸구려’로 취급받는 수난을 겪었다. 이후 최근에는 리닝, 안타 등과 함께 2030세대에게 사랑받으며 새로운 매출 신화를 써나가고 있다.

중국 토종 브랜드 ‘후이리(回力, WARRIOR)’의 제품 중 하나. [사진 소후닷컴]

중국 토종 브랜드 ‘후이리(回力, WARRIOR)’의 제품 중 하나. [사진 소후닷컴]

반면 다프네는 한때 중국 내에서 ‘국산 신발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으나 지금은 7년 연속 매출 하락세를 보이며 ‘할인왕’으로 전락했다.

'여성화 업계의 BMW', 본토 진출 5년 만에 상장

[사진 Inside Retail]

[사진 Inside Retail]

다프네는 1990년 중국 본토 진출 이후 홍콩과 대만은 물론 본토에서도 여성들에게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심지어 ‘여성화 업계의 BMW’라는 수식어까지 얻었다. 가격 경쟁력으로 대륙에서 시장 선점에 성공한 다프네는 본토 진출 5년 만인 1995년 홍콩 증시 상장 이후에도 흥행을 이어갔다. 당시 다프네는 패셔너블한 여성화로 여겨지며, 대도시에 사는 여성들이 주로 신는 신발로 인식됐다.

다프네는 2012년 기준 매출 100억 홍콩달러(1조 5246억 원) 돌파했으며, 매장 수 7000여 개, 시가총액 190억 홍콩달러(2조 8967억 4000만 원) 등 눈부신 실적을 기록했다. 신발 업계에서 판매된 여성화 다섯 켤레 중 한 켤레는 다프네 제품이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사진 China daily]

[사진 China daily]

다프네의 이 같은 호실적은 중국 여성 소비자의 소비력 향상과 관련있다. 여성이 중국 내수 소비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하며 여성화를 팔던 다프네 역시 수혜를 본 셈이다. 당시 20~60세 여성 소비자는 약 4억 명으로 이들의 연간 소비 금액은 10조 위안(1844조 1000억 원)이다. 2020년 여성경제(她經濟, 타징지) 시장 규모는 4조 8000억 위안(885조 1680억 원)에 달했으며, 이 추세를 이어갈 경우 중국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여성 소비 시장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중국 여성의 소비력 향상으로 관련 의류·신발 업계도 잇따라 호황을 누렸다. 2021년 상반기 중국 국내 의류 업체는 이미 1만 2467개, 이들 기업의 매출은 6534억 위안(120조 4934억 9400만 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2.99% 늘었다.

그러나 여성경제 활성화에 기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던 기업들은 점차 쇠락의 길을 걷게 되고, 업계 1위를 한동안 지키고 있던 다프네 역시 추락했다. 지난해 기준, 다프네의 매출은 3억 6400 홍콩달러(554억 9544만 원)로 2019년보다 83% 줄었다.

[사진 腾讯网]

[사진 腾讯网]

올해 8월, 다프네는 프리미엄급 오프라인 사업을 접고 7000여 개 매장을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오프라인 시장에서 철수하겠다는 의미다. 잘 나가던 다프네에게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선택 한 번 잘못했을 뿐인데...온라인 대신 오프라인 전략 택한 다프네의 최후

2010년 중국에서 이커머스가 부흥하며 수많은 기업이 오프라인 사업에서 온라인 사업으로 옮겨갔다. 그러나 다프네는 이커머스의 힘을 무시한 채 오프라인 사업을 고수했다. 이커머스 열풍을 타고 온라인 사업이 주류로 성장하자 뒤늦게 온라인 시장의 중요성을 깨달은 다프네는 징둥 등 판매 채널과의 제휴를 잠시 중단하고 ‘야오뎬 100(耀點100)’이라는 전자상거래를 선택, 온라인 사업에 매달렸다. 그러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이커머스 공룡에게 밀린 야오뎬 100은 자금 문제로 부도를 면치 못했으며 이로 인해 다프네 역시 큰 타격을 받았다. 2013년부터 적자를 기록하기 시작한 다프네는 2년 후 30억 홍콩달러(4573억 8000만 원)의 적자를 냈다. 시가총액도 전성기보다 약 97% 줄어든 5억 8500만 홍콩달러(891억 8910만 원)에 그쳤다.

[사진 cnwear]

[사진 cnwear]

시가총액 488억 원으로 급락한 다프네, ‘땅 팔아’ 구사일생

애매모호한 브랜드 정체성도 다프네의 추락에 한몫했다. 일반적으로 다프네의 신발 한 켤레 가격은 수백 위안에 달한다. 그러나 재고 압박에 시달리자, 최근 2년간 다프네는 ‘할인 판매’에 주력했다. 평소 한 켤레를 살 수 있었던 돈으로 두세 켤레는 거뜬히 살 수 있는 수준이었다. 시중 판매가와 정품 여부를 의심케 만드는 할인 행사에 ‘싸구려’라는 타이틀까지 얻었다.

뒤늦은 대처 때문에 현재 다프네의 수익은 겨우 입에 풀칠하는 수준까지 떨어졌다. 다프네는 토지 및 부동산 매각을 통해 2021년 1~6월 현재 매출 5040만 홍콩달러(76억 6886만 원), 순이익 4480만 홍콩달러(68억 1676만 원)를 기록했다. 대부분의 수익이 부동산 매각에서 나온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에도 완전한 흑자 회복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매각으로 급한 불은 막았으나 여전히 사업 활로를 찾지 못한 다프네의 추락은 계속되고 있다. 9월 말 현재 다프네의 시가총액은 3억 2100만 홍콩달러(488억 4336만 원)로, 다프네가 전성기 시절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차이나랩 이주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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