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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 못하는데 납벨트까지 차고…고교생 잠수 사망 미스터리 [사건추적]

중앙일보

입력

잠수 자격증도 없는 고교생이 왜 무거운 납 벨트까지 착용하며 작업에 투입된 걸까. 지난 6일 전남 여수의 한 요트업체에서 현장실습 중 사망한 고 (故) 홍정운(18)군 사건과 관련, 해경이 해당업체를 상대로 집중적인 수사를 펼치고 있다. 미숙한 현장실습생을 어떤 이유로 위험한 작업에 투입했는지를 밝히기 위해서다. 교육계와 노동계는 현장실습생을 ‘저임금 단기 노동자’로 바라보는 일부 업주의 부도덕한 시각을 비극의 이유로 꼽고 있다.

해경 "납 벨트 풀기 힘들어 가라 앉았을 것”

수영도 못하는데…고3 현장실습생의 잠수작업

지난 8일 오전 전남 여수시 웅천 친수공원 요트 정박장에서 현장실습 도중 잠수를 하다 숨진 특성화고교 3학년 홍정운 군의 친구들이 국화를 사고 현장에 헌화한 뒤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일 오전 전남 여수시 웅천 친수공원 요트 정박장에서 현장실습 도중 잠수를 하다 숨진 특성화고교 3학년 홍정운 군의 친구들이 국화를 사고 현장에 헌화한 뒤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여수해경에 따르면 해경은 홍 군이 현장실습생으로 근무했던 업체의 대표 A씨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홍 군은 지난 6일 여수 웅천 요트장에서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를 제거하는 잠수작업에 투입됐다가 숨졌다. 해경은 홍 군이 잠수 자격증도 없는 상황에서 업체 대표의 지시를 받아 산소통과 납 벨트 등을 착용하고 잠수 작업에 투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불법적인 요소도 속속 포착되고 있다. 현장실습생을 받는 업체들은 학생·학교장과 ‘현장실습표준협약서’를 작성하는 데 여기에서 잠수작업은 위험한 작업으로 규정돼 있다. 현장실습생은 잠수 작업을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또 수중작업 시 지켜야 할 2인 1조 근무도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경 “납 벨트 풀기 어려웠을 것”

해경은 지난 8일 홍 군이 사망했던 당시를 재확인하는 현장검증을 했었다. 혼자 잠수작업을 하던 홍 군이 사망한 결정적인 이유는 12㎏짜리 납 벨트 때문으로 해경은 보고 있다.

홍 군은 사망 당시 잠수작업을 하다가 산소통 등 장비를 재정비하기 위해 수면 위로 올라왔고, 장비를 벗어 뭍으로 옮기려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과정에서 홍 군은 부력이 있는 산소통을 먼저 벗었다. 물속에 가라앉기 위해 무게를 늘리는 용도로 사용하는 납 벨트는 마지막까지 차고 있었는데, 이게 문제였다. 잠수 작업이 생소한 홍 군에게는 납 벨트를 벗는 것이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경이 현장검증에 투입한 잠수부가 홍 군이 했던대로 납 벨트만 남기고 장비를 해체하자 그대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해경 관계자는 “현장검증을 진행한 결과 홍 군이 스스로 납 벨트를 벗기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미숙한 학생 투입한 업체 대표 왜?

지난 8일 오전 전남 여수시 웅천 친수공원 요트 정박장에서 현장실습 도중 잠수를 하다 숨진 특성화고교 3학년 홍정운 군의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일 오전 전남 여수시 웅천 친수공원 요트 정박장에서 현장실습 도중 잠수를 하다 숨진 특성화고교 3학년 홍정운 군의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해경은 현장실습 업체 대표의 진술과 사고 현장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 유족 등의 진술을 보완해 사인을 규명하는 중이다. 여기에 교육부도 전남도교육청 등과 함께 사망사고 공동조사단을 구성해 사고원인 규명에 나선 상태다.

여수해경 관계자는 “업체 대표 등에 대한 조사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상황”이라며 “이번 주 중에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등을 입증해 피의자로 입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실습생=저임금 노동력 인식이 문제”

교육계와 노동계에서는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현장실습생 제도의 근본적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현장실습생을 '저임금 노동력'으로 바라보는 왜곡된 행태가 문제라고 지적하면서다.

민주노총과 전교조, 전국특성화고노조 전남지부(준) 등으로 구성된 '홍정운 군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는 “기업 현장교사도 없이 현장실습 표준협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잠수 작업 지시를 받았고, 안전조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홍 군이) 사망에 이르게 됐다"고 비판했다.

이어 “홍정운 학생의 희생을 계기로 학교 단위에서부터 철저한 현장실습 운영 절차 준수와 노동권·안전이 보장되는 기업과 연결, 참여기업 및 선도기업에 대한 철저한 지도 점검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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