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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주안 논설위원이 간다

“벌은 편 갈라 싸우거나 자기 꿀만 숨겨두지 않아서 좋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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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강주안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정신장애를 가진 양봉 훈련생들이 경기도 화성에 있는 자연과함께하는농장에서 임준하 상임이사의 지도를 받으며 꿀벌의 겨울나기를 준비하고 있다. 경기 화성=강주안 기자

정신장애를 가진 양봉 훈련생들이 경기도 화성에 있는 자연과함께하는농장에서 임준하 상임이사의 지도를 받으며 꿀벌의 겨울나기를 준비하고 있다. 경기 화성=강주안 기자

코로나로 벼랑 끝에 선 정신장애인의 '특별한 양봉'

사람에게 받은 상처 치유하는 꿀벌
처음엔 벌침에 쏘여 울면서 달아나

지난 6일 오전 10시 경기도 수원의 마음샘정신재활센터(센터장 장명찬)에 조현병 환자들이 모였다. 경기도 화성의 양봉장에 일하러 가기 위해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극한 상황에 몰린 정신장애인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마련한 활동이다. 경차 두대에 나눠타고 40분 정도 이동하면서 김정남 총괄팀장 등에게 지난 3월 환자 5명이 꿀벌을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를 들었다. 벌에 쏘여 울고, 달려드는 벌에 소리 지르며 도망가는 장면이 수시로 벌어졌다고 한다.

 보호의를 입는데도 벌에 쏘이냐고 묻자 "벌은 틈을 파고드는 습성이 있어 보호의 틈새를 꽉 조이지 않으면 기어들어 온다"고 설명한다.

정신장애를 가진 양봉 훈련생들이 경기도 화성에 있는 자연과함께하는농장에서 작업을 준비하는 가운데 마음샘 관계자들이 진행 계획을 상의하고 있다. 경기 화성=강주안 기자

정신장애를 가진 양봉 훈련생들이 경기도 화성에 있는 자연과함께하는농장에서 작업을 준비하는 가운데 마음샘 관계자들이 진행 계획을 상의하고 있다. 경기 화성=강주안 기자

구불구불한 흙길을 한참 지나자 양봉장이 나타났다. 식판을 받아 함께 점심을 먹고 100m쯤 떨어진 벌통으로 향했다. 보호의를 입기 시작했다. 공간이 안 생기도록 꽉 조였지만 조금 움직이니 틈이 벌어진다. 임준하 자연과함께하는농장 상임이사의 인솔로 작업이 시작됐다. 네 명의 참가자가 한 명씩 벌통 뚜껑을 열고 은박지 덮개를 벗기자 벌들이 앵앵거리며 날아오른다. 벌집 상태를 확인하려 들어 올리니 벌이 가득하다. 어지럽게 날아드는 벌에 소름이 돋았다. 형광물질로 표시해둔 여왕벌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활동 초기 울며 달아났다던 참가자들이 여유 있는 표정으로 벌을 다룬다.

이 장면을 찍고 있는데 벌이 옷 속으로 기어가는 촉감이 느껴졌다. 모두가 일에 열중하고 있어 소리를 지를 수도, 달아날 수도 없었다. 꾹 참고 촬영을 이어가는데 더 많은 벌이 몸 위를 다니는 느낌이 엄습했다. 망상이었다. 공포가 감각을 조종하는 체험을 했다. 양봉에 참여한 조현병 환자들은 일상에서 이런 망상과 환청에 시달리는 것이 주 증상이다. 그들과 대화하고 사회복지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한 사람씩 사연을 알게 됐다.

1. 기부 증세에 시달리는 C씨

그는 명문대 출신이다. 재활센터에서 영어 번역을 요청하곤 한다. 가장 심각한 증세는 기부다. 그는 자기가 가진 것을 남에게 준다. 이게 무슨 병이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카드빚을 내고 휴대전화를 동원해 계속 기부한다. 신용 불량 위기까지 몰렸다.

재활센터에서 역점을 두는 치유 활동은 기부 줄이기다. 박명옥 사무국장 등은 "최근 월 3만원까지 기부액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시 기부액이 늘어 비상이 걸린다. 시민의 기부를 요청하는 복지 기관이 C씨의 기부를 막기 위해 애쓴다는 사실이 아이로니컬했다. C씨는 "벌은 정직해서 자기 꿀만 감춰두는 일이 없다"며 "자신이 죽을지언정 다른 벌에게 떠넘기지 않는 모습에서 많은 걸 배운다"고 말했다.

2. 배려로 손해 보는 D씨

D씨는 여동생과 함께 학창시절을 일본에서 보냈다. 거기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다고 재활센터 사람들은 분석한다. 여동생 역시 재활센터를 다닌다. 국제학교 출신인 D씨는 영어 실력이 뛰어나다. 학원에서 초등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는 장애인 취업박람회에서 제안을 받을 때마다 "다른 사람부터 기회를 주라"고 양보한다. 이 배려가 일자리를 멀어지게 한다. 그는 이날 양봉장에 가지 못했다. 평소 타던 승합차 정비로 경차를 타야 하자 포기했다. 폐소공포증이 심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승합차에도 겁을 냈지만, 많이 극복했다. 그래도 아직 경차는 무리였다. 그는 "함께 일하니 사회성이 회복되고 같이 지혜로 극복하는 게 즐겁다"고 말했다.

3. 성적이 월등했던 E씨

여고 시절 성적이 전교 5등 이내였다. "자신과 부모의 너무 큰 기대가 자신을 힘들게 한 듯하다"는 평이 나온다. E씨는 휴대전화 공장을 다녔다. 성실하고 심성이 착해 오래 다닐 법하지만, 곧 그만뒀다. 회사에서 자꾸 존다는 지적이 나왔다고 한다. 양봉장에서도 그런 장면을 목격했다. 벌통 내검 작업을 한 시간 반 정도 진행한 뒤 잠시 쉬는데 담소하는 다른 참가자와 달리 그는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자는 모습이었다. 센터 관계자는 "자는 게 아니라 환청과 싸우는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일에 집중할 땐 괜찮지만, 여유가 생기면 환청이 찾아와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라고 한다. E씨는 "처음엔 벌이 무서웠지만 익숙해지며 자신감이 생겼고 사람들과 얘기하는 게 즐겁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여왕벌 관련 작업에 특출한 소질이 있다고 인정받는다.

정신장애를 가진 양봉 훈련생들이 경기도 화성에 있는 자연과함께하는농장에서 임준하 상임이사와 호흡을 맞추면서 꿀벌의 겨울나기를 준비하고 있다. 경기 화성=강주안 기자

정신장애를 가진 양봉 훈련생들이 경기도 화성에 있는 자연과함께하는농장에서 임준하 상임이사와 호흡을 맞추면서 꿀벌의 겨울나기를 준비하고 있다. 경기 화성=강주안 기자

4. 사고로 머리 다친 F씨

초등학교 때 자전거를 타다 자동차에 받혔다. 몸이 붕 떠 날아가 머리를 다쳤다. 가정에 어려움이 닥쳤다. 부모가 헤어지면서 그는 아버지와 살게 됐다.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큰 그는 말이 너무 빨라 의사소통도 쉽지 않았다. 양봉에 가장 큰 공포감을 보였던 참가자다. 빠르게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F씨는 "처음엔 벌에 쏘여 아주 아팠고 너무 무서웠는데 이젠 겁이 안 난다"며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게 즐겁다"고 말했다. 훈련 기간 중 매달 50만원 정도 지급되는 활동비도 요긴하다. F씨 부친은 "아들이 발병한 이후 처음으로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며 “고혈압약을 먹었는지 식사를 했는지 등을 물어줬다”고 말했다.

5. 양봉에 소질 보인 G씨

그는 식당과 병원에서 일했지만 오래 버티기 어려웠다. 양봉을 시작하며 소질을 인정받았다. 벌을 대하는 태도가 의연하고 다른 사람과의 협업도 잘 끌어낸다. G씨는 “서로 싸우거나 경쟁하는 게 아니라 여왕벌과 수벌 등이 각자의 역할에 맡게 행동한다”며 "체계를 갖추고 규칙에 따라 활동하는 게 재미있다"고 말했다. 임 상임이사는 "직업 양봉가에 근접한 실력을 보일 정도"라고 평가했다. 임 상임이사는 훈련생 다섯명에 대해 "남을 미워할 줄 모르는 심성이어서 벌에 대한 애착이나 사랑이 일반인보다 훨씬 강하다"며 "특히 단기 집중력이 뛰어나 양봉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정신장애를 가진 훈련생들이 경기도 화성에 있는 자연과함께하는농장에서 양봉 기술을 익히는 것을 지도하는 임준하 상임이사. 경기 화성=강주안 기자

정신장애를 가진 훈련생들이 경기도 화성에 있는 자연과함께하는농장에서 양봉 기술을 익히는 것을 지도하는 임준하 상임이사. 경기 화성=강주안 기자

조현병 환자들 함께 도우며 극복해
전문가 "일이 정신장애 최고의 치료

조현병 환자는 대개 끔찍한 사고로 언론에 등장한다. 경남 진주에서 이웃들을 살해한 안인득씨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런 사례는 극소수며 다수의 조현병 환자는 다른 사람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증세가 경미하다. 서울대 출신 등 똑똑한 사람도 많고 비장애인보다 마음이 선한 사례가 흔하다. 20세 전후로 많이 발병한다. 정신과 의사 사이에선 "대략 200명 중 한 명꼴로 조현병이 나타나며 누구든 친척과 친구 중 한두 명은 조현병이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가장 흔한 증상은 망상과 환청이다. 간혹 일어나는 조현병 환자의 ‘묻지마 살인’은 "저 사람이 널 죽일 거야. 그러니 네가 먼저 공격해야 해" 같은 환청이 유발한다. 나체로 길거리를 다니는 사람 역시 조현병인 경우가 많다. 대다수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양봉에 참여한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되고 따돌림을 당했다. 고립된 삶은 그들이 일상을 회복하는 데 장애가 됐다.

코로나19 사태는 장애인에게 더 큰 시련을 안긴다. 실직을 경험한 권삼주(58)씨는 "가족에도 미안하고 가까운 사람 경조사에도 못 갔다"며 "일반 실직자는 등산을 간다지만 나는 다리가 불편해 그럴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비장애인에게도 버거운 시기다. 더불어민주당 서동용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공황장애ㆍ우울증 치료를 받은 20대가 급증했다.

시련의 극단에 정신장애인이 있다. 김현종 한국장애인고용공단 홍보협력실장은 “정신장애인에게 일은 치료와 재활에 있어 핵심”이라며 “그러나 사회적 편견 때문에 구인 자체가 드물고 직업 훈련을 받을 기회도 적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나온 시도가 양봉 훈련이다. 3년 전 시작한 활동은 코로나 사태가 닥치며 진가가 나타났다. 작은 음악회나 볼링 활동 등 정신장애인을 돕는 대부분 행사가 중단됐지만, 자연에서 진행하는 양봉은 지속했다.

장명찬 한국정신재활시설협회 회장(마음샘정신재활센터장).

장명찬 한국정신재활시설협회 회장(마음샘정신재활센터장).

 장명찬 마음샘정신재활센터장은 "새로운 분야이다 보니 처음엔 가족들이 걱정했지만 변화를 보면서 상당히 만족해한다"고 설명한다. 8개월 활동을 마친 사람들은 눈에 띄게 호전됐다. 양봉 과정을 이수한 뒤 카페나 병원에 취업해 최저임금을 보장받으며 일하고 있다.

이남영 동국대 일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규칙적으로 출퇴근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 정신장애인 치유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다만 증세가 좋아졌다고 약을 끊으면 안 된다”면서 “조현병 환자는 당뇨와 마찬가지로 약을 계속 먹으며 관리하면 괜찮지만, 치료를 중단하면 위험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희철 강남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코로나로 인해 취업의 기회가 많이 줄어들고 집에만 머물면서 대인관계가 단절되는 게 정신장애인의 큰 어려움”이라며 “일을 통해서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있고 소속감도 느끼는 게 사회로 복귀하는 준비 중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들에 대한 사회의 관심과 적절한 정책이 절실하다는 의미다.

강주안 논설위원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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