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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도세법 표류…시장에 ‘12억 아파트’ 실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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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1주택자가 집을 팔 때 비과세 기준인 9억원을 12억원으로 올리는 양도세 개정안의 국회 통과에 속도가 붙을지 관심이다. 11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서 바라본 아파트. [뉴스1]

1주택자가 집을 팔 때 비과세 기준인 9억원을 12억원으로 올리는 양도세 개정안의 국회 통과에 속도가 붙을지 관심이다. 11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서 바라본 아파트. [뉴스1]

#이모(39)씨는 자녀 초등학교 진학에 맞춰 경기 수원 아파트를 팔고 이사하려 했지만, 집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씨의 집값이 최근 몇 년 사이 오르면서 1주택자 양도소득세 비과세 기준인 9억원을 넘겨서다. 그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양도세 비과세 기준을 12억원으로 상향하는 법안을 발의하면서 통과되기만 기다리고 있다”며 “실거주 아파트였는데 지금 기준으로는 양도세가 2000만원 이상 나온다. 이사 갈 다른 집도 다 오른 상황에서 파는 게 부담”이라고 말했다.

이씨에 따르면 12억원 내외인 이씨 아파트 단지의 매물은 급감했다. 자신이 부담해야 할 양도세를 반영해 최고가 대비 호가를 높여 내놓은 매물만 쌓여 있다.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여당 의원 14명은 지난 8월 2일 소득세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1주택자가 집을 팔 때 비과세 기준인 9억원을 12억원으로 올리는 내용이 포함됐다.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을 줄이면서도 양도세 비과세 하한선을 현실화하는 취지에서다. 법안이 시행되면 1주택자가 9억~12억원의 주택을 팔 때 세금이 크게 줄어든다.

여당은 개정안을 발의하기 전 두 차례 의원총회를 열고 지난 6월 18일 당론으로까지 확정했다. 하지만 이 소득세법 개정안은 발의 이후 본회의에도 올라가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과세 기준선을 상향하는 내용의 종합부동산세 개정안이 지난 7월 발의돼 8월 통과한 것과 대비된다.

법안 통과가 지연되면서 매물 잠김 현상을 심화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인 아실에 따르면 지난 1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물은 3만9639건으로, 4만 건에 못 미쳤다. 9월엔 3만9467건, 8월엔 4만155건 등으로 6월(4만5233건) 이후 급감하는 추세다.

매물이 줄자 서울 아파트 가격은 치솟았다. KB국민은행의 주택가격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11억9978억원으로 12억원에 근접했다. 지난 4월(11억1123만원) 11억원을 처음 넘어선 이후 5개월 만에 12억원 돌파를 앞두게 됐다.

줄어드는 서울 아파트 매물.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줄어드는 서울 아파트 매물.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비과세 기준이 현행 9억원으로 설정된 건 지난 2008년이다. 이후 14년째 바뀌지 않고 있다. 정영호 국회사무처 전문위원은 ‘소득세법 개정안 검토보고서’에서 “현행 기준이 시행된 2008년 말 대비 전국 주택 평균매매가격은 87%, 아파트는 104% 상승했고 서울은 각각 86%, 121%가 상승했다”며 “개정안이 1세대 1주택자의 주택 거래비용을 낮춤으로써 주택 시장 매물 잠김 현상을 해소하는 데 기여할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당초 양도세 기준 상향에 신중론을 펴던 기획재정부도 입장을 선회한 모양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6일 기재부 국정감사에서 “양도세 기준 상향을 국회와 논의하겠다”고 했다. 기재부는 다음 달 열리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에서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기재부는 기준 상향의 긍·부정 효과가 모두 있다고 본다.

기재부 관계자는 “그간 물가나 주택 가격 상승률 고려할 때 실소유 1주택자의 비용 경감이라는 취지는 이해된다”며 “다만 부동산 가격 상승을 야기할 우려도 있어 명확한 찬성도 반대도 아닌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장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다각도로 검토해 보고하고, 최종적으로는 국회 논의 결과에 따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도세 비과세 기준 상향이 상대적으로 부유층인 9억 초과 아파트 매도인에 대한 감세라는 비판도 있어 이 문제는 여당의 정치적 방향성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익명을 요구한 여당 관계자는 “그간 대선 후보 경선 때문에 미뤄졌지만, 이제 본격적인 논의가 가능할 것 같다”며 “부동산 세제 완화를 반대하는 당내 강경파의 의견과 여론 및 지지율 변화 등이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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