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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 층이 뚫린 전시장, 나선형 계단…뻔한 공간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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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스위스 출신의 듀오 건축가 헤르조그 앤 드 뫼롱(HdM)이 설계한 서울 송은문화재단 신사옥. HdM의 한국 첫 프로젝트다. 지상 11층, 지하 5층 규모로 미니멀한 콘크리트 외벽 건물이다. 사진은 지하 2층 전시장 가운데 천장 부분이 지상 1층까지 거대한 우물처럼 뻥 뚫려 있다. 정지현 작가 촬영. [사진 송은문화재단]

스위스 출신의 듀오 건축가 헤르조그 앤 드 뫼롱(HdM)이 설계한 서울 송은문화재단 신사옥. HdM의 한국 첫 프로젝트다. 지상 11층, 지하 5층 규모로 미니멀한 콘크리트 외벽 건물이다. 사진은 지하 2층 전시장 가운데 천장 부분이 지상 1층까지 거대한 우물처럼 뻥 뚫려 있다. 정지현 작가 촬영. [사진 송은문화재단]

“서울 도산대로에서 좋은 건축 찾아볼 수 없었다. 영감을 얻기 어려웠다.”

3년 전 이렇게 한국 건축을 평가했던 세계적인 듀오 건축가 헤르조그 앤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이하 HdM)의 피에르 드 뫼롱(71)이 한국을 다시 찾았다. 드 뫼롱은 자크 헤르조그(71)와 함께 1978년 스위스 바젤에 건축설계사무소를 설립하고 세계 곳곳에 랜드마크가 된 건물을 설계했다. 2018년 자신들이 설계한 송은문화재단(이사장 유상덕) 신사옥 ‘ST송은 빌딩’ 기공식 참석차 헤르조그와 방한했던 그가 건물 개관(지난달 30일)에 맞춰 다시 왔다. 이곳에선 HdM과 함께 기획한 개관 1부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세계적 미술관인 런던 테이트모던, 도쿄 아오야마 프라다 빌딩,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 등이 그들의 작품. 2001년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ST송은 빌딩’은 이들의 첫 한국 프로젝트다.

밖에서 바라본 삼각형 입면. Iwan Baan 작가 촬영. [사진 송은문화재단]

밖에서 바라본 삼각형 입면. Iwan Baan 작가 촬영. [사진 송은문화재단]

대로변 날카로운 삼각형 모양의 콘크리트 건물은 지상 11층(57m), 지하 5층. 대지면적 1179㎡(약 357평)에 연면적 8151㎡(약 2466평) 규모다. 대로를 마주한 입면(파사드)엔 창문이라 부를 것이 두 개뿐이고, 그중 하나는 13m 길이 직육면체다.

‘뻔한’ 공간은 없다. 1층 외부의 작은 정원, 로비에서 2층으로 이어지는 넓은 나선형 계단, 지하 2층에서 지상 1층 천장까지 동굴처럼 뚫린 전시장 등이 그렇다. 건물에서 만난 드 뫼롱은 “서울에서 가장 상업적인 동네에서 문화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 자체가 도전이었다”며 “우리는 운이 좋았다. 이 자리에서 최적의 솔루션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헤르조그와 드 뫼롱(오른쪽) ⓒ Lucian Hunziker [사진 송은문화재단]

헤르조그와 드 뫼롱(오른쪽) ⓒ Lucian Hunziker [사진 송은문화재단]

설계의 해답은 어떻게 찾았나.
“답은 늘 건물이 지어질 지역의 문화를 공부하고 협업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세계에서 일하며 얻은 결론이다. 현지 사람들과 협력할수록 건축이 풍부해진다. 관광객이 아니라 거주하는 사람의 시선으로 도시를 보고 경험하려 한다. 이 건물은 4년 반 넘게 걸린 긴 여정의 결과다.”
테이트 모던 등 이전 프로젝트보다 규모가 작은데.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이곳은 작지만, 주변의 사무실 건물이나 상업빌딩과 다르게 응축된 에너지를 갖고 있다. 작은 공간이어도 그 어느 곳보다 더 집중된 에너지를 가질 수 있고 더 아름다울 수 있다.”
미술관은 작품만 보러 오는 곳이 아니라고 했다.
“미술관은 예술작품이 에너지를 뿜어내는 곳이고, 사람들은 이곳에서 고요한 시간을 누리며 작품과 에너지를 주고받는다. 이 교감이 방해받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건축물 자체가 너무 시끄러우면 안 된다.”

그는 “도시는 정신없이 돌아간다. 사람들이 바쁜 일상에서 한걸음 떨어져 예술을 바라보고 여유를 누리는 곳, 공원과 같은 곳이 되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지상 2층 전시장 측면. 네덜란드 사진작가 Iwan Baan 촬영. [사진 송은문화재단]

지상 2층 전시장 측면. 네덜란드 사진작가 Iwan Baan 촬영. [사진 송은문화재단]

드 뫼롱은 “예술은 시각, 촉각, 청각 등 온감각을 사용해 누리는 것”이라며 “건축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기능도 중요하지만, 건물 안에서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이 공간을 어떻게 보고 느끼고 누리냐도 중요하다. 건축은 기능(function)과 인지(perception), 표현(expression)이 동시에 충족돼야 편안하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전의 건축이다. 앞면은 폐쇄적으로 보이는데 뒷면엔 층층이 테라스다.
“파사드를 통해 도시 안에서 유니크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싶었다. 건물에서 일하는 이들을 위해 수족관처럼 밀폐된 공간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열린 공간으로 최대한 많은 것을 누리게 하고 싶었다.”
로비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동선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요즘 미술관을 설계할 때 디렉터한테 공통으로 요청받는 게 있다. 사람들이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그곳만의 ‘파운드 스페이스(the found space)를 만들어달라는 거다. 테이트 모던에서 터빈 홀, 이곳에선 2층으로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이 그런 곳이다.”
소나무 결의 형태를 살린 콘크리트 외벽이 눈에 띈다.
“피부에 문신한 것처럼, 벽면을 하나의 회화처럼 부각하고 싶었다. 소나무 결의 다양한 패턴으로 촉각적 감성을 더했다. 건물은 하나의 육중한 덩어리지만 그 부피와 대비되는 질감을 입고 도시 안에서 하나의 조각품이 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며 건물은 낡아지겠지만 그 아름다움이 더해지리라 기대한다.”

그는 “서울에는 짧은 시간에 지어진 건물들이 아주 많고 그것들이 그렇게 오래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면서 “우리는 이 건물이 서울의 랜드마크가 되어 여러 세대에 걸쳐 지속하는 건물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개관전 1부 전시는 11월 2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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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조그 & 드 뫼롱(HdM)

자크 헤르조그와 피에르 드 뫼롱이 함께 이끄는 건축설계 사무소. 건축 전문 인력 40명과 지원인력 400명 등이 일한다. 스위스 바젤에 본사가, 런던·뉴욕·홍콩·베를린에 지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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