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좌파 지식인들, 문 정부 잘못엔 침묵…야당 문제는 벌떼처럼 일어나 비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진보의 위선을 드러낸 조국 사태는 내 영혼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의로운 친구와 동지로만 알았던 이들의 추악한 민낯을 보는 것만큼 괴로운 일도 없다. 내게는 세계가 무너지는 충격이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최근 낸 『이것이 우리가 원했던 나라인가』의 서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부 당시 비판의 선봉에 섰던 진 전 교수는 현재 문재인 정부의 가장 비판적인 지식인으로 꼽힌다. 2019년 조국 사태를 계기로 칼끝의 방향을 거꾸로 잡게 됐다. ‘모두까기’라는 별칭이 말해주듯 같은 편이어도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던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사회에 미친 여파가 컸다. 진 전 교수 자신도 “패닉 상태까지 갔다”고 말할 정도로 그간 함께 걸어온 동료나 지지층과 결별도 쉽지만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가장 비판적인 지식인으로 꼽히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그의 신간 『이것이 우리가 원했던 나라인가』는 문 정부를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진보 진영에 대한 비판과 쓴소리를 주로 담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문재인 정부의 가장 비판적인 지식인으로 꼽히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그의 신간 『이것이 우리가 원했던 나라인가』는 문 정부를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진보 진영에 대한 비판과 쓴소리를 주로 담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것이 우리가 원했던 나라인가』는 그동안 언론에 기고했던 칼럼 등을 묶은 책이다. 상당수 내용이 문 정부를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진보 진영에 대한 비판과 쓴소리로 채워져 있다.

동지들의 추악한 민낯을 봤다고 했다.
“조국 사태 전까지만 해도 더불어민주당 세력이 상대적으로 진보이고, 사회적 약자 편에 선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586들이 기성세대가 되고 새로운 기득권층이 되면서 과거에 비판했던 대상과 똑같은 권력자가 되어 있더라. 비유하자면 나는 피터팬이 되어서 네버랜드를 구하기 위해 후크선장을 물리치고 있는 줄 알았는데, 후크 선장이 쓰러지고 보니까 웬디는 사모펀드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집에서 운동가요 들으며 펑펑 울고, 강연하다가도 울컥했다. 내가 그동안 살고 있던 세계가 무너지니 참 힘들더라.”
함께 싸우면서 그것을 몰랐나.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 하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시민단체의 부정을 접하게 됐을 때 ‘일부의 일탈이겠지’ 또는 ‘보수 언론에서 음해하는 것이겠지’ 정도로 여겼다. 그런데 조국 사태 때 그 모든 것이 모두 까뒤집어진 것이다. 옛날에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일부의 문제도 아니고 보수 언론의 음해도 아니고 타락하고 새로운 기득권이 된 민주화 운동권의 민낯이었다.”
『이것이 우리가 원했던 나라인가』

『이것이 우리가 원했던 나라인가』

문 정부가 가장 잘못한 건 뭔가.
“민주당이 원래 갖고 있던 리버럴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김대중·노무현이 만든 정당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정당이 됐다. 당의 구성이나 커뮤니케이션, 의원 입법 활동을 보면 도저히 진보라고는 할 수 없고 도리어 전체주의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다만 이들을 과대평가할 것은 없는 게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쫓아내려고 했는데 징계가 잘 안 됐다. 조국이 아무리 장난을 쳐도 2심 재판은 정경심 교수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언론중재법 시도도 실패했다. 이런 것은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그래도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거 보수 정부와 비교해 지식인들이 침묵한다는 비판도 있다.
“한국 학계에서 ‘좌파’라고 하는 인사들이 과연 학문적 업적이 있었나. 이 사람들이 전공 분야에서 실력이 없으니까 이상한 쪽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다가 정치권과 유착이 되고, 프로젝트를 따고 정부의 온갖 위원회에 들어가 자문을 해주고 있다. 지금 문 정부나 민주당이 명백히 잘못하는 것들에 대해선 침묵하고 국민의힘 진영에서 잘못하면 200명씩 나와 성명을 발표한다. 윤석열 부인 김건희씨의 논문 표절 문제를 봐라. 그게 교수들이 집단 성명을 낼 일인가. 절차에 맞춰 논문 표절 심사를 진행하면 된다. 그럼 이재명 지사의 논문 표절은 왜 성명을 안 내나?”

진 전 교수는 이 부분에 관해 설명을 이어갔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는 교수들의 성명 발표는 의미가 컸다. 4·19나 5공 시절엔 ‘우리 학생들 죽이지 말라’며 앞에 나서고 끌려갈 각오를 하고 용기를 낸 거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지 않나. 작은 이슈에 대해서 어떻게 하면 저쪽에 타격을 줄까, 그런 생각만 하고 있다. 정말 교수들이 성명을 내겠다면 비정규직 처우 문제나 난민 혐오 등에 대해서 ‘그러면 안 됩니다’라고 성명을 내야 하지 않을까. 보편적 인권은 외면하고 자기들이 모시는 소수의 정치인을 위해 성명을 낸다. 나를 자괴감에 빠지게 하는 건 보수다. 보수가 진보 세력에게 진짜 타격을 입히고 싶으면 ‘진보, 너희들은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해 한 게 뭐냐’ 할 수 있어야 한다.”

윤석열 지지자라는 공격도 있다.
“지지를 표명한 적이 없다. 그리고 내 의견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은 다 만난다. 안철수·원희룡·유승민·홍준표 다 만났다. 민주당도 와 달라고 하면 가는데 그들이 안 부르는 거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