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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결과 직후 중환자실행…체코 대통령 '정치 꼼수' 의혹도

중앙일보

입력

밀로시 제만(77) 체코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중환자실에 입원하면서 정치적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미국 CNN 방송과 영국 가디언 등은 이날 제만 대통령이 프라하 외곽에 있는 대통령 별장에서 중앙군사병원으로 이송된 뒤 중환자실로 옮겨졌다고 보도했다.

밀로스 제만 체코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프라하의 중앙군사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몸에 힘이 빠져 떨군 그의 고개를 경호원이 옆에서 받쳐주고 있다. [EPA=연합뉴스]

밀로스 제만 체코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프라하의 중앙군사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몸에 힘이 빠져 떨군 그의 고개를 경호원이 옆에서 받쳐주고 있다. [EPA=연합뉴스]

외신 사진을 보면 그는 경찰 호위를 받으며 구급차로 옮겨졌다. 이송 침대에 등을 기댄 채 축 늘어진 모습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다. 옆에서 경호원과 부인, 딸 등이 그의 고개를 받쳐주는 모습도 포착됐다. 대통령 담당 의사 미로슬라프 자보랄은 브리핑에서 “제만 대통령이 만성질환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입원했다”며 “예후를 단정 지을 수 없다”라고 밝혔다.

술과 담배를 좋아하기로 유명한 제만 대통령은 몇 년 전부터 당뇨 등 여러 질병을 동시에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에는 8일간 병원 신세를 졌다. 그는 퇴원 후에도 거동이 힘든 듯 휠체어를 이용했고, 탈진과 탈수를 겪었다고 대통령 측은 밝혔다.

외신이 주목하는 건 대통령의 입원 시점이 하원의원 총선 결과 직후라는 점이다. 차기 총리 지명권을 쥔 대통령의 입원으로 새 연립내각 구성이 기약 없이 미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체코 제만 대통령이 지난 5월 프라하의 프라하성에서 열린 코로나19 희생자 추모식에 휠체어를 타고 참석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체코 제만 대통령이 지난 5월 프라하의 프라하성에서 열린 코로나19 희생자 추모식에 휠체어를 타고 참석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체코는 지난 8~9일 하원 의원 선거를 치렀다. 이번 선거에서 안드레이 바비시 총리가 이끄는 긍정당(ANO2011)은 득표율 27.12%로, 27.79%를 얻은 야당 연합 ‘함께’(Spolu)에 근소한 차이로 패했다.

긍정당은 전체 의석수 200석 중 72석으로 Spolu보다 1석 많다. 하지만 그동안 긍정당과 정부를 함께 운영해온 중도좌파 성향의 사회민주당(CSSD), 공산당의 의석수가 한참 못 미친다.

반면 Spolu는 총선 직후 바비시 총리 반대 진영인 자유주의 좌파정당 해적당·스탄 연합과 손을 잡으며 과반 이상인 108석을 확보했다고 CNN은 전했다. 이에 따라 바비시 총리는 집권 3년 만에 물러나게 됐다.

9일 체코 하원의원 총선 후 당 선거본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안드레이 바비쉬 체코 총리 겸 긍정당 대표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9일 체코 하원의원 총선 후 당 선거본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안드레이 바비쉬 체코 총리 겸 긍정당 대표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체코의 트럼프’로 불리는 바비시 총리는 선거 전부터 위태로웠다. 연금지급 확대와 인프라 정비 등을 공약으로 내세워 ‘포퓰리즘’ 총리로 불린 그는 지난 3일 공개된 ‘판도라 페이퍼스’에 이름을 올리며 유권자의 반감을 샀다.  2200만 달러(약 263억 원) 및 부동산 자산 등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의혹이었다. 바비시 총리는 즉각 “불법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입장을 밝혔지만,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제만 대통령은 벼랑 끝에 몰린 바비시 총리를 구할 유일한 사람이었다. 영국 가디언은 “차기 총리 임명권자인 제만 대통령은 바비시 총리의 강력한 후원자이자 잠재적 구원자였다”고 소개했다.

2018년 3월 제만 체코 대통령의 취임식. [로이터=연합뉴스]

2018년 3월 제만 체코 대통령의 취임식. [로이터=연합뉴스]

이런 상황에 제만 대통령의 병원 입원은 체코의 정치적 미래가 불확실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프라하에 위치한 뉴욕대학교 정치학 교수 지 피흐는 “대통령 측이 이런 위기 상황을 준비하지 않은 건 직무유기”라고 지적하며 “체코가 정치적 위기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바비시 총리와 관련해선 “그는 제만 대통령에게 의지하고 싶겠지만, 당분간 또는 영원히 그를 도와주지 못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일각에선 제만 대통령이 병원으로 이송되기 불과 몇 분 전 바비시 총리를 면담했다는 점을 주목한다. 대통령 유고 시에는 하원이 총리를 지명할 수 있다는 체코 헌법을 언급하면서다. 또 의회에서 제만 대통령의 자격 미달을 선포하고, 그의 권한을 일시적으로 총리와 하원의장에게 넘기는 헌법 조항을 발동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왔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이런 움직임에 지 피흐 교수는 “최악의 경우 이런 요구가 실제로 받아들여진다면 '헌정 위기'에 놓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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