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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지막 단일 백화점…27년 '이수역 명물' 태평百도 닫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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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오전 10시 30분 무렵 서울 동작구 태평백화점 앞에 손님들이 긴 줄을 서 있다. 이병준 기자

지난 7일 오전 10시 30분 무렵 서울 동작구 태평백화점 앞에 손님들이 긴 줄을 서 있다. 이병준 기자

지난 7일 오전 10시 30분쯤 서울 동작구 사당동 태평백화점. 오픈을 앞두고 백화점 앞에는 손님들로 긴 줄이 만들어졌다. 백화점 정문 앞부터 건물 모퉁이를 돌아 백화점 후문에 이르기까지 수십 명이 한 줄로 백화점 개장을 기다렸다.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목도 차량의 행렬로 가득 찼다. 오픈 시간이 돼 문이 열렸지만 계속 늘어나는 줄로 일대는 한동안 붐볐다.

태평백화점이 모처럼 ‘호황’을 맞은 건 폐점을 앞두고 연 ‘최대 90% 할인’ 고별전 때문이다. 백화점 매장은 “창고에 남은 물건 몽땅 드립니다” “마지막입니다” 등 직원들의 외침 소리로 채워졌다. 손님들은 그사이 가방이나 옷, 신발 등이 놓인 할인 매대를 부산히 뒤졌다. 손님 대다수는 50대 이상으로 보였지만 간간이 젊은이들도 눈에 띄었다.

이날 태평백화점 2층 여성의류 매장 할인 매대에서 손님들이 살 물건을 고르고 있다. 이병준 기자

이날 태평백화점 2층 여성의류 매장 할인 매대에서 손님들이 살 물건을 고르고 있다. 이병준 기자

인근 주민과 상인들은 폐점 소식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태평백화점 앞에서 20여년간 구멍가게를 했다는 김모(65)씨는 “나한테는 집보다도 익숙한 곳이었다. 직원들도 계속 담배며 음료수를 사러 와 친했는데, 없어지면 아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태평백화점은 아주 상품(上品)도 아니고 하품(下品)도 아닌 ‘중품’을 취급하는, 서민을 위한 백화점이었다. 돈 있는 사람들은 롯데나 신세계 백화점을 가겠지만, 이 근방 주민들은 웬만하면 여기를 이용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백화점을 찾은 인근 주민 염시덕(54)씨는 “10여년간 옷이며 이것저것을 사러 계속 왔는데, 없어진다고 하니 좀 서운하다”고 했다.

폐점은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도 있었다. 태평백화점 인근에서 음식점을 하는 김모(59)씨는 “(폐점이) 서운하긴 하지만 태평백화점이 시설 관리를 하고, 고객 서비스에 투자만 더 했어도 (상권이) 더 나아졌을 것”이라며 “(근처에) 신세계백화점, 롯데백화점, 홈플러스가 속속 들어오니 타격을 입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당동의 한 공인중개사사무소 구모(65) 소장은 “(태평백화점이) 사라지는 건 시대의 흐름”이라며 “태평백화점은 오전 10시 반부터 오후 8시까지 영업하다 보니 (그 안에) 영업시간이 더 긴 업종이 들어올 수가 없었는데, 새 건물이 들어오면 지역 상권이 더 활성화될 것”이라고 기대를 표했다.

태평백화점 전경. 이병준 기자

태평백화점 전경. 이병준 기자

서울 마지막 민간 단일 점포 백화점 

서울 시내 마지막 민간 단일 점포 백화점인 태평백화점은 오는 31일까지만 영업을 하고 문을 닫는다. 1992년 ‘태평데파트’로 개업한 이래 27년만의 일이다. 폐점 이유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영업 부진이다.

금융감독원에 공시된 내용에 따르면 태평백화점을 운영하는 경유산업의 지난해 매출은 66억7866만원으로 전년보다 35.7%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5억4601만원에서 3억292만원으로 80.4% 곤두박질쳤다. 적자만 면한 수준이다. 코로나19로 온라인 소비 및 명품 소비가 떠오른 가운데, 중저가 상품으로 대면 영업을 고집하던 태평백화점이 치명타를 입은 것이다.

대형 유통기업 백화점과 마트에 밀려 

가격이나 접근성을 제외하면 대형 유통기업 백화점이나 마트와 비교했을 때 별다른 강점이 없다는 것도 작용했다. 2000년 무렵 태평백화점 서쪽에는 롯데백화점 관악점이, 동쪽에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이 세워졌고 이후 이수역과 사당역 부근에도 각각 이마트 이수점과 홈플러스 서울 남현점이 들어왔다. 실제로 최근 5년간 경유산업의 연 매출은 꾸준히 감소해왔다.

5일 서울 동작구 태평백화점을 찾은 시민들이 백화점 영업 중단을 앞두고 할인 판매되는 제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5일 서울 동작구 태평백화점을 찾은 시민들이 백화점 영업 중단을 앞두고 할인 판매되는 제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백화점업계에선 태평백화점 폐점을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평가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태평백화점은 압구정 한양쇼핑타운(현 압구정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이나 영동백화점(1998년 폐점)과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형태의 백화점”이라며 “이 같은 백화점 대부분은 시장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대형화에 실패해 중소 지역 백화점으로 남거나 2000년대 들어 문을 닫았다”고 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태평백화점은 사전 의미 그대로 ‘여러 가지 물건을 파는 점포’의 성격이 강하다”며 “이름만 ‘백화점’인 판매점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경유산업은 태평백화점이 있는 자리에 지하 6층, 지상 23층 규모의 주상복합건물을 올릴 계획이다. 지하에는 마트가 입점하고 저층부에는 상점·은행·사무실 등이, 고층부에는 오피스텔이 들어선다.

태평백화점이 문을 닫으면서 서울 시내의 마지막 단일 점포 백화점은 서울시 양천구 행복한백화점이 됐다. 행복한백화점은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공공기관인 중소기업유통센터에서 운영하는 백화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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