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전용

[오밥뉴스]아이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삶이 고통이라는 걸『곰 인형 오토』

중앙일보

입력 2021.10.11 06:00

코로나 시대, 아이들의 문해력 저하가 사회 이슈로 등장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문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책 읽기와 책 읽어주기만큼 중요한 게 없다고 입을 모읍니다. 그렇다면 어떤 책을 읽어주고, 권해야 할까요? 그 고민을 해결해드리고자 헬로! 페어런츠(hello! Parents)'가 그림책·동화책 리뷰를 시작합니다. 헬로!페어런츠(www.joongang.co.kr/parenting)를 구독하고 기사 알림을 받아보세요.

· 한 줄 평 : 삶은 그리 호락호락한 게 아니지만, 그래도 살만해!

·함께 읽어보면 좋을 토미 웅거러의 다른 책
  『세 강도』 우리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게 정말 나쁠까?
  『못말리는 음악가 트레몰로』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포기하지 말자!

· 추천 연령 : 그렇게 짧지 않는 서사를 이해할 수 있는 7~9세
(※그림책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추천 연령은 서사의 구조나 주제 등을 고려하여 제안하는 참고 사항일 뿐 권장 사항이 아닙니다.)

어두운 배경 앞에 정자세로 선 곰 인형이 동그란 눈으로 정면을 응시한다. 화가 난 건지, 놀란 건지 표정이 굳어 있다. 가슴엔 찢긴 자국이, 한쪽 눈엔 보라색 얼룩이 선명하다. 전혀 귀엽지도, 사랑스럽지도 않은 이 곰 인형의 이름은 오토다.

오토의 일생을 다룬 이 책은 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전반부에서 오토는 다비드와 오스카 두 소년을 만나고 얼마 뒤 2차 세계대전을 겪는다. 유대인 다비드는 수용소에 끌려가고, 오토는 오스카와 지내다 폭격을 당한다. 그리고 이때 오스카와도 헤어지고 만다. 그 어떤 비극 속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폭격의 잔해 속에서 오토는 참전 미군인 찰리를 만나는데, 어쩌다 그를 총격으로부터 살려낸다(이때 가슴에 총상을 입는다). 그 덕에 훈장도 받은 오토는 군대의 마스코트가 된다.

찰리를 따라 미국에 오면서 이야기의 후반부가 시작된다. 고생 끝에 낙이 오면 좋으련만 삶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찰리의 딸과 산책을 나간 오토를 동네 장난꾸러기들이 낚아채 흠씬 두드려 패더니 쓰레기통에 던져버린다. 삶이 여기서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오토는 쓰레기통을 뒤져 삶을 이어가는 어떤 여성에 손에 이끌려 세상으로 다시 나온다. 그리고 골동품 가게에 팔려간다. 오토가 보통 곰 인형이 아니라는 걸 알아본 가게 주인은 말끔히 손질해 진열장에 내놓는다. 오토는 거기서 손님으로 찾아온 오스카를 만난다. 그리고 곧 다비드도 만나 셋이 함께 살게 된다.

오토의 삶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기는 2차 대전이 발발하기 전 다비드, 그리고 오스카와 함께 지내던 때다. 그리고 오토는 전쟁의 한 복판을 통과한 끝에 아름다운 시절을 함께 보낸 두 소년을 다시 만난다.

오토의 삶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기는 2차 대전이 발발하기 전 다비드, 그리고 오스카와 함께 지내던 때다. 그리고 오토는 전쟁의 한 복판을 통과한 끝에 아름다운 시절을 함께 보낸 두 소년을 다시 만난다.

오토의 삶이 웅변하듯 삶은 절대 아름답지만은 않다. 오히려 때때로 버텨 낼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다. 고통을 겪어야 하는 이유조차 없다. 하지만 도리가 없다. 감당하는 수밖에. 그리고 분명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아니, 말할 수 없다. 삶의 부조리함을 굳이 일찍부터 알아야 할까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게 맞는 걸까?

이 책을 쓴 토미 웅거러는 자신의 여러 작품을 통해 바로 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주인공에게 그런 삶을 마주하게 한다. 오토만이 아니다. 아빠와 단둘이 사는 제랄다라는 아이는 아침 식사로 아이를 잡아먹는 거인에게 잡혀가고(『제랄다와 거인』), 고아가 되어 심술 궂은 숙모네로 가던 티파니는 강도들에게 붙잡히고(『세 강도』), 파티를 좋아하는 달사람은 그렇게 만나고 싶어 하던 사람들에게 감금되고(『달 사람』), 음악이 마냥 좋은 무명의 음악가 트레몰로는 연주할 때마다 음표가 쏟아지는 저주에 걸리고 만다(『못 말리는 트레몰로』).

그렇다고 역경을 마주한 주인공이 삶에의 의지를 불태우는 것도 아니다. 미군 찰리가 바닥에 나뒹굴던 오토를 들어 올리던 순간 우연히 총탄이 날아와 오토의 가슴에 박혔고, 제랄다는 배고파하는 식인 거인에게 자주 하던 요리를 해주었을 뿐이고, 보물이 가득한 강도의 집에 간 티파니는 “이건 어디에 쓰는 거냐”고 해맑게 물었을 뿐이며, 저주 때문에 살던 집에서 쫓겨난 트레몰로는 깊은 산 속에 들어가 연주를 하다 우연히 음표가 맛있다는 걸 알아냈을 뿐이다. 그저 삶은 그렇게 흘러갔고, 주인공은 그 흐름에 몸을 맡겼을 뿐이다.

토미 웅거러의 그림책 주인공들은 늘 만만치 않은 삶에 직면한다. 하지만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상황을 대처해나간다. 그리고 어딘가에, 대체로 아름다운 어딘가에 도달한다. 삶은 고난도 주지만, 희망도 주는 법이다.

토미 웅거러의 그림책 주인공들은 늘 만만치 않은 삶에 직면한다. 하지만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상황을 대처해나간다. 그리고 어딘가에, 대체로 아름다운 어딘가에 도달한다. 삶은 고난도 주지만, 희망도 주는 법이다.

토미 웅거러에게 삶은 그런 것일지 모른다. 그의 고향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스트라스부르는 라인강을 사이에 두고 독일에 접해 독일이기도 했다, 프랑스이기도 했던 도시다. 그는 어린 시절 2차 세계대전을 겪는데, 당시 스트라스부르가 속한 알자스 주는 당시 독일에 편입됐다. 프랑스인인 그가 독일어로 책을 쓰는 이유다(그는 중학교까지 독일식 교육을 받았다).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그걸 그는 일찍이 경험했다.

그렇다고 삶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아니 그럴 수도 없다. 개인은 그저 흐름에, 순리(順理)에 기댄 채 할 수 있는 걸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결국 어딘가에 다다르게 된다. 오토가 다비드와 오스카를 다시 만난 것처럼, 제랄다가 거인의 식인 습관을 버리게 한 것처럼, 티파니가 처지가 비슷한 아이들과 세 강도가 사들인 성에 살게 된 것처럼, 트레몰로가 맛있는 음표를 팔아 음악가를 위한 전당을 짓게 된 것처럼 말이다.

인간과 역사, 그리고 삶의 쓰고 어두운 면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그답게 그림 역시 아름답게 꾸미지 않는다. 냉정하게 사실적인 그림체에 검고 어두운 무채색을 과감하게 쓴 그의 그림은 때론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삶이 살만한 것처럼 그의 그림 역시 몰입해 볼 만하다. 그리고 결코 가볍지 않는 이야기의 무게를 아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아이와 함께 읽어봄 직하다.

폭격을 당한 곰 인형 오토가 폐허 속에서 나딩구는 장면. 부서진 건물 더미 속에 삐죽 나온 손과 총을 맞고 괴로워하는 군인의 표정이 섬뜩하다. 부조리한 삶이 주는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내기 때문에 그의 그림책은 여느 동화책과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폭격을 당한 곰 인형 오토가 폐허 속에서 나딩구는 장면. 부서진 건물 더미 속에 삐죽 나온 손과 총을 맞고 괴로워하는 군인의 표정이 섬뜩하다. 부조리한 삶이 주는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내기 때문에 그의 그림책은 여느 동화책과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