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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관서 4년' 끝나나…포항 지진 이재민 집 "수리불가" 판정

중앙일보

입력

8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지진 피해 주민들을 위한 임시 대피소 모습. 텐트 221개동이 설치돼 있다. 김정석기자

8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지진 피해 주민들을 위한 임시 대피소 모습. 텐트 221개동이 설치돼 있다. 김정석기자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 2003년 4월 준공된 이 체육관은 운동 경기나 문화예술 공연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4년 가까이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다. 2017년 11월 15일 포항시에 규모 5.4 지진이 발생한 후 집을 잃은 이들의 임시대피소로 운영 중이다.

8일 오후 찾은 흥해실내체육관은 겉으로 보기엔 여느 실내체육관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내부로 들어가자 연분홍색 텐트 221개가 체육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일부 텐트에는 ‘갈라진 벽 사이로 물이 들어와 지하에 물이 가득’ ‘돈도 필요 없다 주택 원상 복구시켜라’ 등을 적은 종이도 눈에 띄었다.

지진 발생 직후만 해도 이 체육관은 이재민과 공무원, 취재진, 봉사자 등이 몰려 북적였다. 반면 지금은 주거 지원을 받은 이재민들 대부분이 떠나 한산한 분위기였다. 지원을 받지 못한 10가구 20여 명 정도만 남아 있다. 포항시는 공무원 1명을 체육관에 상주하게 하고 위생 작업이나 하루 3끼 식사를 제공 중이다.

8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지진 피해 주민들을 위한 임시 대피소 모습. 텐트 221개동이 설치돼 있다. 김정석기자

8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지진 피해 주민들을 위한 임시 대피소 모습. 텐트 221개동이 설치돼 있다. 김정석기자

이곳에 머무르고 있는 이재민들은 포항 지진 이후 자신의 집이 크게 부서졌는데도 전파(全破) 판정을 받지 못한 흥해읍 한미장관맨션 입주민들이다. 한미장관맨션은 지진 직후 상당수의 세대에서 벽이 갈라지거나 천장에서 물이 새는 등 피해가 났는데도 전파 판정을 받지 못했다. 주민들이 별도로 자체 정밀안전진단을 실시해 거주가 불가능하다는 조사 결과를 받아 제출하거나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등 반발했지만 기존 판정 결과는 뒤집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반전됐다. 국무총리소속 포항지진 피해구제 심의위원회에서 한미장관맨션과 대신동 시민아파트에 대해 ‘수리 불가’ 결정을 내리면서다. 지난달 24일 개최된 제19차 심의위 회의에서 지진 당시 피해가 컸지만 전파 판정을 받지 못한 이들 주택에 대해 이같이 결정하고 전파 수준의 지원을 하기로 했다.

피해구제 심의위원회는 위원회 산하에 별도의 쟁점특별위원회와 건축사, 대학교수가 참여하는 전문가 자문단을 구성해 여러 차례 회의와 두 차례의 현지 사실 조사를 거쳐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4년 가까이 실내체육관에서 살던 이재민들들도 ‘체육관 생활’을 벗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한미장관맨션 전경. 2017년 11월 발생한 규모 5.4 지진의 여파로 외벽에 손상이 나 있다. 낙하물 피해를 막기 위해 그물이 설치돼 있다. 김정석 기자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한미장관맨션 전경. 2017년 11월 발생한 규모 5.4 지진의 여파로 외벽에 손상이 나 있다. 낙하물 피해를 막기 위해 그물이 설치돼 있다. 김정석 기자

흥해실내체육관에서 지진 직후부터 텐트 생활을 하고 있는 한 60대 이재민은 “한미장관맨션 내부에 한 번이라도 직접 들어가 봤다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라며 “당연한 결정을 하기까지 4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이라도 올바른 판단이 이뤄져 다행”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이재민은 “수리 불가 판정이 내려진 만큼 단기적으로는 주거 지원을, 장기적으로는 공동주택 재건축 절차가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항시는 국무총리실로부터 통보받은 두 공동주택의 ‘수리 불가’ 결정사항에 따라, 피해주민의 지원금 신청 시기에 맞춰서 순차적으로 지원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8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지진 피해 주민들을 위한 임시 대피소 입구. 2017년 11월 발생한 지진으로 부서진 집안 사진이 붙어 있다. 김정석기자

8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지진 피해 주민들을 위한 임시 대피소 입구. 2017년 11월 발생한 지진으로 부서진 집안 사진이 붙어 있다. 김정석기자

이강덕 포항시장은 “심의위의 결정을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피해주민의 입장에서 실질적인 피해구제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포항11·15촉발지진범시민대책위원회 공원식 위원장은 “포항시와 범대위가 실질적인 피해구제를 위해 지속적으로 건의하고 노력한 결과로 피해가 큰 공동주택들이 실질적인 피해구제를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무총리실 소속 피해구제심의위원회의는 이번 제19차 회의에서 올해 4월까지 접수된 건 중 9301건에 대해 592억원의 지원금 지급도 결정했다. 이에 포항시는 10월 말까지 결정서 송달이 완료된 건부터 순차적으로 피해 주민에게 지원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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