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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폭력 처벌? 난 반대한다" 여론 몰매 부른 존슨 英총리

중앙일보

입력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가 비판 여론에 직면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을 법으로 처벌하자는 움직임에 반기를 들면서다. 지난 3월 런던에서 발생한 사라 에버라드(33) 납치·살해 사건 이후 여성의 안전 문제로 영국 사회가 들끓는 가운데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답답한 소리”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3월 영국 런던 남부에서 귀갓길에 현직 경찰관에 의해 납치·살해된 사라 에버라드(33). [AFP =연합뉴스]

지난 3월 영국 런던 남부에서 귀갓길에 현직 경찰관에 의해 납치·살해된 사라 에버라드(33). [AFP =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은 존슨 총리가 “공공장소에서 발생한 성희롱을 특정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하는 법 개정 논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가 정부 고위급 인사 간 논쟁을 촉발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지난 6일 존슨 총리는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과 관련한 새로운 법안 마련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관련 범죄를 처벌하기 위한 수많은 법이 존재한다”며 “법을 추가하면 경찰 업무를 가중하고, 혼란만 부를 것”이라고 말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AP=연합뉴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AP=연합뉴스]

하지만 그의 입장을 놓고 내각 내에서도 “여론을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새 법안을 주도한 프리티 파텔 내무 장관은 “현 사태를 단순한 ‘울프 휘슬링’으로 보는 것 같다”며 격분했다. 울프 휘슬링은 남성이 길 가는 여성에게 휘파람을 불다가 뒷 부분을 길게 내리는 행동을 말한다. 여성에게 성적인 발언을 하는 ‘캣콜링’과 함께 성희롱으로 읽힌다.

한 고위 소식통도 “존슨 총리가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들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존슨 총리가 반대한 내용은 지난 7월 파텔 장관이 발표한 ‘여성에 대한 폭력 방지 세부 계획’이다. 당시 파텔 장관은 울프 휘슬링, 캣콜링 등 공공장소에서 행해지는 성희롱을 금지하고, 처벌하는 법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런던에서 30대 여성 사라 에버라드를 납치, 살해한 전 경찰 웨인 쿠전스(48). [AP =연합뉴스]

런던에서 30대 여성 사라 에버라드를 납치, 살해한 전 경찰 웨인 쿠전스(48). [AP =연합뉴스]

그는 “현행법은 이런 행위를 방지할 구체적인 행동 방안이 담겨 있지 않으니 보완 방안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한 예로 버스와 기차 등 대중 교통에 여성에 대한 폭력을 관리·감독할 인력을 투입할 예정이라고 했다.

법 개정 논의는 빅토리아 앳킨스 내무부 정무차관 및 캐롤라인 노크스 여성평등위원회 위원장의 지지를 받으며 속도를 냈다. 이런 가운데 존슨 총리가 내무부의 계획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영국에서는 현직 경찰 웨인 쿠전스(48)가 경찰의 공권력을 이용해 에버라드를 납치·살해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다시 한번 여성 혐오 범죄에 공분이 일었다. 영국 런던 중앙형사재판소가 지난달 30일 쿠전스에게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했으나 여성 혐오를 증오범죄로 보고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지난 3월 영국 런던 경찰이 사라 에버라드 추모 집회 해산 명령에 응하지 않은 한 여성을 붙잡고 있다. 분노한 시위 참여자들은 해산 명령에 불응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3월 영국 런던 경찰이 사라 에버라드 추모 집회 해산 명령에 응하지 않은 한 여성을 붙잡고 있다. 분노한 시위 참여자들은 해산 명령에 불응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여기에 여성 18만 명이 공개적으로 성희롱 당한 경험이 있다고 토로한 반면 성희롱 신고 건수에 비해 유죄 판결 비율은 낮은 것으로 드러나며 논란은 거세졌다.

정치권에서도 역풍이 일고 있다. 보수당과 하원은 조만간 존슨 총리의 발언에 맞서 강력한 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내무부도 “계획 중인 법안이 실제 작동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며 여성에 대한 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새로운 자금 지원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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